삼패(三牌)를 걷다.

남양주 한강공원 삼패지구, 산책이야기

by 구현

"입추가 며칠 남지 않았어."


아내의 말은 지독한 더위의 끝을 예고하는 것처럼 들렸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친 아내가 제안했다. 한강에 가보자고. 한강 바람은 좀 시원하겠지, 기대하며 차를 몰았다. 9분 만에 도착한 곳은 남양주 한강공원 삼패지구였다.


넓은 공원과 강변을 따라 이어진 평탄한 산책로. 도시와 강변의 조명이 어우러져 드넓은 야경을 만들고 있었다. 아내의 예상대로 탁 트인 한강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늦은 시간인데도 산책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처럼 느린 걸음부터 땀을 흘리며 뛰는 사람까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그들 속에서 나는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걸었다.


걷는 내내 한강 건너편이 눈에 들어왔다. 미사 신도시의 불빛들이 환하게 펼쳐져 있다. 그 화려함과는 대조적으로, 내가 군 시절 도하 훈련을 했던 미사리는 어둠 속에 잠겨 희미한 윤곽만 드러냈다. 고향 경상도를 떠나 이곳 다산까지, 젊은 날의 꿈과 불안을 짊어지고 돌고 돌아온 세월.


삼패.


이 지명 하나가 내 가슴을 깊이 울렸다.


남양주에는 지금도 일패동, 이패동, 삼패동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이곳은 한양과 강원도를 잇는 파발통신망의 핵심이었다. 지친 말을 교체하고 공문을 나르던 나그네들이 다시 힘을 얻고 길을 떠나던 역참이었던 곳이다.


일패에서 젊은 활력으로 한번 쉬고, 이패에서 누적된 고단함에 지친 몸을 추스른 뒤, 삼패에서는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도 신중함을 잃지 않기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던 곳.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삼패를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이 일패였다면, 무릎 수술대에 누워야 했던 그 이후가 이패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삼패. 내가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마지막 점검을 하는 곳.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아직도 갈 길이 먼 나그네일 뿐이다.


한강을 가르는 다리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소리와 강변 풀벌레들의 속삭임이 섞여 생존의 화음을 이룬다.


땀이 났다. 여전한 열대야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불편한 관절도 무리 없이 받아주는 이 평탄한 길에서, 나의 뒤뚱거리는 걸음은 느릴 뿐이지 멈춘 것은 아니다. 옛 나그네들이 이곳에서 힘을 얻고 다시 길을 떠났듯, 나는 이 밤의 평온함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향한다.


잠시 쉬었다 가도 된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니까.



Gemini_Generated_Image_qu8g5gqu8g5gqu8g.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물머리 산책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