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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Dec 01. 2022

(콘텐츠업계에 대한)어쩌면 예언 2편: SF 장르

당신은 이미 SF를 쓰고 있을 수 있다/ SF는 장르가 아니라 문화혁명

과학소설이 단순히 과학을 소재로 한 소설을 뜻한다면 당신은 이미 SF(Science Fiction, 과학소설)를 쓰고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대는 과학 문명이 중심인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이보그(기계와 합한 인간)는 미래 얘기가 아니라 현재 얘기니까요. 인체와 결합되어 있지 않다 뿐이지 핸드폰과 컴퓨터가 인간 뇌의 확장이 되고 비행기와 우주선이 인간 다리의 확장이 되니까요. 온라인 SNS에서는 나의 가상 아바타가 활동하고 있고요. 과학 문명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인류의 여러 가지 문제를 빼고서는 인류의 고민과 문제들을 논할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과학이 소재가 된 소설을 다 SF라고 하긴 힘들겠죠. SF 장르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문화혁명이라고 생각할까요?


SF가 뭐냐고요? 그 정의에 대해서는 작가 수만큼 많은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확언하자면 ‘생생함’입니다. 판타지와는 차별되게 SF에서는 탈일상이 일상으로 확장되는 면이 있습니다.


즉, 판타지의 세계는 초자연적인 이유로 사건이 벌어지곤 하는데요. 예를 들어 좀비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가 초자연적이라면 ‘가짜 세계’라는 느낌이 듭니다. 현실과 판타지 세계로 이원화됩니다.


하지만 SF에서처럼 바이러스(과학적 요인)로 인해 좀비 사태가 벌어진다는 내용(영화 월드 워 Z)을 보는 사람들은 ‘가짜 세계’라고만은 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이름 모를 바이러스가 현실 속에서 ‘진짜로’ 좀비 사태를 발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짜로 만든 세계가 진짜로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탈일상이 일상과 섞이고 현실이 확장되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SF작가 조앤나 러스는 ‘SF가 종교 문학을 닮았다’ 고도합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라는 유명한 종교 문학이 있습니다. 종교적 믿음을 설파하며 지난 수백 년 동안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과학적 패러다임을 ‘믿는’ 현대와 닮은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SF 작가는 마치 또 다른 가능성의 평행우주를 하나 창조하는 셈입니다. 실재가 가상 실제로 대체되고 그걸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시뮬라시옹과는 반대의 지점입니다. ‘진짜로 존재할 수도 있는 현실 세계’을 만드는 셈입니다.


태생상 간접적인 감각에 의존해야 하는 온라인과 VR매체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콘텐츠란 막강한 경쟁력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SF는 인기가 있을 것이라 느낍니다. 비현실적인 온라인 콘텐츠가 현실의 확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적인 일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SF는 예술가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혁명적 도구가 될 것입니다.


 

서사 투명성이 높은 SF


지난 호 '어쩌다 작가' 에세이에서 오소영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있었죠.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면서 문화가 다른 곳에서 현대소설을 써내기가 어려웠고 도리어 판타지는 쉬웠다고요. SF 판타지의 새로운 세계관은 서사 투명성(텍스트가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졌어도 자기 문화처럼 친숙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요건)이 높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나라나 아프리카 가나의 고유한 세계관이 날것으로 표현된다면 전 세계 독자들이 공감하기 힘든 면이 있을 텐데요. 그들이 쓴 SF 세계관은 몇몇 요건만 갖춘다면 전 세계로 곧바로 소통 가능할 것입니다.


할리우드가 아니라 다른 작은 나라에서도 전 세계로 통하는 메시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혁명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나’는 ‘우리’한다. 우리는 ‘동사’다. ‘개인’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로 바뀌는 초연결 시대.


과학기술은 전 세계를 지구촌 즉 ‘우리’라는 운명공동체로 묶어놓았습니다. 지구촌 한쪽에서 벌어지는 재난이 남의 일이 아닌 시대가 되었죠. 지구촌 반대편의 환경재해나 경제적 타격에 쉽게 영향받는 상황이니까요.


수백 년 전 우리의 고조할아버지가 살았던 좁은 마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성소수자, 아바타까지 ‘공동체에 소속된 우리’로 편입해야 할 만큼 우리의 현실은 넓어졌습니다. SF는 어느 면에서 ‘세계관 장사’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짜가 아니라 대체 세계관이죠. 이런 ‘진짜 세계’가 확장된 SF 이야기를 쓸 때 성소수자의 입장을 제외하고, 소수 국가의 문화를 배제하고, 외계인의 입장을 제외하고, 로봇의 입장, 가상현실 속의 내 아바타의 입장, 살인자의 입장을 제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관객의 입장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견해가 신속히 수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OTT 플랫폼을 타고 지구촌에 방영되려는 콘텐츠는 각 나라의 문화적 통례를 무시하면 안 되는 현실입니다. 동시에 이런 서로 다른 입장 차이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스토리 이데올로기’들을 누가 더 잘 생산해내는가도 중요해집니다.


 현실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포함됩니다. 과거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세계관을 만들 때에도 현실의 독자들의 참여(공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SF는 참으로 인터 액티브한 문화혁명입니다. 작가 지망생들이 SF를 쓰다가 흔히 하는 실수가 판타지처럼 개인의 취향과 위안만을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SF는 엄밀히 말하면 창작자 개인이 아니라 집단 사회의 공동창작물인 경향이 있습니다.


일부 소비적인 판타지 장르에서 반복되며 서비스되는 개인적 환상의 충족과 위안과는 다르게 SF는 전 지구적 집단적 상상이고 적극적인 참여 문학인 셈입니다. 집단적 상상이라는 인터액티브적 서사에서 SF의 주인공은 나를 포함한 ‘우리’가 되는 혁명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 인기 콘텐츠가 되는 이유


지난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략을 많이 겪으며 민중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위기를 극복하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덕분에 주인의식이 있는 문화가 발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난제를 앞에 두고 개인 스스로가 주인(우리)이 되어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선진국에서 발행된 경제보고서들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은 서로 평등하다고 여기고 계급제도에 반기를 드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선진국에 진입하더라도 계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순응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부분입니다.


이런 전통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나 ‘킹덤’이 전 세계적인 팬덤을 누리게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이 사용한 '데스 게임’이라는 서브 장르는 몇십 년 전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에서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전 세계 공동체의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현재 관심을 받는 ‘계급갈등’이라는 이슈를 다뤘습니다. ‘킹덤’도 지도자의 윤리라는 전 세계적 현재 이슈를 깊게 건드렸습니다.


‘내’(한국)가 ‘우리’(전 세계의 이슈)한 셈입니다. SF 화하고 있는 K콘텐츠의 성공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패스트 팔로워의 신분에서 리더의 입장이 되어 인류의 난제를 풀어나가고 있는 한국에서, SF혁명은 이렇게 밝은 희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SF, 모두가 작가 되는 혁명


인류의 문학 역사 속에서 주인공들의 신분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수천 년 전 문학 속의 주인공들은 신화의 세계에 속한 ‘신’으로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들이 세상을 바꾸는 주체였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서도 당연히 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 중세에는 왕과 귀족, 그리고 현대문학에서 평민으로 주인공들의 신분이 하락해왔죠. 이야기 즉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가 현대에는 평범한 사람으로도 가능하다는 반증이기도 할 겁니다.


SF의 주인공은 외계인, 식물, 소수자 등 다양한 이들입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했던 시대는 지나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다양’해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로 편입되는 이들이 많아져가고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국 SF문학이 수십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문학판의 변화가 실감 나는 요즘입니다. 요새 쓰이는 모든 작품이 SF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이가 SF를 쓰기 시작하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2021년 초. 본격문학으로 등단한 작가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SF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고 공표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빠르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하는 기술사회를 이끌어가려면 다양한 의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공부를 십수 년 한 엘리트 작가뿐만 아니라 본업에 매달리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변방에 위치한 나라의 국민들 등 다양한 의견들이 모여야 진정한 ‘진실’의 ‘광장’과 ‘마당’이 마련되는 것 아닐까요?


1666년에 출간한 마가렛 캐번디쉬의 SF 소설 ‘불타는 세계’는 외계인들의 여왕이 된 주인공이 사회, 문화, 경제적인 시스템을 새로 만드는 작업을 묘사합니다. 작품을 쓴 작가는 말합니다.


SF의 시작을 플라톤의 '국가론',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까지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저는 한국의 '홍길동전-율도국'도 그렇다고 봅니다.

‘나는 여성이어서 재산을 소유할 수도 없고 관직을 가질 수도 없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세상은 꿈꾸고 만들 수 있다. 그런 나도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으니 당신들도 할 수 있다.’

 


세상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작가가 되려는 SF문화 혁명이 점점 더 큰 규모로 퍼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데이터는 세상을 반영합니다. 화제가 되었던 인공지능 챗봇의 여성 혐오 건도 다양한 건의 데이터 수집이 되지 못한 이유에서 입니다. 당신의 이름이 문학 장르가 되는, 다양한 목소리가 세상을 대변하는 날을 설레며 기다립니다.




퓨쳐리안은 문단에 소속되지 않은 신인들을 양성해서 데뷔를 도와주는 곳입니다. 주로 무료 합평과 컨설팅이 이뤄집니다. 그동안 작가 교육을 받지 않은 여러 신인들 중 과학자, 북한이탈주민, 소수자 등 수십 명의 신인들을 배출했고 그중에는 수십만 부를 판매하는 작가와 유수의 상을 받는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퓨쳐리안은 앞으로도 다양한 민간인? 작가들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futurian2022에서 앞으로 다양한 활동 기록을 올릴 예정입니다.



무료 합평과 소설 강의 문의는 팔로우 후 DM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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