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나를 불렀다.

남양주 늘을중앙공원. 산책이야기

by 구현

늘을.


다산 근처 산책로를 검색하다 그 이름에 시선이 멈추었다. 늘을중앙공원. 호평동에 있는 공원이었다.


아내와 점심을 먹고 호평동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좋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로를 달리니 멀리 여행을 가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차로 이십 분 남짓 걸렸다.


호평동은 처음이었다. 공원 주차장에서 몇 걸음 앞에 하천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보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맑고 시원했다. 아파트가 산을 가리고 있어 아쉬웠지만, 아파트 근처에 이런 산책로가 있다니 이곳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오아시스일 것이다.


산책로 입구에 안내 팻말이 서 있었다.


판곡(板谷). 널을 만들던 골짜기.


이곳 호평동의 옛 이름이란다. 널빤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켜던 곳이었다. 그 한자 이름을 순우리말로 풀어 늘을이라 했다. 널빤지를 만들던 노동이 이곳의 이름이 되었다. 아직도 푸른 이곳의 숲과 산은 여전하지만, 이름은 세월에 따라 바뀌며 기억을 이어간다.


아내와 나란히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이름이란 것은 존재를 드러내는 제일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고작 두 글자로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고 세상을 정의한다.


우주. 지구. 사랑. 늘을. 다산.


두 글자면 충분하다.


호만천이라 불리는 이 냇물은 사릉천으로 흐르고, 사릉천은 왕숙천으로 이어진다.


물은 이름을 바꿔가며 흐른다. 아마도 이름보다 더 영원한 것은 이 흐름이 아닐까. 널을 켜던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흐르는 물 주변으로 그렇게 새로운 삶이 터전을 잡고,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 낸다.


그동안 해온 일의 이름이 흐려지는 지금, 나는 이름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늘을이라는 이름이 나를 불렀다.


이렇게 이름 하나하나를 귀 기울이며 걸어가자. 나를 부를 새로운 이름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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