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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공장장 Aug 01. 2023

뮤지컬 사칠 2

출동풍경

1. 구조대원들

휴게실에서 세 명의 배우를 보았다. 순간, 깜짝 놀랐다. 그 세 사람이 너무나 소방관 같아서. 기동복이나 방화복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티셔츠에 반바지, 혹은 연습하기 편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는데... 똑같았다. 그 세 사람은,


119 구조대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두둥!!!


구조대는 다른 출동부서와는 달리 특수부대 출신들이 많다. 내가 군복무를 했던 소방서도 그랬다. 특전사를 전역하고 특채로 들어온 경우가 대다수였다. 2년 2개월간 그들하고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구조대는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들어오는지!!!


에... 그러니까, 건담의 '뉴타입'처럼

구조대 반장님들은 대략, 3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기본 전제는 특수부대를 전역하고 온 '상남자'들이라는 것이다.


A타입.

피부가 까무잡잡하다. 말투도 시원시원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이스하고 쿨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딱 봐도 의협심이 있어 보인다. 격이 없어서 의무소방원들한테도 웃으며 잘 대해준다. 본인이 특수부대에서 고생했기 때문에 군인들한테 잘해주는 편. 정이 많다. 웃음도 많은 편이다. 의무소방원이 힘들어하고 있으면, 쓰윽, 하고 다가와 자판기 커피 한 잔을 준다. 그리고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한다.


"야, 이게 뭐가 힘들어. 나 특전사 있을 때 비하면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인마."


라테를 시전 하는 유형이지만, 괜찮다. 마치 이미 잘 알고 지낸 학교 선배, 이웃집 친한 형 같다. 마음 같아선 계급을 떠나, 형! 이러면서 폭 안기고 싶다. 이렇게 사람 좋은 A타입이지만 출동 현장에 가면 돌변한다. 마치 적토마를 탄 여포처럼. 그들은 열혈남아에 상남자이기 때문에 전투를 치르듯 화재를 진압하고 사람들을 구한다. 그래, 소방관이 저래야지. 하지만 A 타입 반장님의 보조가 되면 힘들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평소에 체력단련을 많이 해두어야 한다. 진짜 어마어마한 체력을 자랑한다.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A타입.

세 명의 배우들 중에 쾌남아가 '분명' 있었다.



B타입.

과묵하고 조용하다. 하지만 특수부대 출신이기에 인자강이다. 별다른 말이 없다. 가끔 씨익, 미소만 지을 뿐. 앞서 A타입이 대화를 주도한다면, B타입은 경청하는 유형이다.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이따금, 박수를 치며 활짝 웃기도 한다. 기동복 상의 탈의를 하면 엄청난 근육질의 소유자임을 알게 된다. 원칙을 준수하는 사내. 그들은 현장에서 여포처럼 날뛰는 A타입을 캄다운 calm down 시키는 역할도 한다. A타입이 감성을 담당한다면 B타입은 이성을 맡고 있기 때문. 그들은 어떤 훈련을 해도, 현장에서 그 어떤 힘든 상황이 와도 절대 내색하지 않는다. 과묵하고 어쩐지 젠틀한, 조용한 매력을 뿜뿜 뿜어내는 사내. 그래서 현장에 나가면 어머니들한테 인기가 많다. 열심히 대민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면 어머니 뻘 되시는 분들이 오셔서 마실 거라도 건네주신다.


조용할수록 내면은 폭풍처럼 끓어오르는 법. 이런 B타입의 구조대 반장님들은 '공'만 보면 눈이 돌아간다. 특히 족구에 목숨을 걸고 있는데,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승부욕의 소유자이다. B타입의 반장님들과 한 팀이 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패배는 상상할 수도 없다.


적진에서 강력한 스매시가 들어온다!

실수로 의무소방원이 공을 못 받았다.


잠깐의 정적.


B타입 반장님이 쓰윽, 돌아본다.

애써 미소를 띠며 말한다.


"... 잘하자."


웃고 있지만, 우리는 등골이 서늘하다.

다시 현재. 배우들 중에 B타입을 연상시키는 이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혹시... 공 좋아하세요?"



C타입.

츤데레들. 꺼렁꺼렁. 어쩐지 여유가 넘친다. 살짝 나사가 풀리는 듯 한 인상을 준다. 사실, 이는 전투력을 충전하고 있기 때문. 현장에서 더 발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평시에는 약간 정신줄?을 놓고 있다. 말투도 꺼렁꺼렁하다.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이 시작되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한다.


"아휴, 귀찮아."


모두가 짐작했겠지만 사실, 말만 이럴 뿐이다.  그는 전형적인 강자다. 이 사람도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막상 훈련이 시작되면 언제나 선두 그룹에 있다. C타입 반장님들은  의무소방원들한테 엄청 까칠하게 말한다. 하지만 지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게 이 사람이 화법이라는 것을. 친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더 그런다는 것을. 자유로운 인간 유형이 많다.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면서 강력한 규율을 자랑하는 특수부대를 나오고 또 소방관이 되다니. 약간은 모순적이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 어디 내 뜻대로만 살 수 있겠는가. C타입반장님들은 "귀찮아", "좀 쉬었다 하죠?"라는 말을 자주 한다. 헐렁헐렁한 것을 기본 콘셉트로 잡고 있다. 사실 그들은 진심은 이렇다. 아닌 척 해도, 구조대 대원들과 의무소방원들을 신경 쓰고, 남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거. 진정한 츤데레들이라고 할 수 있다.





2. 상황실 무전 이해하기 


상황실E        

에에엥~ 화재출동, 화재출동. XX동, XX아파트.

남양 펌프 1호, 남양 펌프 2호, 물탱크, 남양 구급 1호, 구조차 출동.


-출동 방송 이해하기.

불이 났다. 상황실은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지령을 내린다.

지령대에서 상황실 직원이 마이크 앞에 선다.

직원의 출동명령은 소방서 내 스피커를 통해 전 직원들에게 전달이 된다.


아래는 해석?이다.


상황실E       

에에엥~ (사이렌 버튼을 눌렀다)

화재출동, 화재출동, XX동(해당지역), XX아파트(화재장소)

남양 펌프 1호 (펌프차를 일컫는다. 불을 직접적으로 끄는 소방차)

남양  펌프 2호 (여기서 '남양'이란 '동'이름을 말한다. 남양동에 있는 소방서인 것이다)

혜화동이면 혜화 펌프 1호, 혜화 펌프 2호였겠지?

                  

일단 기본적으로 불이 나면 펌프차 2대는 나간다. 다른 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있던 소방서는 그랬다. 나는 의무소방원 시절 직파/직할 파출소(소방서 안에 있다)에 있다가, 상황실을 거쳐, 다시 외곽 파출소(각 지역에 있는 경찰파출소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거 같다) 이렇게 근무(복무)를 했다. 그래서 다른 의무소방원보다 내, 외근 업무를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출동부서에 있다가 외곽 파출소로 근무지를 옮기는 경우는 있어도 상황실로 가는 건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지금은 '파출소'라는 명칭이 '안전센터'로 바뀌었다. 상황실 접보도 해당 소방서 상황실이 아니라 종합상황실에서 신고를 받고  다시 해당 소방서에 지령을 내리는 방식으로 바뀐 걸로 알고 있다. 여하튼, 내가 복무했던 2003년에는 그랬다. 다시, 출동 방송을 살펴보자.

                    

                

상황실E        

에에엥~화재출동, 화재출동, XX동, XX아파트

남양 펌프 1호, 남양  펌프 2호, 

물탱크(물탱크는 물이 떨어졌을 경우를 대비하여 급수지원을 해주는 소방차량이다)

남양구급 1호 (남양동에 있는 구급차/앰뷸런스)


여기서 상황실 직원은 남양구급차 1호 만을 보냈다. 만일 사고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면, 남양구급 2호 또한 출동을 시켰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애초에 구급차 1호와 2호를 동시에 보내지 않느냐? 뉴스나 미디어를 보면 '소방서의 안일한 대응' , '구급차가 한 대 더 있음에도 출동 안 시킨 소방관 직무 정지' 등등, 이런 소식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역시나 안일하군. 아니, 세금 받아먹으면서 왜 소방서에 있대? 다 출동시켜야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근데 내가 소방서 상황실에 있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구급 2호는 남겨 놓는 게 좋다. 왜? 교통사고나 또 다른 위험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까. 화재, 구조, 구급은 하루에 한 번씩만 생기는 사고가 아니다. 경험상, 거의 대부분 또 다른 출동이 발생한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때문에, 상황실 직원은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지금 구급차를 몇 대 출동시키는 것이 옳은가, 출동차량은 몇 대로하고 지원 차량은 몇 대씩 편성하는 게 좋은가, 등등. 내가 있었던 서를 예로 들자면, 상황실장님이 엄청난 베테랑이었다. 카리스마도 있었으며, 출동차량에 대한 계산, 언론에 대한 대처 등등.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출동부서에 오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장 상황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출동차량 및 지원차량에 대한 계산들이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여하튼, 다시 출동방송을 보자.


구조차 출동(구조대를 의미한다)

구조차와 구조대원들은 앞서 말했듯, 119 안에서도 독보적인 포지션이다.

큰 사고가 발생했다? 웬만하면 구조대는 다 나간다.



3. 그때, 소방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출동 전 서내의 상황을 보자.


각 부서 별로 소방관들은 업무를 보다가, 잠깐 쉬다가, 혹은 전화를 받거나 하는 등 각자 자신들의 업무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어느 순간 스피커에서 출동방송이 나온다.


상황실E        

에에엥~ 화재출동, 화재출동. XX동, XX아파트.

남양 펌프 1호, 남양 펌프 2호, 물탱크, 남양 구급 1호, 구조차 출동.


여기는 소방서 안에 있는 직할 파출소.  출동 대원들은 업무를 중단하고 각자 자신의 차량을 향해 우다다, 달려간다. 1분 1초가 급하다. 짧은 시간 사이에 누군가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 여기서 포지션이 갈린다. 운전을 하는 소방관과 불을 끄는 소방관. 운전을 하는 소방관이 운전석에 앉는다. 불을 끄는 소방관들은 보조석 혹은 뒷좌석에 앉는다. 앉자마자 방화복 입는다. 공기호흡기 착용한다. 우다다다!!! 운전을 하는 소방관은 바로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다. 그리고 무전기에다가 말한다.


펌프 1호        상황실! 펌프 1호 출동!!!

상황실           사칠 47(알겠습니다) 펌프 1호 출동 XX시, XX분.


시간은 중요하다. 5분 안에는 도착해야 한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곧 '생명'이니까. 이건 여러 번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여하튼,


자, 펌프차만 출동하느냐? 아니지, 조금 전 상황실에서 펌프 2호랑 물탱크, 구급 1호, 구조차도 나가라고 했지? 이건 동시진행이다. 펌프차가 우다다, 하는 동안 펌프 2호도 구급 1호도 우다다, 하고 있다. 직할파출소 옆에 있는 구조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구조대원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구조차량을 향해 우다다, 달려간다. 탑승하자마 당연히 무전을 하겠지?


펌프 2호        상황실, 펌프 2호 출동!

구급 1호        상황실, 구급 1호 출동!!

구조차           상황실!! 여기 구조대, 출동!

상황실           사칠, 펌프 2호 출동, XX시, XX분, 구급 1호 출동 XX시, XX분, 구조대 출동 XX시, XX분.


셔터 문이 열리고, 소방관들이 출동한다.

여기서부터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면이다. 소방차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모습. 


여기서, 내근 업무자들도 할 일이 있다. 서마다 명칭이 조금씩 달랐던 거 같은데, 내가 있을 때는 '방호구조과'였다. 앗, 출동이 났다? 여기 내근 근무자들도 우다다다, 출동하러 뛰어간다. 왜냐? 이 분들은 '지휘차'라는 차량을 타야 하거든. 현장을 촬영해야 한다. 증거자료 제출 자료 등등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화재 조사관도 화재 원인을 분석해야지. 우다다, 뛰어간다. 심지어 과장님도 차량에 탄다. 현장보고, 상황 보고도 해줘야지. 18년의 세월이 지나고 당시 그 장면을 생각해 본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풍경이다. 서내의 거의 모든 직원들이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풍경.


당신은, 살면서 누구를 구하기 위해, 그렇게 전력으로 달려본 적이 있는가.

숭고하고 멋진 풍경.





4. 의무소방원

우리 의무소방원도 펌프차를 향해 우다다, 달려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반장들처럼 우리들도 방화복을 입고 공기호흡기를 착용한다. 긴장된 순간이다. 다들,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실제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는 상상할 수도 없다.


의무소방원은 대체로 보조 관창수 역할을 한다. 반장님들이 불을 직접 끄는 관창수라면 그 뒤를 받치는 건 언제나 의무소방원 역할이다. 그만큼 수압이 세다.  


쉽게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샤워기를 튼다. 근데 이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최소 아파트 3층까지 도달해야 한다면, 그 수압은 대체 얼마나 센 것일까? 화재 진압 상황이 그렇다. 성인 한 명의 힘으로는 그 수압을 견뎌내기 어렵다. 그래서 그 뒤를 받쳐주고 함께 수압을 이겨낼 보조관창수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군 복무를 할 때는 의무소방원이 그 역할을 했다.


다시, 펌프차 안. 의무소방원은 생각한다. 자신이 할 일에 대해서. 차량이 현장에 도착한다. 의무소방원은 재빨리 고임목을 차량 바퀴에 댄다. 차가 뒤로 밀려나거나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며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다. 사이드브레이크가 있지만 늘 현장에서는 변수란 것이 발생한다. 의무소방원이 고임목을 대는 동안 경방(불을 끄는 소방관)은 관창을 들고 발화점을 향해 우다다, 뛰어간다. 그럼 의무소방원도 호스가 꼬이지 않았나 살펴보며 우다다, 뒤따라간다. 경방은 약속지점에 도착하자마자 방수를 시작할 것이다. 뒤에 보조관창수가 도착했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최대한 빨리 도착해서 방수를 하는 것이니까. 보조관창수가 도착하든, 도착하지 않든 방수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으니까. 1초 사이에 누군가는 살고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보조관창수는 늦으면 안 된다. 

경방이 방수하기 전까지 무조건 그 뒤에 서 있어야 한다. 

이것은 암묵적인 약속이다. 


...누군가에게, 등 뒤를 내준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


다시 펌프차 안. 긴장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무서운 순간이다. 실수하지 말자. 실수하지 말자. 실수하지 말자. 


이때, C타입 반장님이 말한다.


"나보다 늦으면 죽는다아?"


말했지? 츤데레라고. 꺼렁꺼렁. 츤츤. 그가 긴장을 풀어주고 우리를 걱정해 주는 방식이다. 


B타입 반장님은 씨익, 웃으며 말한다. 


"...잘 하자."


등골이 다시 서늘하다. 그래, 잘하자. 무조건 잘해야 한다. 


A타입 반장님? 혼잣말 시전. ㅋㅋㅋㅋ 중얼중얼. 여포를 소환하는 중;;;;

그리고 그는 잠시 후, 적토마를 탄 여포처럼 발화점으로 달려갈 것이다. 


앗, 반장님.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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