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너의 입에서 튀어나온 보석들

by 휘게

운떵이가 2개면 좋겠다. 아니 운떵이가 5개 있었으면 좋겠어

“운떵이 5개로 뭐 하게?”

한 운떵이는 나랑 놀아주고, 한 운떵이는 설거지하고, 한 운떵이는 일하고, 한 운떵이 청소하고, 한 운떵이는 요리해 줬으면 좋겠어.


온건이가 5살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와 나눈 대화이다. ‘운떵이가 5개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서 엄마랑 자신이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읽는다. 짧은 대화였지만 아이의 말에서 엄마가 분신술이 불가능한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분신술을 해서라도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소망과 엄마에 대한 애정을 느꼈다. 상상력을 보태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지 않을까 한다.


'엄마가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해야 하는 건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나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거든요. 이런 내 마음 이해하지요?’ 혹은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을 만큼 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해요.’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는 비록 분신술로 5명이 되지는 못하지만 ‘내일 하루만큼은 집안일하지 않고 온전히 온건이에게 집중해야지.’라는 다짐으로 온건이의 메시지에 응답한다.

아이가 무심코 흘린 말(표현) 조각들을 주워 담기 시작한 건 이즈음이었다. 말을 못 하고 ‘응애’만 하던 아기가 신통방통하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하게 되는 과정(특히 말대꾸)은 가히 경이로웠다.


4살 때까지는 아이의 소중한 순간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찍었다. 말을 잘 못할 때니 귀여운 행동을 담기 위해서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만 담아두기에는 너무나도 귀한 순간이 많았다. 온건이의 성장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고생하고 돌아온 남편과 공유하고 싶었다. 또한 아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모든 것이 처음이니 담을 거리들이 넘쳐났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는 엄마와 온전히 24시간 함께 했으니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았다.


그러나 점점 커갈수록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안 찍게 되었다. 이유 중 하나로 아이 자신의 기분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사진이나 영상 찍는 것에 거부 의사를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는데 아이는 자신의 흑역사임을 간파한 듯 도망가거나 카메라로 한껏 다가와 도저히 찍을 수 없게 만들었다.

더구나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게 되면서 ‘찍지 마.’라는 아이의 단호한 거절에 나는 ‘싫은데 찍을 거지롱.’이 되지 않았다. 아이의 말과 표정에서 웃어넘기며 무시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또한 어린이집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오느라 어릴 때보다 소중한 순간을 발견할 기회가 줄었다. 영아기에 비해 아이의 성장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시기도 아니어서 찍을 동력마저 잃었다.


대신 아이의 ‘말’이 보다 명확해지고 풍성해지다 보니 아이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더구나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에는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말들이 나에게 닿아 나를 일희일비하게 만들었다. 때로는 나를 과거로 데려가기도 했고 때로는 현재를 직시하게 하거나 미래로 이끌며 시간여행을 하게 만들었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아이가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했고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간간히 기록해 두었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주워 담은 아이의 소중한 말들은 구석에 쳐 박혀 먼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이렇게 구석에 쳐 박아두지만 말고 꺼내서 먼지도 털고 닦아서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고 싶었다. 보석과도 같은 너의 말이 엄마에게로 와서 어떻게 빛났는지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서점에 가면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책들이 많다. 나도 읽고서 도움을 받았지만 아이가 하는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한 내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만큼이나 중요한 것임을 아이를 키우며 매 순간 깨닫는다. 이 글들은 그 깨달음의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