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야기.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전기배선 도면을 작성하고 준비할 자재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김 상병은 나의 답답한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 격려했고, 인정해 주었다. 비웃음거리였던 말다듬이를.
김 상병은 신속하게 자재들을 공급해 주었고 나는 심혈을 기울여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굵고 가는 전선을 용도와 길이에 맞추어 절단했다. 싹둑싹둑, 절단기 소리가 경쾌했다. 소켓을 연결하고 절연테이프를 꼼꼼히 감았다. 손끝에서 테이프가 빠르게 풀려나가며 배선을 감쌌다.
나는 계획한 순서대로 완성하고, 다시 하나하나 세심히 점검했다. 사다리를 타고 교회 지붕과 십자가 탑을 오르내렸다. 십자가 탑 위에서 내려다본 부대 전경은 장관이었다. 저 아래 연병장에서 훈련받는 중대원들, 중대 막사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가슴은 뜨거웠다.
전구가 주렁주렁 달린 배선을 설치해 나갔다. 차가운 칼바람에 손이 시려도 마음은 훈훈하고 행복하기만 했다.
김 상병은 언제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종호야, 정말 잘하고 있어.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재능이야."
"아, 아멘!"
나의 힘찬 아멘 소리에 김 상병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휴식시간을 정해 교회 막사의 난로 곁에서 마음 편히 쉬게 해 주었다. 점심은 교회 뒤편의 장교식당에서 배불리 먹었고, 교인 가족들이 간간이 들러 따뜻한 격려와 함께 간식거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틈틈이, 김 상병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찌, 예수를 모르고 크리스마스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김 상병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격이 달랐다.
"종호야,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이지는 알지?"
"예, 예수님, 태, 태어난, 날입니다."
"그래, 맞아. 그런데 그분이 어디서 태어나셨는지 알지!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잖아.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오신 거지."
김 상병의 목소리는 선명했다.
"그분은 평생 낮은 곳에 계셨어.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셨지. 그러다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어."
김 상병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피의 대가로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면 구원받을 수 있게 된 거야."
"간, 간절히 기, 기도하면, 들어주, 주시나요?"
"나의 모든 기도를 하나님이 다 들어주셨어. 그래서 점등식에 단장님도 오시고, 군악대에 성가대까지 오게 된 거야. 종호도 여기에 온 거잖아."
나는 김 상병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설교 같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의 이야기처럼 다정하고 편안했다. 그 어떤 깊은 진리보다, 나는 김 상병이 좋았다. 그리고 말을 너무 잘하는 김 상병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그와 함께 있으면 세상이 달라 보였다. 막힌 변기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접받는 기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잠을 설쳤다. 밤새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겨우 든 잠 속에서, 낡아서 곧 쓰러질 것만 같은 마구간을 보았다. 마구간 안은 어두웠다. 짚더미 냄새와 가축들의 체취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말구유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갔다. 어느새 나는 군중 속에 있었다. 그를 보았다. 성난 군중들이 그를 죽이라고 외쳐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였다. 채찍에 찢긴 그의 등과 옆구리. 가시면류관으로 피투성이가 된 얼굴. 손과 발에 못이 박혔다. 쿵. 쿵. 망치 소리가 울렸다. 피 흘린 뒤 찾아오는 지독한 한기. 몸 한 번 제대로 움츠리지 못하고 그는 힘겹게 죽어갔다.
잠에서 깨어 다시 몸을 뒤척였다.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았다. 이 기적 같은 생활이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두 사라진다. 다시 중대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식기당번들 앞에 서야 한다. 다시 막힌 변기가 되어야 한다. 김 상병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무릎 끓고 기도했다.
악몽과 불면의 긴 밤이었다. 나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무릎 꿇고 기도했다.
"하, 하나님! 크, 크리스마스가, 오, 오지 않게, 해, 해 주십시오. 제, 제발. 제발."
눈물이 베개를 적셔갔다.
김 상병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황금색 점등스위치를 나에게 내밀었다.
"종호야, 이 스위치만 설치하면 점등식 준비는 완성이다."
황금빛 스위치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손이 떨렸다. 교회 앞 잔디마당에 테이블을 꺼내 고급 벨벳 천을 덮고 스위치를 고정시켰다.
크리스마스 점등식이 단 하루 남았다.
내일 저녁 8시, 화려한 점등식이 펼쳐진다. 점심을 먹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마무리한 다음, 최종점검에 들어가기로 했다. 김 상병은 분주하게 오가느라 나와 눈을 마주칠 시간조차 없었다. 성가대 부대 출입허가 확인, 군악대와 마지막 조율, 단장님 일정 재확인, 예배당 장식과 청소까지 일은 끝없이 이어졌다.
자잘하게 남은 잡일은 황금 같은 시간을 순식간에 삼켰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낡은 나무 상자 안의 두꺼비집에 주전원을 연결했다.
김 상병과 나는 점등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자, 종호야. 이제 확인해 보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얼굴이 경직될 정도로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난생처음이었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낸 것이. 그 벅찬 감격이 감당하기 어려운 긴장감으로 온몸을 감싸 안았다.
김 상병이 없었다면 이 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