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서른 살 되면 엄마는 몇 살이야? 아빠는? 내가 육십 살 되면 엄마는 구십 네 살이야? 엄마, 아빠가 00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돼?”
“응, 누구나 나이가 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지.”
“엄마,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 안 됐으면 좋겠다.”
“왜?”
“엄마, 아빠랑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어서...”
작년부터 온건이가 꽤 진지하게 자주 물어오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서 엄마, 아빠와 오래도록 살고 싶은 아이의 소망과 엄마, 아빠의 부재가 두려운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이의 질문을 들을 때마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아이 곁에 머물겠노라 다짐한다.
마흔이 되면서 병은 없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亚健康)가 계속되어 본격적으로 근력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예전 같으면 거뜬히 해낼 일임에도 금방 지치고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국한된 나의 인내량이 점점 줄어 들어가는 것을 스스로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그래서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되어서까지 지속 가능한 운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근력을 키우는 운동에 집중하고 싶었다.
물망에 오른 운동은 P.T와 클라이밍이었는데 P.T는 내가 염두에 두고 있던 거였고 클라이밍은 지인과 남편의 추천이었다. 집 근처 여러 센터에 상담을 갔다. 일단 P.T는 재미가 없을 거라고 각오했지만 상담을 하면서 도저히 혼자서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클라이밍은 근력을 길러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근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을 하면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추천해 준 분 또한 클라이밍을 강력 추천하셨지만 어깨부상으로 잠시 운동을 쉬는 상태였다. 나 또한 오른손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언 1년 정도 일상을 불편하게 지낸 경험이 있던 터였다. 엄지부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는 것을 멈춰야 했던 일은 엄지손가락이 아팠던 것보다 더 쓰라린 기억이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건물에 문화센터의 강좌들을 보게 되었다. 등하원을 하면서 왜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웬만하면 등원 시간에 맞춰서 운동을 하면 좋겠다 싶어 가능한 시간대 중심으로 강좌를 살펴보았다. 눈에 들어온 건 발레와 필라테스였다. 문화센터 강좌는 운동량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고 호기롭게 두 과목 모두 신청했다. 각 주 2회씩 해서 총 주 4회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필라테스는 소도구를 활용한 매트필라테스였는데 내 동작을 본 강사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낑낑대며 겨우 동작을 따라 하고 있는 내게 말씀하셨다.
“(’ 어쩜… 어쩌다… 어떻게 이렇게까지…‘를 담은 눈빛을 보내며) 많이 힘들어요? 아구구구~그동안 운동을 안 하셔서 그럴 수 있어요.”
강사님은 내 동작을 보고 이건 도저히 운동한 사람의 자세일 수 없다고 판단하셨다. 나름대로 20대 때부터 요가며 수영, 스쿼시, 테니스, 탁구 등 틈틈이 여러 운동을 해오며 잘하지는 못해도 운동에 진심인 나였다. 이래 봬도 수영도 상급반에서 오리발까지 꼈던 사람인데 비록 내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본 남편은 ’ 물장구‘라고 칭한 수영이었지만. 그 시간들은 내 몸 어딘가에 쌓여있다고 믿었었는데 아니었다니 내 몸에 배신감을 느꼈다.
나름 운동한 몸뚱아리라고 당당히 답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몸뚱아리가 운동했던 몸이라고 말하면 그동안 나를 거쳐 간 레슨 선생님들께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그냥 처음 운동해 본 사람처럼 마음껏 낑낑댔다. 근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 몸 상태를 체크하니 처참한 지경이었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운동을 했던 게 아니라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에 그치는 취미활동을 신나게 한 것뿐이었다. 어떤 운동이 됐든 레슨을 해도 항상 도약할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쳤고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니 실력이 늘지 않아서 늘 답답하고 그러다 보니 흥미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것이 근력 문제라는 것을 남편을 만난 뒤에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직언이 있었음에도 운동을 싫어하지 않는 게 어디냐며 근력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마흔이 돼서야 온건이 덕분에 비로소 “근력”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정도로 처참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참하기는 발레도 마찬가지였다.
발레는 50분 수업 중 30분을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하는데 유연성은 물론이고 근력도 1도 없던 나는 30분이 지옥훈련과 다름없었다. 윗몸일으키기, 누워서 두 다리 들어 올리기, 슈퍼맨 자세, 플랭크 3세트 등을 하는데 플랭크 자세는 1세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몸을 비틀어대는 나를 보며 발레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다 하지 않으셔도 돼요. 너무 힘들면 쉬다가 음악에 맞춰서 시작하고 시작했으면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세요.”
수강생들 중 나만 콕 집어 ‘쉬어도 되니 제발 1개라도 제대로 완성하라’는 강사님의 말에서 내가 어느 정도의 저질 체력이었는지 가늠이 되리라.
그렇게 나만 공식적으로 쉬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고 나는 당당히 2세트는 쉬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조금씩 조금씩 쉬는 시간을 줄이고 플랭크 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발레 수업에서 나는 우아한 발레 동작보다는 플랭크 1세트 완전하게 해내기가 목표였다. 격렬하게 최선을 다해 운동을 하고 있으면서도 격렬하게 최선을 다해 운동을 하기 싫다고 속으로 외치는 나 자신과 싸움이었다. 어떤 분들은 다른 동작은 잘 안되지만 플랭크만큼은 정자세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3세트를 거뜬히 해내셨다.
나는 1세트도 제대로 못 하는데도 누가 보면 다른 사람 플랭크까지 내가 다 한 줄 알 정도로 땀범벅에 신음소리까지 내는 처절한 상황이었다. 플랭크 자세로 버티고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몸뚱아리 하나도 스스로 조절을 못 하면서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냐? 내 몸무게를 내가 지탱할 수 있게 되는 그날이 오면 그때 잔소리하리라.’
‘마흔이 되도록, 그것도 운동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플랭크 1세트도 못하는 걸 어찌 설명할 거냐?’
그러다가 자세가 무너질 것 같으면 극단적으로 이렇게까지 가정했다.
‘내 등에 지금 온건이가 올라타 있어. 아래는 불구덩이야. 자세가 무너지면 온건이가 떨어진다.’
아들을 걸어야 겨우 무너지는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근근이 버텨나갔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전제부터가 잘못된 거 같아. 거기서 온건이가 왜 나와. 온전히 너 자신이 건강해지기 위해서 플랭크를 버티는 거지. 너 자신을 위해서 운동하는 거야.”
남편은 사고의 습관이 무섭다고 일침을 놓았다.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운동하는 동기를 통제할 수 없는 외부에서 찾는 게 아니라 통제 가능한 내부에서 찾으라는 말이었다. 이 말은 들은 뒤로는 아들을 걸지 않고 건강하게 늙어가는 명랑한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하며 플랭크를 버틴다.
아들을 걸어야만 버틸 수 있었던 처참하고 처절한 상황 속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주 4회를 빠짐없이 나갔다. 스스로 나갔다기보다는 아이를 등원시켜야 하니 반강제로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어 주 4회 운동을 하게 된 거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사이드 스플릿이 가능할 정도로 유연성과 플랭크 자세로 1분 30초를 버틸 수 있는 정도의 근력을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온건이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자신을 위해 오늘도 기쁘게 땀을 흘린다.
언젠가는 나도 할머니가 되고 온건이 곁을 떠나게 되겠지만 온건이가 조금 덜 슬퍼할 수 있게 행복하고 안녕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도 자식이 되어봐서 안다. 부모의 행복은 자녀의 행복이라지만 부모가 자녀의 행복과 안녕을 비는 것만큼이나 자녀 또한 부모님의 행복과 안녕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모른다. 부모가 행복해주어야 자녀가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알기에 나는 온건이를 위해서라도 생의 마지막까지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