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호모 사피엔스의 소소한 진화.
전화기 너머, 제일기업 부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과장, 요즘 보기 드물게 뚝심이 있어. 이번엔 내가 한 잔 거하게 사지."
거절할 수 없는 오랜 관습의 무게가 전화기 너머로 짓눌려 오는 듯했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나는 그 무게에 짓눌려 당연히 술잔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소소한 진화를 위한 생각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부사장님, 감사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부사장님께서 평소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어떠십니까?"
부사장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하하. 최 과장,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갈수록 진화하는 거야."
"술을 마시는 방식이 다른, 오롯이 대화에 집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부사장님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위스키 테이스팅 바였다. 은은한 조명 아래, 부사장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이내 바텐더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이 위스키는 100년간의 숙성을 거쳐, 처음에는 옅은 과일 향으로 시작해 깊은 흙내음으로 마무리됩니다. 마치 한 세기의 시간을 혀끝으로 여행하는 것과 같죠."
전문가 못지않은 바텐더의 말에 부사장의 얼굴은 점차 흥미로 물들어 갔다.
취하기 위한 술이 아닌, 시간과 장인의 철학을 음미하는 경험이었다. 술기운에 휩쓸려 소모적인 이야기를 하던 과거와 달리, 우리는 차분하게 요즘 대세가 된 품질 향상에 대해 논했다. 나는 술기운이 아닌, 진심을 담아 내가 담당하는 비철 원자재의 오랜 역사와 미래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부사장은 나의 진솔한 태도와 전문성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 보였다. 두 회사의 운명이 걸린 품질 향상 프로젝트가 시작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 자리는 단순한 접대를 넘어, 더 큰 기쁨과 믿음으로 가득 찰 수 있었다.
"최 과장, 솔직히 처음에 자네가 이런 곳을 제안했을 때 꽤나 의아했어. 하지만 자네 덕분에 말이야, 새로운 경험을 하는군. 이렇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해 주니, 자네 회사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는 것 같아."
만취해 토악질을 해대던 과거와는 달리, 나는 술자리가 끝난 후 당당하게 자연사박물관 앞을 지나 집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밝은 인사를 받고 아내와 담소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