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박물관] 4화

by 구현

햇살에 눈이 부셔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했다. 너무 청명한 아침이다. 어제 하루 종일 갈고닦은 창날을 다시 확인한다. 완벽하다. 우리 무리에는 나 말고도 10명 남짓의 사냥 부원들이 있다. 그들은 손마다 돌도끼가 들려 있었다. 모두가 나를 신뢰한다. 어젯밤, 내가 만든 창이라는 무기가 부족장에게 먹혀들었기 때문이었다. 매머드를 잡으려면 크고 작은 희생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기, 즉 지혜가 필요하다.


그 많던 짐승들은 도대체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날은 계속 추워지고 주위에는 매머드밖에 없다. 엄청난 숫자의 매머드 떼가 어디론가 줄지어 가고 있다. 감이 좋지 않다. 무언가 거대한 변화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허기를 먼저 달래야 한다.


작은 녀석을 고르기로 했다. 며칠 전, 큰 녀석을 욕심냈다가 두 명이나 밟혀 죽었다. 너무 큰 손실이었다. 무리에서 이탈한 작은 녀석을 골라야 한다. 그래도 한 열흘은 족히 버틸 수 있다. 나는 노련한 사냥꾼이다. 좀 컸다고 이리저리 까불며 돌아다니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해볼 만하다. 길목을 파악하고 나무 위로 몸을 숨겨 그 녀석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때가 왔다. 묵직한 창을 녀석의 정수리를 향해 날렵하게 던졌다. 명중이다. 내가 만든 창이 빛을 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 녀석이 고꾸라지자 사냥 부원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어 돌도끼로 내리쳤다. 희생자는 없다.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그때였다. 거대한 먼지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땅이 울렁거렸다. 화가 잔뜩 오른 매머드 떼였다. 어서 피하지 않으면 모두 밟혀 죽을 것이다.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우리 무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런 제길,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바다로 몸을 날렸다. 매머드 무리와 같이 추락했다. 수영을 할 줄 알았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4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기다란 목의 브라키오사우루스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선선한 밤공기에 번뜩 정신이 드는 순간, 위장은 기다렸다는 듯 심하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자연사 박물관의 공룡 공원 입구를 막아선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널찍한 콘크리트 발등에 거칠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있는 힘을 다해 속을 쥐어짜자 신물이 힘겹게 넘어왔다. 굵은 침이 입에 매달려 서서히 공룡의 발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여기가 어디지? 꼬인 속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지만 방향감각은 완전히 잃어버렸다. 고개를 들자 시커먼 아파트 장벽이 나를 향해 덮쳐왔다. 황급히 공룡의 큼직한 뒷다리 아래로 몸을 숨겼다. 정확히 항문 바로 아래다. 안도의 한숨과 희열이 온몸을 감싸왔다. 아늑하다. 머리가 잔디밭에 닿자마자 묵직한 잠이 달콤하게 온몸을 짓눌렀다.


큰 무리의 동물이 이동하는 발굽 소리가 분명하다.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기다란 공룡의 굵은 다리 사이에서 기다시피 빠져나왔다. 아파트 베란다 유리창에 반사된 강렬한 빛으로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힘들었다. 공룡의 그림자로 몸을 숨기자, 자연사 박물관 입구에 세워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머리가 번쩍 깨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쏟아져 나온 출근 인파가 눈에 가득 찼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였다. 자연사 박물관이 완공되면서 새로 생긴 샛길이 지하철로 가는 지름길이 된 것이었다. 그들은 공룡 다리 사이를 빠져나온 노숙자에게 관심을 둘 겨를도 없이 바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박물관 건물 중앙의 커다란 시계가 8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대한 압력에 무릎을 꿇으며 무너지고 말았다.


그제야 바지 주머니의 진동이 느껴졌다.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들었지만 전화는 끊어졌다.

부재중 전화가 35통이었다. 이건 재앙이었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완전히 모든 것이 끝나고 말았다. 텅 빈 머릿속은 나를 잔인하게 마비시켰다.


“아빠!”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몽롱한 몸뚱이와 영혼을 순식간에 파쇄해버렸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에 나를 본 것이었다.


“어, 그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빠. 여기서 뭐하세요?”


아이들의 당황한 눈동자를 어떻게든 되돌려야 했다.


“어서 학교 가야지.”


태연하고 무덤덤한 한마디에 아이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자신들의 갈 길을 재촉했다.


“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들이 뒤돌아보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 했다. 중심을 잃은 발걸음은 휘청거렸지만 아이들의 뒷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량해 보였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쫓겨날 기구한 팔자의 아이들. 말없는 슬픔이 가슴에서 울렁거렸다. 잔디밭에서 잔 몰골은 가관이었다. 잔디 지푸라기가 더덕더덕 옷에 달라붙었고 바지 여기저기에 토하다 튄 찌꺼기가 말라붙어 있었다. 달력 한 장이 뜯길 때마다 돌아오는 은행 융자가 뒤통수를 내려쳤다. 눈가에 물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출근길을 재촉하는 무리들을 거슬러 아파트 단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의 출근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인 것이었다. 승리자들의 퍼레이드에 밀린 패배자는 그들과 반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그 오랜 세월 진행해온 생명 진화의 완성판, 인간! 그 성공의 확실한 증거는 바로 이 출근길인 것이었다.


나는 이제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 바로 옆, 벌거벗은 채 적나라하게 처진 뱃살의 무게에 상체를 조금 굽히고 정면을 주시하며 걷는 마지막 모형이 바로 ‘나’였다. 열등인자의 멸종인 것이다.

자연사 박물관을 뒤돌아봤다.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그 글귀는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도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의 표지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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