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을 지나 병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1805년 가을, 전라도 강진. 정약용은 유배지 작은 초가집에 앉아 아들 학연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있었다. 편지를 펼치는 손이 떨렸다. 아들의 절망이 종이 위에 그대로 배어 있었다.
"아버지, 집안이 이 지경인데 제사가 무슨 소용입니까? 거리에서 사람들이 저희를 손가락질합니다. '저기 역적의 자식이다'라고 수군거립니다. 예절을 지켜봤자 우리가 달라지나요? 조상께 제사를 올려봤자 이 치욕이 사라지나요?"
정약용은 편지를 내려놓고 한참을 창밖을 바라봤다. 가을 하늘이 높고 쓸쓸했다.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형 정약전도 흑산도에 유배되었고, 아들들은 과거시험조차 볼 수 없는 폐족의 자식으로 전락했다. 절망이 편지 행간마다 배어 있었다.
정약용은 붓을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았다. 그는 진실을 써야 했다. 유배지에서 그가 발견한, 가장 작지만 가장 단단한 진실을.
"학연아, 예(禮)를 버리는 순간 우리는 진짜 망한다."
유배지에서 구할 수 있는 건 주변 산과 들에서 캐온 나물 몇 가지와 소박한 국 한 그릇뿐이었다. 하지만 정약용은 제사를 지냈다. 정갈하게 차린 제사상 앞에 앉아 절을 올렸다.
"제사란 정성이 제일이다. 정성이 있으면 비록 나물국 한 그릇이라도 조상님이 흠향하실 것이요, 정성이 없으면 진수성찬도 헛것이다."
정약용에게 예(禮)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절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도 나를 지탱하고, 가족을 잇는 최소한의 온기였다. 유배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곳,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곳에서 정약용이 유일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도리였다. 제사를 지내며 조상을 떠올리고, 아들을 가르치며 미래를 그렸고, 이웃을 대하며 사람의 도리를 지켰다. 예는 그에게 살아야 할 이유였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계속 썼다. "자기 형편에 맞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진짜 예(禮)다. 형식이 사람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수시변통(隨時變通). 시대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변화하되, 본질은 지키는 것. 당시 조선의 예법은 지나치게 엄격했다. 제사 한 번 지내려면 가산을 탕진할 정도였다. 정약용은 그런 허례허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중요한 건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몇 달 후, 아들 학연에게서 답장이 왔다. "아버지, 이제 알겠습니다. 제사를 지냈습니다. 변변치 않았지만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아직 사람임을 느꼈습니다."
정약용은 편지를 읽으며 미소 지었다. 예는 전해졌다. 나물국 한 그릇의 정성이 아들에게 닿았다.
2026년.
AI는 가장 적절한 예법을 알려주고 가장 정확한 절차를 추천한다. 하지만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그토록 지키려 했던 '살아야 할 이유'로서의 정성은 전송하지 못한다. 절망 속에서도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그 온기, 가족을 가족이게 하는 그 마음, 공동체를 공동체이게 하는 그 연결. 그것이 예(禮)였다.
정약용은 18년의 유배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아들들은 무너지지 않았다. 예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약용에게서 배운 것을 실천했다. 형편에 맞게, 하지만 정성을 다해. 화려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정약용의 가문은 무너지지 않았다.
[내일 계속]
목민심서 제8부. 병전(兵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