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가족의 진화
회사가 아닌 가족의 일정을 맞추어 떠나는 여름휴가는 오랜만이었다. 아니, 2박 3일의 여행은 어쩌면 처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술에 절었던 과거의 나는 주말이면 숙취에 시달리거나, 거래처의 대소사를 챙기느라 영혼이 탈출한 존재였다.
에어컨으로 시원한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아이들은 제각기 다른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조수석의 아내는 맛집을 검색하고 여행 일정을 살피느라 분주한 와중에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가족들의 웃음소리와 노래를 들으며 핸들을 잡고 있었다. 오랜만의 장거리 운전에 긴장감과 낯선 설렘이 교차했지만, 미지의 여정을 향하는 기대만으로도 나는 한없이 가벼워질 수 있었다. 이것이 진정한 휴식이자 삶의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전라도 여행의 목적지는 목포였다. 목포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역시 자연사박물관이었다.
“아빠! 저거 진짜 고래 뼈야? 엄청나게 크다!”
작은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물관 중앙 홀에 자리한 거대한 고래 뼈대 모형은 압도적인 크기로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고래 뼈대 아래를 지나며, 수억 년의 시간 동안 사라지고, 변화하며, 살아남은 생명들의 흔적을 함께 느꼈다. 과거의 내가 술에 취해 공룡 발치에 노숙하던 모습은 이곳의 거대한 시간 앞에서 한낱 먼지처럼 느껴졌다.
휴게소에서 대충 아점을 때워 시장했던 우리 식구는 목포의 대표적인 맛집인 꽃게살 비빔밥 전문점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깔끔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우리를 반겼다. 아이들은 고소한 꽃게살 비빔밥을 신기한 듯 비벼 먹으며 "아빠, 이거 진짜 맛있어!"라고 외쳤다.
그 말에 아내의 얼굴에도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여보, 이렇게 맛있는 거 먹으니까, 진짜 여행 온 기분 난다."
아내의 그 말 한마디에, 운전하느라 굳었던 어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늦은 점심 식사 후, 목포 해상케이블카에 올랐다. 발밑으로 펼쳐지는 탁 트인 바다와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에 아내와 아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나는 난간에 기댄 채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나의 시야는 술잔 속의 흔들리는 물결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드넓은 바다처럼 나의 시야와 마음은 한층 더 넓어졌다.
“아빠, 무섭지 않아?”
작은아이가 내 팔에 매달리며 물었다. 나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 멀리 바다를 보면 무섭지 않단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향했다.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 아래, 잔잔한 파도를 가르며 외달도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이들은 저 멀리 섬 그림자가 나타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고, 아내는 그런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펜션에 도착해 짐을 풀자, 어느덧 섬은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어둑해진 저녁, 우리는 돗자리를 펴고 바닷가에 앉았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가 섬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끈적한 더위를 식혀주었다. 펜션 마당으로 돌아와, 미리 준비해 둔 숯불 위에 목살과 삼겹살을 올렸다. 석쇠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지는 삼겹살의 기름진 냄새가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아이들은 내가 구워주는 고기를 정신없이 먹었고, 우리 부부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는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별들이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였다. 아내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던 무수한 별들이 캄캄한 밤하늘을 수놓은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이 여름밤, 쏟아지는 별빛 아래 가족과 함께하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외달도를 떠나 목포로 돌아왔다. 짧은 2박 3일의 여행은 끝났지만,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떠나올 때와 사뭇 달랐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와 마음은 한층 더 깊고 성숙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