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숙천 경관 광장. 산책이야기
북부간선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작은 개미떼처럼 부지런히 어디론가 간다. 나도 일이 있는 날이면 저 차량 행렬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거실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개미다. 일용직 20년 경력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다. 20년을 같이 한 대표는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눈치지만, 월급쟁이도 아닌 일용직에게는 하루하루가 곤욕이다.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나 구직사이트를 뒤적여보지만, 몸에 밴 일을 떠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니다.
마음은 우울하지만, 나를 밖으로 이끄는 건 브런치다. 일이 사라진 무더운 여름, 큰 아들이 브런치를 알려줬다. 소설을 다듬고 산책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은 왕숙천 경관광장으로 향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경관이길래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기대가 되었다.
아, 여기였구나.
왕숙천 경관광장은 봉선사로 가던 그 길 어딘가에 있었다.
산책로 옆으로는 도로와 아파트 단지가 이어졌다. '왕숙천 경관'이라는 이름이 좀 거창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하늘과 강만큼은 시원스레 펼쳐져 있었다. 공들여 만든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강 건너편 학교 건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풍양중학교.
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의자에 앉아 '풍양'을 검색해 보았다. 고려시대 때부터 이곳은 '풍양현'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풍요로운 땅, 부족함이 없는 크게 번성할 고을. 왕숙천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신라시대의 지명, '황양현'이었다. 거친 땅, 거친 내가 흐르는 고을.
거친 '황양'의 시기를 지나 풍요로운 '풍양'으로 변모한 땅.
이 지명의 변천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경관이 아닐까?
"풍양, 가을에 어울리는 이름이네." 아내가 왕숙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건너편으로 신도시 공사장 펜스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 풍경도 머지않아 새로운 경관과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천 년 뒤, 이곳의 경관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저 하늘과 강물만큼은 여전히 이곳의 배경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차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가을로 접어드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눈이 자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