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징어의 꿈

통합본

by 구현


1. 프로젝트 A


경기도 부천역 부근 4층짜리 상가 건물 1층에 자리한 '양산불고기'. 지글거리는 불고기 냄새가 서서히 흩어져갈 무렵, 분주했던 주말 장사를 마친 중년의 남자는 그날의 매출을 확인하며 조용한 만족감에 젖어들었다.


반평생 계산기를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은 이제 태블릿 PC의 매끄러운 화면을 터치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화면 속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수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삼십 년간 쌓아 올린 신뢰와 땀의 결실이었다.


"사장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주방에서 마지막 설거지를 마친 직원들의 인사에 그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고생 많았어, 내일 봐!"


발걸음 소리가 저녁거리 속으로 멀어져 갔다.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요함이 식당을 감쌌다.



이 4층짜리 상가건물은 그의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었다. 1층은 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2층과 3층은 원룸으로 단 한 번도 공실이 생긴 적이 없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도 한때 그런 청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는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를 받았다. 식당에 내려와 밥을 먹는 세입자들에게는 찌개와 불고기 한 접시를 저렴한 메뉴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자신이 받았던 작은 친절을 되돌려주는 일이었다.


덕분에 건물은 늘 생기가 넘쳤고, 삼십 년 넘게 해 온 불고기집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맛집이 되어 있었다.


그때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들과 딸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저녁 공기를 함께 데려온 그들의 모습에서, 그는 문득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는지를 깨달았다.


"아빠, 아직 정리할게 남았어요?"

"아냐, 다 끝났다."


대학생인 아들은 습관처럼 의자를 가지런히 정리했고, 증권회사 인턴을 마치고 정직원으로 채용된 딸은 그에게 다가와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빠, 주말이라 단체 손님이 많았나 봐요."

"평소랑 비슷해. 그런데 너희 저녁은 먹었니?"

"우리는 엄마랑 김치찌개 끓여 먹었어요."


아들이 식당 벽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끄려고 리모컨에 손을 뻗을 때였다.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광고 영상이 흘러나왔다. 아들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성룡 영화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세 사람의 이목이 화면으로 향하며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숨을 죽였다.


[성룡 프로젝트 A, 30년 만에 재개봉.]


매출을 정리하던 분주한 그의 손이 멈춰 섰다. 광고 속 젊은 성룡의 얼굴이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를 30년 전 그 시절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성룡을 보는 순간, 그의 기억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갔다. 홍콩 영화의 비공식 수입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 시절 영화를 볼 때마다 시끌벅적한 부산 남포동 극장가에서 시작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당시 국내 배급사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대작으로 불리는 영화들에만 집중했고, 성룡 같은 홍콩 배우의 영화들은 '저급한 무술 영화'라는 편견 때문에 정식 수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폴리스 스토리'나 '취권' 같은 그의 영화들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밤샘 상영을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프로젝트 A>는 성룡이 시계탑에서 몸을 던지는 스턴트로 '대역 없는 배우'라는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그 아슬아슬하고도 유쾌한 액션은 당시 젊은 세대에게 현실의 답답함을 잊게 해주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때의 그도 그랬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던 사회초년생인 그에게, 성룡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꿈을 향한 도약이었다.


"아빠, 성룡 영화 완전 좋아하잖아요. '프로젝트 A' 재개봉하는 거 엄마랑 둘이 보러 가세요. 지금 핸드폰으로 예약할게요, 어때?"


딸의 말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 미소 뒤로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리 딸이 최고다."


아들이 흥미진진하게 말을 이었다.


"아빠, 주말인데 우리 '오징어 게임' 같이 볼래요? 정말 재밌다고 하던데."


그는 아이들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집으로 가자."


아들이 TV를 끄자, 그들은 정리가 말끔히 끝난 1층 식당 문을 닫고 계단을 통해 4층 집으로 향했다.

넓고 아늑한 거실에서는 아내가 따뜻한 미소로 그들을 맞았다. 아들이 신이 나서 "엄마도 오징어 게임 같이 봐요!" 하고 외치자, 아내는 분주한 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드라마가 시작될 무렵, 거실 탁자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오징어와 팝콘, 그리고 시원한 음료가 차려졌다.


86인치 TV에서 딱지치기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가족들은 숨을 죽인 채 화면에 몰입했다. 남루한 차림의 주인공이 지하철역에서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딱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뺨을 맞는 소리. 돈을 걸고 하는 음습하고 위험해 보이는 게임.


단순한 규칙, 하지만 잔혹한 결과. 그는 아이들 곁에서 드라마를 보며 문득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456억이라는 거액의 상금, 그리고 그 돈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어떤 감정들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서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어린 시절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탁자 위의 오징어로 향했다. TV 화면과 탁자를 번갈아 보던 그의 눈동자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스쳤다.


거실에는 드라마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1990년 부산 남포동 극장가의 그 시절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시절 품었던 간절함들, 그리고 지금 이 안락한 거실에서 잊고 살던 돈에 대한 욕망과 생존의 공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면 속 오징어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또 다른 게임의 기억이 깨어나고 있었다.


2. 도시의 꿈


양산 원동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농사일에 지쳐 있던 청소년기를 보냈다. 끝없이 반복되는 농사일. 땀냄새와 흙냄새가 배어든 옷. 도시에 나가 취직한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보낸 그 답답한 시절. 그 모든 것이 지긋지긋했다. 새벽마다 밭으로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만은 다른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군 운전병으로 제대한 후, 보란 듯이 도시에서 성공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부산으로 향했다. 읍내 버스정류장에서 부모님은 돼지 한 마리 판 돈을 그에게 쥐어주며 걱정과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아들을 배웅했다. 고향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그는 그 소중한 돈과 끓어오르는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도시에서 자리를 잡겠다는 패기로 시작한 일은 콜라 배달이었다.


군대에서 익힌 운전 실력으로 빨간 티셔츠를 입고 트럭 운전대를 잡았다. 남포동 극장가와 국제시장을 오가며 그는 부산의 심장부를 누볐다. 처음에는 낯선 대도시의 복잡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느껴졌지만, 차츰 그 길들이 그의 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콜라 트럭을 몰고 극장가로 들어서면 노점상들이 길을 점령해 도로가 더욱 좁아졌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니 자연스럽게 상인들과 얼굴을 익히게 되었고, 사근사근한 성격의 그는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를 건네며 호감을 샀다. 배달도 영업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교육받은 그는 그 붉은 티셔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단순한 배달원을 넘어,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는 붉은 트럭의 청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마주한 남포동 극장가는 자신이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시골 개울만 보던 그에게 부산은 광활한 바다를 품은 황홀한 도시였다. 자갈치와 국제시장 사이에 자리한 부산극장, 제일극장, 국도극장으로 이어지는 극장 건물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며, 저마다 거대한 영화 포스터를 내세우며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남포동은 거대한 상권을 이루었고, 극장이 그 활기의 중심에 있었다.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래서 이곳은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규모의 영화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1991년, 세상이 어수선해도 남포동 극장가는 늘 북적였다. 답답한 현실일수록 사람들은 영화에서 위로를 받으며 감성에 젖어들었다. 극장 매점의 콜라는 주말이면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고, 노점들도 건물 하나 살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런 활기찬 극장가에서 그가 가장 자주 마주치는 사람이 오징어 리어카의 김 여사였다.


처음에는 퉁명스럽던 김 여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녀가 왜 자신에게 유난히 따뜻하게 대하는지를. 그녀의 삶은 연탄 연기처럼 매캐했고, 늘 오징어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리어카가 그녀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 깊은 곳에는 그가 낯선 도시에서 마주했던 외로움과 똑같은 종류의 슬픔이 서려 있었다.


어느 비 내리는 오후였다. 하늘이 잿빛으로 흐려지고, 거리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손님이 뜸한 시간, 김 여사가 연탄 화덕에 김치찌개를 끓이며 소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마침 콜라 배달을 온 그를 불러 옆에 앉히고는 고봉으로 밥 한 그릇을 내밀었다.


"객지 생활이 힘들제, 와 이리 말라가노."


숟가락을 건네는 그녀의 손이 유난히 투박했다. 오징어를 다듬고 구우며 거칠어진 손. 그 손에는 거친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취기가 조금 오른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의 구타와 술주정을 견디다 못해 어린 아들을 빼앗기듯 남자 집안에 남겨두어야 했다. 그렇게 홀로 남포동 길바닥에서 장사를 시작해야 했던 아픈 사연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고, 그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한이 담겨 있었다.


"우리 아들도 니만 할 낀데. 니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야 된다."


그녀가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중얼거렸던 그 한마디가, 지금도 그의 귀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날, 그는 김 여사의 김치찌개 한 그릇에서 삶의 쓰라림과 따스함을 동시에 맛봤다. 국물 속에는 김치와 돼지고기의 깊은 맛을 넘어선, 한 여인의 모진 세월이 녹아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과, 목숨 걸고 자리를 지켜낸 그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그는 막연했던 성공에 대한 꿈을 비로소 구체적으로 다듬기 시작했다.


언젠가 나도 저런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김 여사처럼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때는 몰랐다. 그가 오징어를 구워 파는 김 여사 곁에서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훗날 그의 삶을 어떤 모습으로 빚어낼지를. 연탄불에서 지글거리던 오징어들이, 그의 꿈속에서 어떤 의미로 되살아날지를.


비는 그치지 않았고, 노점의 파라솔 아래서 두 사람은 모자지간처럼 다정하게 늦은 점심을 먹었다.


3. 쥐포와 오징어


1991년, 부산 남포동 극장가는 젊음과 낭만, 그리고 짙은 욕망이 뒤섞인 격렬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스물세 살, 갓 제대한 그는 혈기왕성한 청춘의 열기를 온몸에 품고 있었다. 콜라 상자를 나르는 그의 발걸음은 국제시장의 분주한 소음과 자갈치시장의 청량한 비린내가 뒤섞인 이 도시 특유의 활력을 자연스레 익혀가고 있었다.


극장 벽면마다 걸린 거대한 영화 간판들은 붓으로 그려낸 선명한 색채와 극적인 장면들로 가득했다.


컬러 TV와 비디오가 보급되면서 영화관의 위상이 흔들리던 때에도 이 거리만큼은 열기를 잃지 않았다. 당시 한국 영화는 침체기를 겪었고, 관객들은 <영웅본색> 같은 홍콩 누아르와 성룡 주연의 액션 영화에 열광했다. 거리에는 주윤발, 장국영처럼 멋을 낸 청년들과 설렘 가득한 아가씨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주윤발이 왔다 아이가! 오징어가 불나게 생겼데이!"


김 여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극장가 전체를 울렸다. 그는 콜라 상자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르며 리어카에 수북하게 쌓인 오징어를 바라봤다. 연탄불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오징어 냄새가 그의 코를 간질였다. 영화가 시작되자 극장 앞은 썰물처럼 한적해졌다. 김 여사는 떨어진 오징어 다리 하나를 연탄불에 구워 그에게 건넸다.


"어이쿠, 다리가 하나 떨어졌네예."


"다리 세면서 먹나? 하기야, 다리 하나 없다고 찾아와서 따지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


"오징어는 다리가 짭조름한 게 맛이 있어예."


"양산 촌놈이 오징어 먹을 줄은 아네."


"여사님 덕분이지예. 그런데 요새는 쥐포는 안 파십니까? 우리 시골에서는 말로만 들었지, 한 번도 못 먹어봤어예."


그의 말에 김 여사는 오징어 집게를 든 채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쥐포! 아이고마, 말도 마라. 한때는 쥐포가 최고였지.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는 연탄불 하나 놓고 저 극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쥐포를 팔았다 아이가. 허구한 날 쫓겨나고, 쥐포 다 뺏기고 말도 아니었다. 목숨 걸고 지킨 자리다, 이 자리가. 그 쥐치가 안 잡히니까 오징어로 갈아탔지. 그때부터 자리를 잡았지. 오징어는 내한테는 은인이다."


그 씁쓸한 이야기 속에서 그는 깨달았다. 김 여사에게 오징어는 단순한 생계수단이 아니었다. 쥐포가 지독했던 과거라면, 연탄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오징어는 모진 세월을 견디게 해준 은인이자 행운의 상징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오징어 리어카에서 불과 몇 걸음 뒤의 어두운 오락실의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 속에서 몇 명의 건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동네 양아치들과는 달랐다. 사행성 오락실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운 '형님'들의 똘마니들이었다. 공기마저 굳어지는 듯, 그들의 등장은 주변의 활기를 삽시간에 집어삼켰다. 김 여사는 오징어 집게를 내려놓으며 그에게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니는 이제 그만 가거래이. 내일 보자."


그는 직감적으로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저들은 단순히 돈만 뜯어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 거리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노점들의 뒤를 든든히 봐주는 대신 정기적인 '관리비'를 챙기는 공생 관계였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콜라 트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귀는 여전히 그들의 대화를 향해 있었다.


"김 여사, 주윤발이 오니까, 극장에 사람이 꽉 찼다 카대예!"


"내는 정신없이 바빴다 아이가. 오징어 갖다 놓기가 바쁠 지경이라."


김 여사는 다가오는 건달들의 속내를 훤히 알고 있었다. 극장 앞에 오징어를 파는 노점의 수가 정해진 것도 그들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다. 안 그랬다면 이 바닥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으로 피바람이 났을지도 모른다. 김 여사는 무심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만 원짜리 한 뭉치를 꺼내 재빠르게 그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트럭에 시동을 걸며 백미러로 김 여사와 남자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돈을 주고받는 찰나의 순간, 그들의 표정에는 미묘한 긴장과 함께 익숙함이 묻어났다. 그는 김 여사가 단순한 노점상이 아니라, 이 거리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진짜 '터줏대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건달들은 겉으로는 거들먹거리지만, 결국 이 바닥의 질서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공생 관계였다. 그 미묘한 균형 속에서 김 여사는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멀리서 돌아본 김 여사의 뒷모습에서는 묵묵한 생존자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화려한 영화와 낭만이 넘실거리는 이 거리 뒤편에는, 김 여사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존재했다.


쥐포에서 오징어로. 쫓겨남에서 터줏대감으로. 그 긴 여정의 무게가 연탄불 위에서 지글거리고 있었다.


4. 게임이 시작되었다.


파리채를 휘두르는 소리조차 체념에 젖어 있었다. 오징어 리어카 위를 맴도는 파리들은 김 여사의 무기력한 손길을 비웃기라도 하듯 느릿느릿 주변을 맴돌았다. 추석 명절을 앞둔 극장가는 들떠 있었지만, 그녀만은 달랐다.


이혼 후 소식이 끊긴 아들. 시골에 홀로 계신 노모. 명절이 다가올수록 그 두 사람은 가슴 한쪽을 더 세게 조여왔다. 그리움이 목까지 차오를 때면 리어카 밑에 숨겨둔 소주병을 꺼냈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소주가 쓰라린 현실을 녹여주기를 바랐지만, 눈을 뜨면 이 자리, 이 냄새, 이 외로움뿐이었다.


하루라도 비우면 어떤 불상사가 생길지 모르는 자리. 목숨보다 소중하지만, 파리 목숨만큼이나 위태로운 자리. 김 여사는 이십 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이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다. 영화관이 쉬는 날이 없듯이.


"김 여사, 그라지 말고 한 번 명절에 갔다 오이소. 인자 돈 좀 번다 생각하면 마음도 편하고."


극장 홍보 기사가 혀를 차며 다가왔지만, 김 여사는 쓴웃음만 지었다.


"니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 알고 지랄이냐. 이 자리를 비우고 어예 발길이 떨어지겠노."


바로 그때였다.


"시골에서 전화 왔어예. 얼릉 받아보이소."


오락실 여직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김 여사가 뛰어갔다. 파칭코 기계들이 요란하게 쏟아내는 쇠구슬 소리 사이로, 떨리는 손이 수화기를 향했다. 급한 일이 아니고서는 전화가 올 리 없었다.


"여보세요?"


"이혼한 네 남편한테 간 아가, 이번 추석에 시골집에 온다 카더라. 군대도 갔다 왔다더라."


시골 노모의 울먹이는 벅찬 목소리였다. 김 여사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들이, 진짜 온다 카셨나예?"


"그라네, 우리 집 주소도 물어보데이. 할매 보고 싶다 카더라."


전화를 끊고도 김 여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락실의 소음이 저 멀리 밀려가고, 세상이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기쁨과 함께 두려움이 밀려왔다. 아들은 과연 자신을 이해해 줄까. 엄마라고 불러줄까.


며칠을 뒤척인 끝에 김 여사는 결단을 내렸다. 이 자리를 맡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콜라를 배달하는 청년. 그를 아들처럼 챙겨 왔고, 그 역시 김 여사에게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며 믿고 의지했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생명줄 같은 오징어리어카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대목인 명절 장사를 남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을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락실 건달들의 의심 어린 시선, 다른 상인들의 시기,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 모든 게 위험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주변에서 다 아는 콜라 청년이기에 오해를 살 일도 없을 터였다.


그에게도 김 여사의 제안은 단순한 알바가 아니었다. 묵직한 콜라 상자만 나르던 일상에서 벗어나 장사의 실전을 배울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골 농사보다는 도시 장사가 낫다는 생각으로 부산에 온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김 여사는 그에게 오징어 굽는 방법을 가르쳤다.


"오징어 장사는 연탄불이 생명인기라. 불이 너무 세면 오징어가 겉만 타 뿌리고, 그렇다고 약하면 굽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아이가."


"시간 날 때마다 오징어에 가위질을 해줘야 영화 보면서 먹기가 좋제."


그는 의외의 재능을 보였다. 손님들에게 서글서글했고, 농담도 적당히 할 줄 알았다. 오징어도 김 여사가 놀랄 만큼 노릇하게 구워냈다.


김 여사는 조금씩 안심이 됐다. 근처 백화점을 드나들며 노모에게 드릴 한복과 건강식품을 고르는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추석 연휴 사흘만 자리를 비우기로 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물건 값은 물건 들어 올 때마다 바로 줘야 된다. 그라고 자릿세 명분으로 하루에 이십만 원만 나한테 주면 된다."


그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20만 원? 월급이 50만 원 남짓한 그에게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단순히 일당 정도로 받을 줄 알았던 그에게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김 여사는 장사에 관심이 많은 아들 같은 그에게 후한 인심을 베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만약 장사가 안 되면? 적자가 나면?


"근데... 안 팔리면..."


김 여사의 눈빛이 변했다. 순간 그녀는 스무 해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진짜 터줏대감의 얼굴을 보였다.


"그게 무신 소리고! 그걸 걱정하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곧 어머니 같은 미소를 지었다.


"팔아봐라, 그라면 내 돌아오면 큰절을 열 번도 넘게 할기다."


김 여사가 극장 간판을 가리켰다. 석양에 물든 성룡의 얼굴이 거대하게 떠 있었다.


"저 큰 간판에 걸린 영화배우가 누군지 봐라. 성룡이다 성룡! 이번 추석에 성룡 신작이 개봉한다 아이가!"


그녀의 목소리에 확신이 배어 있었다.


"명절 대목엔 역시 성룡 영화라! 젊은 놈들이 데이트하러 오고, 가족들이 같이 보러 오고... 오징어가 불나게 팔릴 기다!"


하지만 그 확신 속에도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이었다. 김 여사에게도, 그에게도. 서로의 믿음을 담보로 한 위험한 게임.


김 여사가 고향 가는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부산 거리가 멀어져 갔다. 그 시간, 그는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로 오징어를 진열했다.


이것은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김 여사의 스무 해 인생이 걸린 자리를 삼일 동안 맡은 것이었다. 그녀의 신뢰를 저버린다면 그 책임은 적지 않을 것이다.


연탄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징어를 굽는 냄새가 거리로 번져나가자 조조 상영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는 김 여사가 가르쳐준 대로 오징어를 뒤집으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 작은 리어카 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김 여사에게는 아들과의 재회를, 자신에게는 꿈을 향한 첫걸음을 가져다주기를.


성룡의 간판이 청명한 가을 햇살에 번쩍이고 있었다. 명절 대목이 시작됐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5. 용형호제 2


<용형호제 2>의 대형 간판이 걸린 극장 앞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몰려드는 인파로 들끓었다. 추석 연휴의 들뜬 공기 속에서 연탄불 위의 오징어들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맛깔스럽게 익어갔다.


그의 이마에선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집게를 든 손은 마치 공장 기계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움직였고, 연기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맛있게 구어 드릴게예! 쫌만 기다려 주이소!"


줄을 선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손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영화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조급해진 그들은 가격도 제대로 묻지 않고 지갑을 열었다. 그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졌다. 리어카 위의 오징어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갔고, 그의 허리춤 돈주머니는 점점 무거워져 갔다.


영화가 시작되고 줄이 끊어져도 그는 여전히 바빴다. 먹기 좋게 오징어를 가위질하고, 비닐봉지에 땅콩을 한 줌씩 담아가며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건어물 사장이 자전거에 오징어를 가득 실어 와 말했다.


"와, 몇 년 만에 이런 장사는 처음이네! 김 여사가 돈은 넉넉히 준다 카데?"


그는 연신 땀을 훔치며 싱긋 웃었다. 아무도 모르는 영업 비밀을 가슴에 품은 그는 오징어를 수북하게 쌓았다.


밤이 깊었다. 자취방의 낡은 형광등 아래서 그는 돈주머니를 풀어헤쳤다. 김 여사에게 줄 자릿세 20만 원, 오징어 물건값, 그리고... 건달들에게 줄 돈까지. 모든 것을 꼼꼼히 계산하고 남은 돈을 확인하는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백만 원이 넘었다.


월급의 네 배를 넘는 거액이었다. 촌에서 일 년 내내 허리가 휘도록 벼농사를 지어도 손에 쥐기 힘든 돈이다. 이 돈은 고향에 돌아가 자랑할 증표였다. 그가 도시에 온 이유였고 목적 그 자체였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밤늦도록 잠 못 이루며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까끌한 촉감, 낯설고 비릿한 지폐의 냄새.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올랐다.


'이렇게나 잘 팔리다니!'


희망찬 계획들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래, 내일부터는 가격을 올려야제. 큰 거는 이천 원. 작은 거는 천 원씩 더 받아도 된데이. 오늘 장사가 그 증거 아이가!"


'김 여사님이 돌아오시면…'


자리를 인수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김 여사가 권리금으로 거액을 부르면 어떡하지. 시골 부모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분명 기뻐하며 땅문서를 내줄지도 모른다. 온갖 상념에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무이, 아부지! 아들이 부산에서 너무 잘 나가 가지고 명절에도 집에 못 갔지만, 소 한 마리 사드릴 게예. 오징어가 미친 듯이 팔려예!'


새벽마다 닭 울음소리에 맞춰 일어나 밭을 갈던 고된 나날들이 갑자기 까마득한 옛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밤새 지폐를 세고 또 세다가, 옷장 깊숙한 곳에 소중히 숨겨두었다.


추석 연휴 둘째 날은 첫날보다 더 바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징어는 불티나게 팔렸고, 돈 주머니는 어제보다 두 배는 묵직해졌다. 그는 이제 김 여사가 가르쳐준 것보다 더 능숙하게, 더 빠르게 오징어를 구워냈다. 아가씨 손님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아이들에게 땅콩을 한 줌 쥐어주자 할아버지가 오징어를 가족 수대로 집어 들었다.


마지막 상영이 시작되자 극장 앞은 언제 그랬냐는 듯 썰렁해졌다. 왁자지껄했던 활기는 간데없고, 어색한 적막만이 남았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며 마지막 남은 오징어 몇 마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작은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자, 커다란 영화 간판 속 성룡이 주먹을 휘두르며 뛰어내리는 역동적인 모습이 유난히 번뜩이는 것 같았다.


<용형호제 2>


그도 성룡처럼 도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다.



6.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오징어 김 여사 어데 갔노?"


갑자기 등 뒤에서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그의 온몸이 경직되었다. 낯선 목소리가 가진 불쾌한 위압감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번들거리는 가죽 재킷을 입은 험악한 인상의 사내 두 명이 오징어 리어카 앞에 멈춰 섰다. 날카로운 눈빛, 살벌한 미소가 번뜩였다. 극장가에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니던 오락실 건달들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달콤했던 상상들이 한순간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차가운 냉기가 등골을 타고 파고들었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그의 숨통을 조여왔다.


"니는 뭐 하는 새끼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한번 그의 귓가를 찔렀다. 입안에서 쓴맛이 돌기 시작했고, 털이 쭈뼛 섰다.


"고향... 가셨심더!"


자신도 모르게 말끝이 떨렸다.


"뭐라카노! 고향? 이 대목에 고향을 갔다고? 그건 그렇고, 오늘 제법 벌었을 텐데, 어데 한번 보자."


건달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그 손길이 자신의 품속 돈주머니를 노리는 것을 느끼고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돈은 김 여사님 돌아오시면 다 드려야 합니더. 저는 그냥 사흘만 알바하는 겁니더."


어떻게든 김 여사를 핑계로 이 위기를 모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매서운 손길이 그의 뺨을 강타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얼굴이 돌아갔다. 입안에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뺨의 화끈거림이 머릿속까지 번져갔고, 귀가 먹먹해졌다. 고통보다 더 뼈아픈 것은 굴욕감이었다. 성공한 도시 사람이 되리라던 꿈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 새끼가! 어데서 말대꾸하노!"


다른 건달이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그의 뺨을 또 후려쳤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고통이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돈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려 했던 그의 의지는 무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때 번쩍이는 검은 구둣발이 그의 명치를 강하게 걷어찼다.


컥!


숨이 턱 막히고, 고통조차 느낄 겨를이 없는 지경으로 길바닥에 쓰러졌다. 숨을 쉴 수 없는 두려움에 전신이 경직되었다. 차갑고 거친 아스팔트가 뺨에 닿는 순간, 현실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차츰 호흡이 돌아오자 몸 전체에 퍼지는 통증과 함께 절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극장가 한복판에서 무참하게 맞고 있는데,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았다.


주변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노점들은 황급히 자리를 정리했다. 순찰을 돌던 극장 경비원조차 멀찍이 서서 담배만 피웠다.


"이 개새끼가 뒤질라고 환장했나! 대가리에 똥만 찼나, 이 미친 새끼야!"


건달들은 쓰러져 헐떡이는 그에게 잠시 틈도 주지 않았다. 무자비한 발길질이 쏟아졌다. 욕설로 튀는 침이 비처럼 내렸다. 그는 겨우 숨을 내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각각의 발길질마다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몸의 고통만이 아니었다. 부모님께 자랑하려던 계획, 이제 막 시작하려던 꿈이 무너져내리는 소리였다.


돈주머니를 낚아채간 건달이 대충 세어보며 낄낄거렸다.


"야, 이 새끼 돈 존나 많이 벌었네! 삼백 넘겠다!"


건달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김여사 없을 때는 우리 끼다. 이게 이 바닥 룰이다 이기야."


그리고 건달들은 돌아서며 한 마디를 더 던졌다.


"내일도 자리 똑바로 지키라. 자리 비우면 김 여사 자리도 없는 기라. 알았제!"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진 후에도 그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비틀거리며 오징어 리어카를 끌고 리어카 보관소로 갔다.


보관소 주인이 무심하게 손을 내밀었다.


"연탄불 값하고 자릿세 이천 원."


그는 텅 빈 돈주머니를 뒤적였다.


단 한 푼도 없었다.



7.붉은 티셔츠


어제의 악몽은 생생했다. 명치를 강타한 구둣발의 고통, 눈앞에서 빼앗겼던 지폐뭉치.


그는 밤새 뒤척였다.


그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건달들이 떠나기 직전 던진 마지막 협박이었다.


"내일도 자리 똑바로 지키라. 자리 비우면 김 여사 자리도 없는 기라. 알았제!"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도망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믿고 자리를 맡긴 김 여사를 생각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 여사가 돌아왔을 때 자리가 사라져 있다면? 평생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갈 김 여사를 상상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도망칠 수도, 맞설 수도 없는 상황. 그는 절망 속에서 몸을 떨었다.


자취방을 나서기 전, 그는 거울 앞에 섰다. 부은 얼굴, 피멍 든 입술.


옷장에서 콜라 회사의 붉은 티셔츠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욱신거리는 몸을 움직여 티셔츠를 입었다. 거울 속에는 패배한 권투 선수의 몰골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이 붉은색은 건달들의 눈에 잘 띌 것이다.


그래도 붉은 티셔츠를 꼭 입고 싶었다.


콜라 배달을 하며 정직하게 땀 흘리던 날들의 증표였다. 건달들에게 빼앗긴 돈은 되찾을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상은 지키고 싶었다. 회사 티셔츠는 갑옷처럼 자신을 단단하게 감싸주었다.


연휴 마지막 날. 극장가는 <용형호제 2>를 보려는 관객들로 일찍부터 붐볐다. 이틀 동안 전석 매진을 기록한 극장 앞에는 암표상까지 등장해서 더욱 혼잡하고 어수선했다.


오징어 리어카는 쉴 틈 없이 연기를 피어올렸다. 그는 오징어를 구우며 어제 건달들이 나온 오락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오락실은 안이 보이지 않게 진한 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저 안쪽 미세한 틈새로 그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오싹함을 느끼며 그는 재빠르게 오징어를 구웠다.


"오징어 다섯 마리 주이소."

"오징어 세 마리에 땅콩 세 봉지 주세예."


오징어를 사려는 손님 줄은 극장 입구의 매표소 줄처럼 길어져갔다. 오늘은 연휴 마지막이라 가족 단위, 친구들이 모여오는 손님들로 줄은 좀처럼 끊이지 않았다.


그는 돈을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돈은 더 이상 돈이 아니었다. 오징어를 굽는데 걸리적거리는 귀찮은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는 김 여사를 생각하며 이마의 땀을 훔칠 새도 없이 오징어를 구웠다.



정오가 지났다. 극장 홍보 기사가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붉은 티셔츠의 그를 봤다.


"어, 콜라 배달 기사 아이가. 김 여사는 어데 가고, 오징어를 굽노."


"고향 가셨습니더."


"아, 그래! "


기사가 가까이 다가오며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얼굴이 왜 그라노? 혹시 어제 저녁에 오락실 건달 새끼들한테 얻어터진 게 니가?"


그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죽일 놈의 새끼들이. 김 여사를 이십 년이나 삥 뜯었으면 됐지. 대신 장사해 주는 니를 팼다는 말이가."


"괜찮습니더. 신경 쓰지 마이소. 괜한 일 당하지 말고예."


홍보 기사는 오락실 쪽을 슬쩍 보고는 나직하게 한 마디를 했다.


"똥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는 기라. 절대로 말대꾸하지 마라. 저 새끼들은 주먹이 먼저다 아이가."


그리고는 오락실 눈치를 살피며 극장으로 들어갔다.


붉은 티셔츠는 땀과 오징어 냄새에 절어갔다. 하지만 건달들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허리춤 돈 주머니는 더 이상 돈을 넣지 못할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어제의 수입을 훌쩍 뛰어넘었다. 곧 닥쳐올 상황에 대한 공포가 돈주머니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짙어졌다.


콜라 배달할 때 그에게 돈은 일한 만큼 돌아오는 정직한 대가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리 일해도 자신의 몫은 없었다. 게임의 룰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벌 수는 있지만 가질 수는 없는.


오로지 김 여사만을 생각했다. 내일이면 돌아올 그녀. 아들을 만나고 돌아올 그녀의 환한 얼굴. 그 얼굴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간신히 그를 지탱해 주었다.


극장 앞 그림자가 길어졌다. 성룡의 거대한 간판이 석양에 붉게 물들었다. 그의 붉은 티셔츠는 땀에 얼룩졌다.


건달들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8. 부산역


마지막 상영 시간이 다가오자, 극장 앞은 극심한 인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극장 직원들이 질서를 유지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붉은 티셔츠에 배여 가는 오징어 냄새가 점점 역겨워졌다.


어젯밤 건달들에게 맞은 부위가 계속 욱신거렸지만 자신의 몸조차 그의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오징어를 굽고 돈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 행위만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모든 게 역겨웠다. 이 냄새, 이 연기, 이 거리, 이 사람들.


바로 뒤 오락실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건달들의 눈초리가 종일 느껴졌다.


고름처럼 차오르는 허리춤의 돈주머니가 점점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건달들은 이 고름이 터지기를 기다리며 오락실에서 히히덕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게 이 바닥 룰이다."


건달이 정한 룰이 자신을 노예로 추락시켰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며 굴욕감을 견뎠다.



바로 그때였다. 밀려드는 줄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봐라, 영화 시작 3분 전이다! 빨리 구우라."


재촉하는 손님의 거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아직도 적지 않은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야, 씨팔. 대충 해라. 뭐 요리하나. 굼떠가지고 그래가 먹고살겠나."


앞줄의 손님들이 욕설을 퍼붓는 아저씨와 고성을 주고받았다. 리어카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 순간, 그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제,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를 사람들은 외면했다. 멈추지 않는 건달들의 폭력에 극장가를 지나는 많은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 건달 앞에서는 눈길조차 주지 못한 그들이 말이다.


그는 이 비열한 거리가 싫었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명절을 보내느라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단 한 사람 자신만은 그렇지 못했다.


건달들은 마지막 상영이 시작되면 오락실에서 나와 자신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3분.


그 짧은 시간이 그를 부추겼다. 단 한 순간의 결단이었다.


김 여사도, 오징어의 꿈도,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오로지, 콜라를 배달하며 알게 된 극장 뒤쪽 출입구를 자신이 열 수 있다는 사실만이 그를 숨 쉬게 했다.


리어카에 얼마 남지 않은 오징어도 팔아봤자 건달 주머니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고개를 돌려 오락실을 확인했다. 아직 움직임이 없었다.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줄이 엉켜버린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떨이다! 오징어 그냥 가져가이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리어카로 몰려들었다.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뛰었다.


극장 입구에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출입구로 접어들었다. 극장 입구를 지키던 직원들이 붉은 티셔츠의 그를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이 시간에 콜라 배달 온 기가?"


극장 직원들은 그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순식간에 극장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익숙한 복도를 지나 뒷문을 향해 달려갔다. 수북하게 쌓인 쓰레기를 정리하는 청소원이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리어카는 서로 오징어를 가져가려는 사람들로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건달들이 그 소란에 오락실에서 나왔다. 그들은 주인 없는 리어카의 혼란을 어이없이 바라봤다. 사라진 붉은 티셔츠를 찾아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는 이미 택시를 타고 남포동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숨 막히는 질주 끝에 도착한 자취방. 그는 옷장 서랍 밑에 숨겨둔 돈과 그동안 조금씩 모아 왔던 통장까지 모두 꺼냈다. 허리춤의 돈주머니까지 작은 가방에 쑤셔 넣고는 자취방을 나서 부산역으로 갔다.


기차에 몸을 맡기고 어둠에 잠긴 도시를 보며, 그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살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곧 밀려오는 죄책감. 김 여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준 그녀. 그는 작게 신음하며 몸을 웅크렸다.


'김 여사님, 죄송합니더.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었습니더.'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그는 비로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9. 진정한 승자와 패자


녹색 트레이닝복의 참가자들이 절망적인 게임에 몰두하는 TV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그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창밖 부천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지 오래된 시간, 상가건물들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오징어 게임'에 빠져들고 있었다.


"아빠, 218번 진짜 나빠. 친구까지 죽게 만들면서 상금 독차지하려고 하잖아."


아들이 투덜거렸다. 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게 이기는 방법이었어. 게임은 게임이잖아. 아빠, 그렇죠?"


"글쎄다."


말끝을 흐리며 그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기차에서 바라봤던 부산의 야경이 스쳐 지나갔다.


김 여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텅 빈 자리를 마주했을 때, 무엇을 느꼈을까. 극장 홍보 기사가 구타 장면을 말했을 것이다. 혹시 그녀는, 그가 건달들에게 당한 건 아닐까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어딘가에서 무사히 잘 살기를 바랐을지도.


돌이켜보면 그때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오직 살아남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그는 승자도 패자도 아닌 생존자였다.


생존을 확인한 순간, 그는 고향 양산 대신 서울로 올라왔다. 이대로 꿈마저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다 부천에 자리를 잡고, 양산 불고기를 차려 장사를 하게 되었다. 식당이 잘 되어 돈을 모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일구었다. 땅을 사고 상가건물을 지어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가족여행도 다니고 해외여행도 여러 번 갔지만, 유독 부산만은 피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도 졸린 눈을 비비며 안방으로 향했다. 거실에 홀로 남겨진 그는 꺼진 텔레비전 화면을 멍하게 바라봤다. 김 여사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 그는 잠들지 못했다.


조용한 새벽 기운이 스며드는 창문을 바라보다가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부산 남포동 극장가'를 검색해 봤다.


그가 기억하는 극장들은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거리의 모습도 많이 변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개최되지만, 주 무대가 해운대로 옮겨가면서 과거의 극장가의 명성은 빛이 바랜 듯했다. 그가 기억하는 남포동 극장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그 자리에는 씨앗호떡, 떡볶이, 납작 만두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노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그 시절 노점상들의 위생 문제와 도시 정비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오징어를 구워파는 리어카는 사라졌다고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오가는 활기찬 거리였지만, 그에게는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거리 어딘가에 매캐한 연탄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만 같았다. 완전히 지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마음 한 편의 기억. 후회와 그리움이 그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생존이 곧 승리가 아니었을까.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은 모든 것을 얻고도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새로운 삶을 일구었다.


그러나 김 여사는 여전히 그의 가슴 한편에 남아 있었다.


지울 수도, 갚을 수도 없는 빚. 그저 안고 사는 것. 그것이 승리자가 짊어져야 할 생존의 무게였다.


그는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부산 남포동 극장가를 가보기로 결심했다. 변해버린 그 거리를.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마침내 그 거리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다.



10. 부산의 메아리


그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다. 고향 양산에 들렀다가, 부산 남포동으로 곧장 차를 몰았다. 남포동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해운대 바다로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빠, 이렇게 더운데 남포동에 왜 온 거예요? 시원한 해운대로 가는 줄 알았는데!"


아들의 투덜거림에 그는 멋쩍게 웃었다. 휴가 오기 전 날부터 남편의 애틋한 눈빛을 본 아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숙소도 오늘은 여기에 정했어. 해운대는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야. 엄마도 부산은 처음이라 꼭 여기에 와보고 싶었어."


그는 가족들을 이끌고 자신이 30년 전 도망쳤던 극장가 거리로 향했다. 90년대의 남포동 극장가는 영화 간판이 거리 전체를 압도하고, 오징어 연탄불의 매캐한 연기와 노점상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활력이 넘치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거대한 영화 간판들은 온데간데없고, 극장 건물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현대적으로 리모델링되어 영화관임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거리를 가득 채웠던 영화 포스터 대신, 화려하지만 텅 빈 듯한 통유리 건물에 젊은 감각의 옷가게, 카페, 그리고 각종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길거리 노점들도 훨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는 낯선 거리에 서 있었다.


가족들과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풍경 위로 덧씌워져 보였다.


‘김 여사님은… 내가 내팽개치고 간 그 자리를 보며 얼마나 허탈했을까. 건달들의 협박과 주변 노점들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감당했을 텐데.’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30년을 짓누르던 죄책감이었다. 오징어를 구워 파는 노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고소하고 달콤한 씨앗호떡 냄새만이 바람에 실려왔다.


문득, 저 멀리 호떡을 굽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구부정한 어깨와 손놀림이 어쩐지 김 여사를 닮아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아빠, 저기 씨앗호떡 맛있대요! 우리도 하나 먹어봐요!"


딸의 목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 할머니는 김 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면서도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가족들과 함께 씨앗호떡을 사 들고 골목을 걷는 그의 마음은 복잡미묘했다. 과거의 치열함과 현재의 평화로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아내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워했고, 그는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30년 동안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삶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해가 저물고, 가족들은 자갈치 시장의 한 횟집으로 향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싱싱한 활어회 한 점을 맛보며, 그는 어둑해지는 영도다리의 고요한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창밖의 바다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김 여사는 그에게 빚이 아니라, 평생을 바쳐 갚아야 할 삶의 지표를 남겨준 것일지도 몰랐다. 삶의 비릿함 속에서도 사람의 온정을 느끼게 해 주었던 김 여사의 기억이, 시원한 바닷바람처럼 그를 감싸 안으며 다시 한번 다독이는 듯했다.



다음 날, 가족들과 함께 해운대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는 부산을 찬찬히 둘러봤다. 부산은 더 이상 도망쳤던 거리가 아니었다. 과거의 아픔을 보듬고, 현재의 행복을 감사하게 하는 곳이었다.


창밖으로 세계 최장의 캔틸레버 지붕이 웅장하게 드리워진 영화의 전당이 펼쳐졌다.


"아빠, 부산국제영화제 할 때 와 보고 싶어요."


아들의 말에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룡이 왔다아이가. 오징어가 불나게 생겼다아이가."


부산의 메아리가 그의 귀에 선명하게 울렸다.


잠시 뒤, 시야 가득 푸른 바다가 밀려들었다. 그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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