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예비 초등학생이라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할 일을 먼저 하고 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다. 협의서를 본 남편이 아이에게 가서 내용을 똑바로 읽고 이해하고 사인한 것이 맞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매일 워크북 2장씩 풀기와 같은 내용을 적었는데 그것을 다 해내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다. 실제로 아이가 매일 다시 협상을 걸어오기에 최대한의 계획을 해야 최소한의 계획을 겨우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의서 내용에 적힌 할 일들을 모두 소화하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가기 전 매일 10분이라도 자리에 앉아서 할 일을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한 목적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푼 워크북을 점검을 하는데 꼭 한 문제씩 풀지 않고 남겨 두는 것이었다. 그 워크북은 5세 때 사놓은 문제집인데 풀지 않겠다고 해서 7세까지 처박혀 있다가 안 풀 거면 사촌 동생에게 주겠다고 하니 그제야 풀겠다고 해서 마음이 내킬 때 2장씩 풀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실수려니 하고 풀지 않는 문제를 체크하고 풀게 했다. 그런데 워크북을 푸는 날이면 꼭 한 문제씩 안 하길래 물었다.
“왜 한 문제씩 빠뜨리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는데 풀 때마다 한 문제씩 빠뜨리길래 실수야?”
“내 마음이지!”
‘내 마음이지’를 듣는 순간,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와서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난 뒤 아이가 나랑 체스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매일 10분 습관 들이기에 꽂혀있던 나는 워크북을 안 했기 때문에 지금은 체스를 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아이랑 워크북을 하자고 책상에 앉았는데 내가 잠시 자리에 뜬 사이에 아이가 간식으로 줬던 매실차를 쏟아버렸다. 책은 물론이고 책상을 타고 바닥에 매실차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매실차를 따라주면서 ’ 흘리지 마라 ‘고 언질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매실차가 자기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에너지로 ”흘리지 말라고 했지! “가 터져 나왔다.
아!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자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책이며 책상이며 바닥이며 닦을 생각을 하니 짜증부터 확 났다. 실은 아까부터 내게 시답지 않은 이유들로 툴툴대는 아이를 흐린 눈으로 보며 ’ 아이가 어떻게 매너 있게 워크북을 하겠어.‘라고 애써 넘기고 있던 터였다. 매실차의 자기 영역 확장에 자애로운 어머니 코스프레는 무너졌다. 참고 있던 한숨이 터져 나오고 신경질적으로 휴지를 둘둘 풀어 책상과 바닥을 닦았다. 아이는 울먹였고 아빠에게로 갔다. 그러더니 둘이서 체스를 두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이 아이에게 말하는 들렸다.
“온건아, 아빠가 아무리 바빠도 온건이가 체스 두자고 하면 언제든지 체스 둘 거야. 그러니까 체스 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아빠한테 와서 두자고 해.”
남편에게 나중에 들으니 온건이는 엄마한테 체스를 두자고 했는데 안 해서 매실차를 일부러 쏟았다고 고백하고 엄마한테는 비밀이라고 이야기했단다. 체스를 안 한다고 했다고 내게 반항한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체스 한판이 뭐라고, 체스로 스트레스 푸는 거 같아. 건전하게 스트레스 푸는 방식이 오히려 다행인거지.”
자칫 응어리질 뻔한 아이의 마음을 다행히 남편이 잘 어루만져 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반성했다. 워크북이 뭐라고 체스를 거절하고 매실액 쏟은 게 뭐라고 단전에서 뿜어 나오는 에너지를 막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 일이 떠올라 남겨진 문제 하나도 온건이의 마지막 자존심 같아서 그냥 두었다. 풀지 않은 한 문제가 내게 꼭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내 비록 지금은 어리고 미약하여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뜻대로 5세 워크북 2장씩을 풀고 있지만, 결코 모든 것이 어머니의 뜻대로 되진 않을 것이 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내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풀지 않고 남겨 둔 한 문제에서 ‘따를 수밖에는 없지만 순순히 따라주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엿보였다. 멀리 갔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1수용소로 들어가는 정문의 문구 ‘ARBEIT MACHT FREI(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에서 세 번째 알파벳 뒤집힌 B 모양이랄까? 온건이의 자유의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순간마다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도 어릴 때 소심한 반항을 한 적이 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주말에 부모님이 다투셨다. 아빠의 과도한 취미생활로 인한 엄마의 과도한 잔소리로 시작된 다툼이었다. 아빠가 취미활동 가실 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라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 당시 감수성이 예민했던 나로서는 두 사람 모두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게 늘 불만이었다. 결혼하고 나니 두 분 모두 입장 차가 극명하다 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다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느꼈던 불안과 무력감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또렷하다.
부모님은 티를 안 낸다고 안 내셨을지 몰라도 주말 내내 냉기가 흐르는 집에 있기도 싫어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다 자취하던 친구 집에 가 있다가 저녁 늦게 돌아온 걸로 기억한다. 다음 날인 월요일에는 지금으로 치면 수행평가 같은 영어 쪽지시험이었는데 반장이었던 나는 시험시간 내내 엎드려서 눈물만 뚝뚝 흘렸고 문제를 풀지 않은 채 백지로 냈다. 영어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셨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신 선생님께서 엄마한테 전화를 하셨다. 이후의 일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른들 모두 내게 별다른 말씀을 안 하셨다.
분명한 건 그런 행동은 그 당시에 내가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었다. 당신들의 다툼 때문에 내가 상처받고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고 호소하는 거였다. 이후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어렴풋이 느끼셨는지 표면적으로는 다툼이 잦아들었던 거 같다. 안타깝지만 그게 표면적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였다. 그때의 나는 어른들의 문제라고 선 긋지 못하고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한 나 나름대로 괴롭고 힘들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아이가 내게 보내는 다소 불편한 방식의 메시지일지라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최선의 SOS일 수 있음을 알기에. 때로는 지나치거나 놓칠 수 있겠지만 어른들만의 문제나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응어리지게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풀지 않고 남겨 둔 한 문제’에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러면 가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연약하고 미약하여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나는 엄연히 자유의지가 있는, 존중받아 마땅한 하나의 인격체이며, 혹여 내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면 풀지 않고 남겨 둔 한 문제로 내 마음을 보여주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