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의 꿈
마지막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극장 앞은 극심한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극장 직원들이 질서를 유지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붉은 티셔츠에 배여 가는 오징어 냄새가 점점 역겨워졌다.
어젯밤 건달들에게 맞은 부위가 계속 욱신거렸지만 자신의 몸조차 그의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오징어를 굽고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 행위만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모든 게 역겨웠다. 이 냄새, 이 연기, 이 거리, 이 사람들.
바로 뒤 오락실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건달들의 눈초리가 종일 느껴졌다.
고름처럼 차오르는 허리춤의 돈주머니가 점점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건달들은 이 고름이 터지기를 기다리며 오락실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게 이 바닥 룰이다."
건달이 정한 룰이 자신을 노예로 추락시켰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며 굴욕감을 견뎠다.
바로 그때였다. 밀려드는 줄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봐라, 영화 시작 3분 전이다! 빨리 구우라."
재촉하는 손님의 거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직도 적지 않은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야, 씨팔. 대충 해라. 뭐 요리하나. 굼떠가지고 그래가 먹고살겠나."
앞줄의 손님들이 욕설을 퍼붓는 아저씨와 고성을 주고받았다. 리어카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 순간, 그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를 사람들은 외면했다. 멈추지 않는 건달들의 폭력에 극장가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 건달 앞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못한 그들이 말이다.
그는 이 비열한 거리가 싫었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을 보내느라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단 한 사람 자신만은 그렇지 못했다.
건달들은 마지막 상영이 시작되면 오락실에서 나와 자신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3분.
그 짧은 시간이 그를 부추겼다. 단 한 순간의 결단이었다.
김 여사도, 오징어의 꿈도,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콜라를 배달하며 알게 된 극장 뒤쪽 출입구를 자신이 열 수 있다는 사실만이 그를 숨 쉬게 했다.
리어카에 얼마 남지 않은 오징어도 팔아봤자 건달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고개를 돌려 오락실을 확인했다. 아직 움직임이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줄이 엉켜버린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떨이다! 오징어 그냥 가져가이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리어카로 몰려들었다.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뛰었다.
극장 입구에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출입구로 접어들었다. 극장 입구를 지키던 직원들이 붉은 티셔츠의 그를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이 시간에 콜라 배달 온 기가?"
극장 직원들은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순식간에 극장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익숙한 복도를 지나 뒷문을 향해 달려갔다.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를 정리하는 청소원이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리어카는 서로 오징어를 가져가려는 사람들로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건달들이 그 소란에 오락실에서 나왔다. 그들은 주인 없는 리어카의 혼란을 어이없이 바라봤다. 사라진 붉은 티셔츠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는 이미 택시를 타고 남포동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숨 막히는 질주 끝에 도착한 자취방. 그는 옷장 서랍 밑에 숨겨둔 돈과 그동안 조금씩 모아 왔던 통장까지 모두 꺼냈다. 허리춤의 돈주머니까지 작은 가방에 쑤셔 넣고는 자취방을 나서 부산역으로 갔다.
기차에 몸을 맡기고 어둠에 잠긴 도시를 보며, 그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살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곧 밀려오는 죄책감. 김 여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준 그녀. 그는 작게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다.
'김 여사님, 죄송합니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습니더.'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는 비로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