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의 꿈
어제의 악몽은 생생했다. 명치를 강타한 구둣발의 고통, 눈앞에서 빼앗겼던 지폐뭉치.
그는 밤새 뒤척였다.
그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건달들이 떠나기 직전 던진 마지막 협박이었다.
"내일도 자리 똑바로 지키라. 자리 비우면 김 여사 자리도 없는 기라. 알았제!"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자리를 맡긴 김 여사를 생각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 여사가 돌아왔을 때 자리가 사라져 있다면? 평생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갈 김 여사를 상상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도망칠 수도, 맞설 수도 없는 상황. 그는 절망 속에서 몸을 떨었다.
자취방을 나서기 전, 그는 거울 앞에 섰다. 부은 얼굴, 피멍 든 입술.
옷장에서 콜라 회사의 붉은 티셔츠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욱신거리는 몸을 움직여 티셔츠를 입었다. 거울 속에는 패배한 권투 선수의 몰골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이 붉은색은 건달들의 눈에 잘 띌 것이다.
그래도 붉은 티셔츠를 꼭 입고 싶었다.
콜라 배달을 하며 정직하게 땀 흘리던 날들의 증표였다. 건달들에게 빼앗긴 돈은 되찾을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상은 지키고 싶었다. 회사 티셔츠는 갑옷처럼 자신을 단단하게 감싸주었다.
연휴 마지막 날. 극장가는 <용형호제 2>를 보려는 관객들로 일찍부터 붐볐다. 이틀 동안 전석 매진을 기록한 극장 앞에는 암표상까지 등장해서 더욱 혼잡하고 어수선했다.
오징어 리어카는 쉴 틈 없이 연기를 피어올렸다. 그는 오징어를 구우며 어제 건달들이 나온 오락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오락실은 안이 보이지 않게 진한 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저 안쪽 미세한 틈새로 그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오싹함을 느끼며 그는 재빠르게 오징어를 구웠다.
"오징어 다섯 마리 주이소."
"오징어 세 마리에 땅콩 세 봉지 주세예."
오징어를 사려는 손님 줄은 극장 입구의 매표소 줄처럼 길어져갔다. 오늘은 연휴 마지막이라 가족 단위, 친구들이 모여오는 손님들로 줄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그는 돈을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돈은 더 이상 돈이 아니었다. 오징어를 굽는데 걸리적거리는 귀찮은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는 김 여사를 생각하며 이마의 땀을 훔칠 새도 없이 오징어를 구웠다.
정오가 지났다. 극장 홍보 기사가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붉은 티셔츠의 그를 봤다.
"어, 콜라 배달 기사 아이가. 김 여사는 어데 가고, 오징어를 굽노."
"고향 가셨습니더."
"아, 그래! "
기사가 가까이 다가오며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얼굴이 왜 그라노? 혹시 어제 저녁에 오락실 건달 새끼들한테 얻어터진 게 니가?"
그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죽일 놈의 새끼들이. 김 여사를 이십 년이나 삥 뜯었으면 됐지. 대신 장사해 주는 니를 팼다는 말이가."
"괜찮습니더. 신경 쓰지 마이소. 괜한 일 당하지 말고예."
홍보 기사는 오락실 쪽을 슬쩍 보고는 나직하게 한 마디를 했다.
"똥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는 기라. 절대로 말대꾸하지 마라. 저 새끼들은 주먹이 먼저다 아이가."
그리고는 오락실 눈치를 살피며 극장으로 들어갔다.
붉은 티셔츠는 땀과 오징어 냄새에 절어갔다. 하지만 건달들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허리춤 돈 주머니는 더 이상 돈을 넣지 못할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어제의 수입을 훌쩍 뛰어넘었다. 곧 닥쳐올 상황에 대한 공포가 돈주머니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짙어졌다.
콜라 배달할 때 그에게 돈은 일한 만큼 돌아오는 정직한 대가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리 일해도 자신의 몫은 없었다. 게임의 룰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벌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는.
오로지 김 여사만을 생각했다. 내일이면 돌아올 그녀. 아들을 만나고 돌아올 그녀의 환한 얼굴. 그 얼굴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간신히 그를 지탱해 주었다.
극장 앞 그림자가 길어졌다. 성룡의 거대한 간판이 석양에 붉게 물들었다. 그의 붉은 티셔츠는 땀에 얼룩졌다.
건달들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