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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김소정 Aug 27. 2023

뜬 세상의 아름다움

유배지에서 정약용이 내게 건네는 삶의 아름다움 



뜬 세상의 아름다움

정약용/ 태학사




 남편 직장 때문에  2~3년마다 이사를 다녔습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이 순간도 헤어지고 나면 참 그립겠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익숙한 골목을 지날 때, 건물 사이사이 낡은 벽을 볼 때, 벽에 그림자를 그리는 꽃과 풀을 볼 때 가만히 서서 눈에 담고, 그것도 아쉬워서 사진으로 남깁니다. 지금이 추억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요. 삶에 배인 습관이지요. 그렇게 옮겨 다니며 사는 삶이니 장기적인 계획 같은 걸 세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옥상에는 여러해살이 꽃과 열매를 맺는 나무를 키웁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언제 이사를 갈지도 모르고 그러면 다 짐인 걸 말입니다. 



 <<뜬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책에서 읽은 내용이 저의 삶에 영향을 주어서일까요. 다산 정약용이 지은 이 책에는 유배시절에 깨달은 여러편의 단상이 실려 있습니다. 유배 당해서 쫓겨온 곳에서 다산은 봄이 되면 꽃모종을 내고 약초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꿉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지켜본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대는 지금 귀양살이 중인 사람일세, 주상께서 이미 사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셨으니 사면의 글이 오늘이라도 도착하면 내일엔 이곳에 없을 터 무엇 때문에 꽃모종을 내고 약초 씨를 부리고 샘을 파고 도랑에 바위를 쌓고 애를 쓰는가. 나는 아침에 저녁을 생각지 않는다네. 우리의 삶이란 떠다니는 것이기 때문이지 혹은 떠다니다가 동쪽으로 가기도 하고 혹은 떠다니다가 서쪽으로 가기도 하며, 혹은 떠서 멈추기도 하며 혹은 떠서 떠나기도 하니 이 순간도 곧 떠나가게 되는데 그대의 일이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군.”
“저 꽃과 약초, 샘과 바위들은 모두 나와 함께 떠다니는 것들이네. 꽃이 진다고 해서 아름답지 않으며, 꽃이 진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겠는가? 지고 말 꽃이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사랑스러운 것을. 집착할 것도 한탄한 것도 없이, 그저 충분히 살고 가면 될 뿐이네. 생각해보면 떠다닌다는 것도 아름답지 않은가?”


매번 이사를 다녀야 하는 저 뿐 아니라 이땅에서 떠날 날이 있으니 사실은 우리 모두가 뜬 세상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곧 떠날 삶이라 해도 남은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삶, 그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두근두근 내인생>>에 눈을 보고 엄마와 이야기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엄마,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 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땅에 닿자마자 금방 사라질 텐데.”

  하늘에서 떨어지면 바로 녹아 없어지는 눈은 왜 그토록 아름답게 지어졌을까. 오히려 순간 사라지고 없어지기에 더 아름답고 애틋하지 않을까요. 하루를 살더라도 영원히 남을 것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삶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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