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에 대하여] 회고록.

by 구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아마 '수필 하나 쓰고 웬 회고록이냐?'는 질문을 던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름 공을 들여 완성한 이 한 편의 글, 그 글을 쓰는 순간들이 저에겐 참으로 소중하고 힘겨운 시간이었기에 회고록이란 제목으로 소회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품격에 대하여]는 제가 처음으로 써 본 수필이자, 근로자 문학제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젊은 시절, 주방용품 유통 영업으로 시작해서 제조업까지 확장하며 온 힘을 다했습니다. 소규모 업체이기는 했지만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이룬 회사였습니다. 제조업의 생리를 잘 모르는 영업 출신 사장의 의욕만으로는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38살에 십 년간 공들여 일군 공장을 정리하고, 그렇게 도로공사 일용직 근로자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어 방황은 짧았지만, 제 삶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시절 도로공사는 일이 많았습니다. 더위를 먹고, 무릎 수술을 하고, 심지어 패혈증 진단을 받을 정도로 밤낮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일이 많다는 이유로 일당이 적었고, 날이 궂은 날이나 한겨울에는 쉬는 날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쉬는 날, 저는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보도블록 한 장을 손에 쥐고 잘 고른 모래 위에 올리면 20센티미터의 길이 생깁니다. 그렇게 100미터, 1킬로미터, 세상의 길이 이어져가고 그 위에 제 땀이 떨어진 길을 사람들은 지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다양하고 절묘한 단어로 문장을 꾸미지는 못했지만, 주어진 블록으로 투박한 나만의 골목길을 하나씩 완성해나갔습니다.


왜 글을 썼을까요?


명확한 이유는 잘 몰랐습니다. 때론 부질없어 보이고 아내의 눈치도 보였지만, 묵묵히 시간이 나면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다 솔제니친의 ‘이반데소니비치의 하루’라는 소설을 읽었고, 그 속에서 깨닫지 못했던 명확한 이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쓰는 글, 그건 나의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가장 순수한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도로 공사 현장에서 땀을 흘리지 않았다면, 그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물음표가 저를 위로하고 제 인생에 이정표를 세워주었습니다. 그 이름은 품격이었습니다.


무릎 수술을 하고 나니 쪼그려 앉아서 하는 동작을 할 수가 없어 한계가 생겼습니다. 현장에서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며, 아스팔트 도로공사 현장을 전전했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일을 찾아보지만 다들 비슷한 처지더군요.


그 빈 시간, 서랍에 넣어둔 소설을 끄집어내어 하나씩 손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온전하고 걸을 수 있을 때, 해야 할 일을 서둘러봅니다. 아내와 산책을 다니며 사진도 찍고 산책이야기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머리 한편에서는 일이 없는 날들을 걱정하면서도, 아내와 집을 나섭니다.


폭우가 지나고 날이 개자, 일이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날은 무덥지만 일이 있다는 소식은 어쨌든 반갑습니다. 굴착 가시설 공사에 보도 복구공사가 이어진다니 몸은 벌써 엄살을 부립니다. 20년을 했으니 몸은 압니다. 고된 것을.


그들이 벽돌 하나를 더 쌓기 위해 애간장을 녹이던 그 순간처럼, 이제 제게도 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