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사우루스의 텅 빈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자연사박물관을 빠져나왔다. 무작정 택시를 잡아탔다.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런 기분에 혼자 갈 만한 곳은 회사 근처의 단골 술집밖에 없었다. 홧김에 저지른 일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다시 돌아가기에는 몸이 더 무거웠다.
“과장님이 웬일이십니까? 황금 같은 일요일에 잠이라도 푹 주무시지.”
40대 초반의 훤칠한 술집 사장은 뭔 일이 있음을 충분히 감지하고 신이 난 듯 끼어들었다. 거래처 젊은 부류의 구매 담당 직원이나 회사 동료들끼리 자주 들르는 술집이라 그에게 친근한 손님이기는 했겠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하지만 어찌하랴!
새삼 놀라웠다. 술은 신비의 만병통치약처럼 지쳐있는 내 몸과 마음을 통쾌하게 위로해 주었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만을 위한 발명품이다. 얼마나 좋은가! 입가심으로 시작한 맥주 한 잔에 꼬인 속은 이내 풀렸고, 짜증 나는 일들은 오히려 술맛 돋우는 안줏거리가 되었다.
“히야, 이거 오늘 완전 VIP 대접 제대로 받는구먼. 박 사장이야말로 명품 바텐더야. 좋아, 마음에 들었어. 선수들끼리 멋들어지게 마셔보자고.”
술은 마술처럼 지친 나의 심사를 황홀하게 이끌어 나갔다.
“나 같은 인간은 그렇다 치고 박 사장은 아니잖아. 날씨도 끝내주는 주말에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가지, 이게 뭐야.”
“저는 가게에 있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합니다. 갈 만한 데 죄다 가보고, 놀 만큼 놀아봤죠. 근데 어느 순간 다 지겹더라고요.”
“직업병이야, 직업병. 돈 벌어 언제 다 쓰려고 그래. 박 사장이야, 즐기면서 살 만한 능력 되잖아. 번듯한 건물 한 채 있겠다, 탄탄하게 자리 잡은 가게도 있겠다, 아쉬울 게 뭐가 있어.”
“참, 과장님도. 제 아버지 겁니다. 저도 한 잔 주십시오.”
그래, 나 같은 놈이 뭐가 잘 났다고 애들 앞에서 고함을 질러대. 빚이라도 안 남기고 죽으면 다행이지. 한 치수 작은 옷을 입은 것처럼 자리가 어색해졌다. 애들이 눈에 밟혔다.
“박 사장은 애가 몇이야? 그러고 보니 결혼한 지 7년쯤 됐지!”
“역시 과장님밖에 없습니다.”
“남의 대소사(大小事)는 신기할 정도로 잘 기억해. 내 결혼기념일은 매년 잊어버려도 말이야.”
“영업하시는 분들이야말로…….”
짜증스러운 표정에 손사래까지 쳐가며 술집 사장의 말을 막았다.
“빌어먹을 짓이 영업이야. 어차피 상품은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사야 하잖아. 필요 없더라도 필요하게끔 해서 사지 않고는 못 버티게 하는 것, 그게 자본주의잖아. 영업은 그 사이에 뿌려대는 윤활제야. 근데 그게 참 지랄 같아. 이게 시간이 지나면 새까맣게 말라비틀어지는 거야. 그럼 다시 더 강렬한 걸 뿌려야 해. 제일 멍청하면서도 제일 똑똑한 게 소비자거든. 그게 얼마나 염장을 질러대는지.”
“천천히 드세요. 벌써 많이 드셨습니다.”
“이봐, 박 사장! 애가 몇이냐니까.”
“없습니다.”
뭐야, 저 밋밋한 표정은 술맛 떨어지게.
“여태, 애가 없어? 뭔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냐, 내가 말을 잘못 꺼낸 것 같군.”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입니다. 결혼하기 전에 집사람과 약속했어요. 아이를 안 가지기로.”
잠시 술기운이 멈칫하며 무거워진 눈꺼풀을 조심스레 치켜세웠다.
“아이를, 안 가지기로 약속하다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요즘엔 출산 안 하기로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결혼하는 커플도 많아요.”
“우리끼리 재미있게 산다! 햐- 유토피아가 따로 없군.”
이따위 이야기 이리저리 많이 들어서 별 감흥이 없다는 저 담담한 표정, 속이 갑갑해졌다.
“과장님은 애가 둘이라고 하셨죠.”
기다렸다는 듯 무거운 분위기를 거칠게 떨쳐내고 싶었다.
“그래 맞아, 박 사장이야말로 멋있는 인생을 선택한 거야. 내가 왜 이 짓을 하며 사냐 말이야. 애새끼들 먹여 살리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근데 헛짓이야. 맞아. 밤낮 애간장 녹이는 그 잘난 놈의 회사 때려치우고 대충 두 사람 먹을 것만 벌면 얼마나 편해. 집을 왜 사! 차나 좋은 걸로 뽑아서 바람이나 쐬러 다니지. 죽을 고생해서 키우면 뭐해, 제가 잘나서 큰 줄 알고 제멋대로……."
나는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혀가 꼬여 횡설수설을 반복하는 추태를 부리고 있을 때였다. 술집 사장의 걱정스러운 한마디에 취기는 구멍 잃은 생쥐처럼 꼬리를 늘어뜨렸다.
“과장님, 많이 늦었습니다. 내일 영업회의 있지 않습니까.”
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월요일 아침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야 한다. 9시 정각에 사장님이 참석하는 영업회의가 있다. 말이 좋아 활기차고 상쾌한 일주일의 시작이지, 사실 주말 동안 해이해진 심신에 채찍질하자는 게 아닌가. 사장님은 매주, 그렇게 영업회의로 일주일을 시작하는 것에 꽤나 비중을 두셨다. 회사의 생사존망이 여러분의 발걸음과 진취적인 영혼에 달렸다고 외치는 사장님의 굳센 눈빛이 선명히 간담을 파고들었다. 뇌세포를 장악한 알코올은 그 강렬한 실존을 외면하려 하지만 어느새 고개를 번쩍 든 이성은 자신의 운명을 인정한다. 괜한 객기의 항변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썰렁하게 고개를 숙인다.
“과장님, 택시 불러드릴게요.”
술집 사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늑한 조명 아래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두 아이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긴장한 눈빛으로 어깨가 앞으로 처진 자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의 두 아들이 맞는데, 훌쩍 자란 아이들이, 왜 이리도 낯설까.
"어깨를 활짝 펴봐. 어깨를 활짝 펴!"
가슴 한구석이 허탈하게 떨려왔다.
“다음 주엔 동물원 가자. 어깨 펴.”
“과장님, 택시가 5분 뒤에 도착한답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봐, 박 사장. 애가 없으니까 행복해?”
그의 표정과 기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예상한 그의 대답이 필요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쿨하게 살자, 뭐 그렇게 생각했는데 인생이란 게 그렇잖아요. 그저 그런 생활이 별 의미 없이 반복되는 거, 별다를 것 없는 달력이 뜯겨져 나가는 거…….”
이제 가야 한다. 내일 아침, 술이 덜 깬 나의 몰골을 사장은 쉽사리 간파할 것이다. 인사고과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중소 제조업들은 혼수상태 일보 직전, 호흡이 가쁘다. 하루를 내다볼 수가 없다. 빚으로 버티는 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다.
거대 자본과 대량생산으로 무장한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지고 있다. 새우도 어쨌든 살아남아야 한다. 고래는 날로 비대해지고, 이른 아침마다 새우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무장하고 튀어 오른다.
새우의 꿈은 고래가 아니다. 생존이다.
언제 영업부가 축소될지 모를 지경이다. 단가 싸움에 영업이라니 별 의미가 없다. 윤활유도 기계의 마찰이 있어야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뭘 해서 먹고살지?
그것은 2년 전부터 재발한 종양 같은 고민이었다. 작은 애가 이제 9살이니, 최소한 10년 넘게 더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정말 까마득한 세월이다. 아파트 융자도 7년이나 남았는데. 그래 가야 한다, 버틸 때까지 버텨야 한다.
콜택시가 도착했다는 사장의 목소리가 몇 겹으로 흩어진다. 너무 많이 마신 탓이리라. 택시 기사의 눈빛도 그리 좋지는 않다.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다.
“어디로 모실까요?”
감정을 제거한 기사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
“자연사박물관.”
“예? 자연사 박물관이요?”
기사의 눈초리가 매섭게 룸미러를 스쳐 뒤로 날아왔다.
“사피엔스.”
더 이상 말이 없다. 기사는 듣고 있던 라디오 음악 채널의 볼륨을 조금 올린다. 언제나 그렇듯, 눈이 서서히 감긴다. 낮에 본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명히 그려진다. 필름이 끊기고도 남을 시간인데 무언가가 뚜렷이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