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친구와 두고 싶지만 형아들이랑은 두고 싶진 않아
“나 B반 체스수업 안 듣고 싶어.”
“A반은 체스수업은 이미 정원이 차서 옮기질 못해. 3개월 동안 수업 못 들어도 괜찮겠어?”
“아~체스 수업 듣고 싶은데... 강력한 친구와 두고 싶지만 형아들이랑은 두고 싶진 않아.”
울먹이는 아이를 보니 난감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체스를 접하게 된 후 체스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마침 어린이집 같은 건물 문화센터에 체스수업이 생겨서 6세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도 듣고 집에서도 거의 매일 체스를 두다 보니 수업 중 체스모의대회에서 1위를 할 만큼 실력이 눈에 띄게 늘게 되었다. 아이가 잘하기도 하고 7세가 되었으니 윗 반을 들어도 될 것 같아서 아이와 상의 없이 A반(5-6세)이 아니라 B반(6-초3세)을 신청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이에게 체스수업시간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하니 친구들도 그 수업을 같이 듣냐고 물었다. 친구들 생각을 미처 못한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체스를 듣는 다른 친구들은 A반을 그대로 신청해서 친구들과 체스수업을 함께 듣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체스수업이 인기가 좋아 이미 인원이 다 찬 상태라 이동도 불가한 상태였다.
이를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아이와 미리 상의하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체스수업 시간을 변경한 것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온건이는 체스가 자체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친구랑 체스를 두는 게 재미있어서 체스에 흥미를 가지는 것일 수도 있어. 온건이가 난생처음 좋아하는 것을 찾았는데 이번 일로 체스에 흥미를 잃고 더는 체스를 하지 않게 되면 어떡할래?”
안 그래도 온건이에게 미안했는데 뒤에 이어지는 말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였다.
“만약 온건이가 체스를 안 두겠다고 하면 네가 온건이가 좋아하는 걸 빼앗은 거야. 나는 온건이가 좋아하는 걸 잃게 되는 게 싫어. 이번 일은 네가 잘못한 거 같아.”
남편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극단적으로 표현하니 나는 무안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정신이 번뜩 들었다.
생각도 못 했다. 솔직히 말하면 7세가 되기도 했고 이기기만 하는 것보다 도전받으면서 어느 정도 좌절하는 것도 필요할 거 같아서 B반을 신청했는데 친구들과 두고 싶은 아이의 마음까지는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형님들이랑 두면서 자극받아 실력이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 엄마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남편과의 대화에서 마주하고 나니 남편 보기도 부끄러웠다. 체스를 그 자체로 즐기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보기보다는 아이가 체스를 잘하는 게 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버린 것이다. 체스를 잘하고 못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체스를 두면서 느끼는 그 쾌감과 재미를 7살인 온건이가 느끼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놓치고 만 것이다.
나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것’이 인생에 살아갈 때 힘든 순간마다 얼마나 큰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온건이가 체스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될 암초들을 지혜롭게 잘 넘어가기 위한 무기가 하나 생긴 거 같다며 둘이서 기뻐하며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자신과 맞는 취미를 발견하고 지속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온건이는 자신과 맞는 취미를 되도록 어려서부터 찾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남편은 퇴근하고 와서 아이와 함께 체스를 두었고 나는 더욱 체스에 대해 흥미를 느끼도록 체스에 관련된 책도 알아보고 하던 참이었다.
사심 없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입해서 성취를 해 보는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에 이번 일로 아이가 체스와 멀어질까 봐 마음을 졸였다. 표면적으로는 온건이를 위한다고 한 엄마의 만행을 어떻게 만회할 것인지 나도 나름대로 고민이었고 온건이도 고민하고 있었다. 아이입장에서는 체스수업을 취소하면 3개월 동안 체스수업 못 듣고 체스수업을 듣자니 형님들과 함께 들어야 하니 진퇴양난이었다. 그럼에도 온건이는 한번 수업을 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해주었고 나도 수업을 듣고서 온건이가 더는 듣기 싫다고 하면 수업은 취소하고 매일 체스를 둘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B반 체스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온건이가 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엄마! 내가 초등학교 형아를 이겼어!”
체스선생님께 사정을 이야기하며 온건이가 이 수업을 들어도 괜찮을 것인지 여쭈니 다행히 온건이 실력은 이제 B반을 들어야 한다고 잘 신청하셨다고 해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간식을 사주며 아이에게 체스수업 계속 갈 것인지 물었다.
“응, 막상 가보니 괜찮더라. 선생님이 내가 체스를 잘해서 B반 가는 거래. 나 계속 B반 갈래.”
이런 사정을 안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도 아이에게 체스를 잘해서 B반에 가게 된 거라고 용기를 주신 듯했다. 또한 지금은 친구들도 B반으로 와서 함께 체스를 더욱더 즐겁게 두고 있다.
이번 일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온건이는 체스에서 상대를 이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이가 체스를 지건 이기건 감정표현이 크지 않아서 승부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이기고 싶어 했던 거 같다. 아이 말 그대로 강력한 친구와 두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형아들이랑 해서 계속 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형아를 이겼으니 B반도 들을 만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B반을 신청해서 아이가 체스를 두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나로 인해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혹여 잃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 시간이었다.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는데 하마터면 내 의도와 다르게 어긋나 버릴 뻔했다. 돌이켜보면 계속 좋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과 계속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다른데 착각했던 거 같다. 물론 좋아하니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니 좋아하면서 이들이 맞물려가는 것이지만 더 좋아하게 돕기보다는 더 잘하게 도우려고 했던 것을 인정한다.
나는 여전히 온건이에 대해 배우고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지만 불행히도 이번처럼 매번 성공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은 지켜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지만 그 다짐은 다짐으로 끝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도 엄마는 아이와 함께 실수하며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