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진정한 승자와 패자

오징어의 꿈

by 구현

녹색 트레이닝복의 참가자들이 절망적인 게임에 몰두하는 TV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그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창밖 부천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지 오래된 시간, 상가건물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오징어 게임'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빠, 218번 진짜 나빠. 친구까지 죽게 만들면서 상금 독차지하려고 하잖아."


아들이 투덜거렸다. 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게 이기는 방법이었어. 게임은 게임이잖아. 아빠, 그렇죠?"


"글쎄다."


말끝을 흐리며 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기차에서 바라봤던 부산의 야경이 스쳐 지나갔다.


김 여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텅 빈 자리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느꼈을까. 극장 홍보 기사가 구타 장면을 말했을 것이다. 혹시 그녀는, 그가 건달들에게 당한 건 아닐까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어딘가에서 무사히 잘 살기를 바랐을지도.


돌이켜보면 그때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직 살아남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그는 승자도 패자도 아닌 생존자였다.


생존을 확인한 순간, 그는 고향 양산 대신 서울로 올라왔다. 이대로 꿈마저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다 부천에 자리를 잡고, 양산 불고기를 차려 장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이 잘 되어 돈을 모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일구었다. 땅을 사고 상가건물을 지어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가족여행도 다니고 해외여행도 여러 번 갔지만, 유독 부산만은 피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도 졸린 눈을 비비며 안방으로 향했다. 거실에 홀로 남겨진 그는 꺼진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게 바라봤다. 김 여사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 그는 잠들지 못했다.


조용한 새벽 기운이 스며드는 창문을 바라보다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부산 남포동 극장가'를 검색해 봤다.


그가 기억하는 극장들은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거리의 모습도 많이 변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개최되지만, 주 무대가 해운대로 옮겨가면서 과거의 극장가의 명성은 빛이 바랜 듯했다. 그가 기억하는 남포동 극장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그 자리에는 씨앗호떡, 떡볶이, 납작 만두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노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 시절 노점상들의 위생 문제와 도시 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오징어를 구워파는 리어카는 사라졌다고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오가는 활기찬 거리였지만, 그에게는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거리 어딘가에 매캐한 연탄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완전히 지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마음 한 편의 기억. 후회와 그리움이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생존이 곧 승리가 아니었을까.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얻고도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일구었다.


그러나 김 여사는 여전히 그의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지울 수도, 갚을 수도 없는 빚. 그저 안고 사는 것. 그것이 승리자가 짊어져야 할 생존의 무게였다.


그는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부산 남포동 극장가를 가보기로 결심했다. 변해버린 그 거리를.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마침내 그 거리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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