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정약용 유적지를 거닐며
올 추석 연휴는 길었다. 한적한 오후, 아들의 운전 연수 목적지를 정약용 유적지로 정하고 집을 나섰다.
연휴 나들이객들로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었다. 아들은 주차장 입구에서 막막한 표정으로 핸들을 꽉 잡았다. 뒤따르는 차들과 좁은 공간 속에서 나는 아들에게 서두르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말했다. 마침 자리가 났고, 아들은 몇 번을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마침내 주차에 성공했다.
여유당 돌비석 앞에 서자, 아들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대학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다산의 아들이 왔습니다!"
아들은 그렇게 외치고는 언덕 위 묘역으로 성큼 올라갔다. 나는 가파른 계단 대신 여유당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정약용의 삶을 기록한 기념관에서 아들과 나는 자찬묘지명 앞에 멈춰 섰다.
18년 유배 생활 동안
책상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글을 쓰고 읽었더니
복숭아뼈가 세 번이나 뚫렸다.
법조문부터 바다 생물에 대한 기록까지, 그 방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500여 권의 저서가 그 고통의 산물이었다. 주변의 관람객들도 감탄을 잊지 못했다.
"진정한 프로네요."
아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의 치열한 삶이 남겨진 마당을 조용히 거닐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온 아들이 운전석에 앉았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차는 다산로를 여유롭게 달렸다.
아들은 말없이 앞을 보며 운전했다.
조심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여유로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