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건축가가 될 거야! 과학자, 고고학자, 경찰, 축구선수, 야구선수도 될 거야. 그리고 망고빙수 가게 사장님도 될 거야. 엄마 꿈은 뭐였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였다.
멈춰진 꿈을 이야기해야 하나? 꿈꾸다 좌절된 이야기 해야 하나? 현재 꿈꾸고 있는 것을 말해야 하나?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꽤나 오랜만에 그런 질문을 받기도 했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떤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어렸을 때의 엄마는 어떤 직업을 꿈꿨는지 궁금해서 물었을 테지만 순간적으로 아이가 보기에 주부로 사는 지금의 내가 아마도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처럼 내가 되고 싶은 것을 마구마구 스스럼없이 꺼내 보이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더 당혹스러웠다랄까?
20대 때 <엄마마중>이라는 그림책을 보고 눈물지은 날, 언젠가는 이런 그림책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그림이나 글쓰기 관련 분야를 전공하지 않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전공자가 아니니 그림책 작가로 산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꿈을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 비밀의 방에 고이 숨겨놓았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그림이나 글쓰기는 평범한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천재들만의 영역 같았다. 글쓰기 책을 봐도, 글쓰기 강의를 들어도 ‘그냥 무조건 많이 써라’가 결론이었다. 그들만의 비법이 따로 존재하지만 평범한 나에게는 털어놓지 않는 거라며 틈틈이 그 비법을 찾아 헤맸다. 그럴수록 좋은 글을 알게 되고 읽게 되니 작가란 재능이 있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사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오해했었다. 특별한 사연이랄 것이 없던 평범한 나는 그러다 삶이 바쁘면 또 꿈을 잊고 살아가다 꼭 힘들 때면 이루지도 못할 ‘이 망할’ 작가의 꿈이 가슴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작가라는 것이 시험을 쳐서 합격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일정 기간 수업을 수강한다고 작가 타이틀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 안에 있는 것을 빚어서 꺼내 놓아야 하는 것인데, 방법도 모르겠고 내 안에 꺼내 놓을 만한 것도 딱히 없다고 생각하니 내겐 말 그대로 ‘이 망할’ 작가의 꿈이었다.
세상 밖으로 꺼내 놓아야 할 이야기는 뭔가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의 평범한 일상을 세상 밖에 내놓기가 면구스러워 ‘이 망할’ 작가의 꿈이 고개를 쳐들수록 더욱 마음속 깊숙이 욱여넣었다. 그러나 아무리 꽁꽁 숨겨놓은 꿈이라 해도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이 되면서 자주 힘든 순간을 마주하니 ‘이 망할’ 작가의 꿈은 더 자주, 수시로 고개를 불쑥불쑥 쳐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욱여넣는 힘보다 더 세져서 그야말로 불가항력이 되자 더 이상은 꿈을 욱여넣기보다는 꿈을 펼칠 수밖에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도전하게 된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여 요즘은 매주 글 한편씩 쓰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글쓰기는 실력이 아니라 실(천)력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가까운 목표는 글 50편을 쓰는 것이고 먼 목표는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이렇게 당당히 밝힐 수 있을 때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브런치는 꿈 앞에서 주저하던 평범한 주부가 오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공간에서 만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이야기에 건넨 라이킷은 말로만 글 쓰고 싶다고 하는 게으른 나를 책상 앞에 끌어다 앉힌다.
내게 브런치는 비밀열쇠와도 같다. 지금까지는 작가라는 꿈은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 비밀의 방에 꽁꽁 숨겨놓은 비밀이었다. 누군가에게 내보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어느 누구에게도 응원받을 수 없었다. 브런치 덕분에 봉인되어 있던 나의 꿈이 펼쳐졌다(브런치가 10주년이라는데 10년 전 비밀열쇠를 발견하지 못하고 이제야 발견했으니 내게는 잃어버린 10년이다ㅋ).
내가 온건이의 꿈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듯이,
이제는 나도 온건이처럼 스스럼없이 내 꿈을 세상에 내보이고 누군가의 응원받으며,
‘이 망할’ 작가의 꿈이 아니라 ‘이 흥할’ 작가의 꿈을 잘 가꾸어나가고 싶다. 브런치와 함께...
망설이던 나는 대답했다.
“엄마도 온건이처럼 꿈이 많았지. 그중에 하나가 작가인데 꿈을 이뤘어. 엄마 브런치 작가거든. 나중에는 온건이가 읽을 수 있는 그림책도 만들 거야.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