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이틀이 지난 것만 같아(2)

by 휘게

호들갑 떤 남편 덕분에 개장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놀이동산에 도착했다. 급류 타기를 처음으로 타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재밌었는지 연달아 2번을 탔다. 이를 시작으로 놀이기구를 도장 깨기 하듯이 타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람이 붐비지 않아서 아이가 원하는 놀이기구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하지만 태양은 너무 뜨거웠고 놀이기구마다 거리가 있어 걸어 다니니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릴 것 같았다.


각오는 했지만 증발해 버릴 것만 같은 더위에 역시나 아이는 1시간도 안 돼서 물놀이를 언제 하냐며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덜 더운 오전에는 놀이기구를 타고 점심 먹고 뮤지컬을 보고 난 뒤에 워터쇼를 시작으로 물놀이를 할 계획이었다.


물놀이를 먼저 시작하게 되면 여러 행사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워서 어떻게든 아이의 비위를 맞춰서 놀이기구를 먼저 타야 했다. 그런데 아이만 더운 게 아니라 나도 남편도 더웠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인간적인 모습(?)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서로에게 말했다.

“오늘은 YES만 외치는 날이다... 기억해.”

자칫하면 온건이의 마음속 카메라에 더위 찌든 인상 찌푸리는 엄마가 찰칵 찍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를 다 잡아가며 온건이에게 ‘꿈같은 하루’를 선사해 주고자 애를 썼다.

온건이가 행복해하는 찰나의 순간을 찍으려고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아이가 나타날 때까지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는데 앵글 안으로 다른 가족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아이보다 더 즐거워하는 아빠, 아이보다 더 무서워하는 엄마, 막상 탔는데 무섭다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없는 엄마, 온 가족이 신나서 깔깔거리며 즐기는 모습까지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까 아이가 칭얼댈 때 이 더위에 놀이동산에 온 것을 살짝 후회했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동시에 저마다의 추억을 쌓느라 애쓰고 있는 부모의 모습들이 왠지 짠해서 그들의 가정에 평화가 깃들길 빌며 축복해(?) 주면서 온건이와 남편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아이와 함께 놀이동산 가기에 적당한 때라는 것이 있을까? 봄, 가을에는 날이 좋아 사람이 붐벼서 안 되고 여름이면 더워서, 겨울이면 추워서 안 되는 안 갈 핑계들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적당한 때는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카메라 앵글 안으로 온건이와 남편이 들어왔다.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와 같이 즐거워하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오늘 놀이동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했을 때 남편이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아이는 부모의 시간을 먹고 자란대.”

우리는 온건이가 우리의 시간을 먹고 자랄 것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고 우리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줄 각오도 했다. 그럼에도 간혹 아이가 내 시간을 앗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분명 있었다. 부모의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 무겁고 버거울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인데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 자체가 자격이 없는 것만 같아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보다 모성애가 없는 것 같아서 당황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씩 나도 엄마로 자라다 보니 지금은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에 몰입하며 우리들의 시간에 충실해질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놀이도 원 없이하고 실내 놀이터로 이동했다. 거기서도 지칠 줄 모르고 거의 무아지경으로 노는 온건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는 소파에 앉아서 더위를 식혔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른들은 우리처럼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 역시 무아지경 상태로 놀고 있었다. 더위를 무릅쓰고 놀이동산에 놀러 와 부모가 내어준 시간을 맛있게 먹으며 깔깔거리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저렇게 무아지경으로 논 적이 있었나? 싶었다.



나는 어릴 적에 엄마, 아빠와 함께 놀이동산에 간 선명한 기억은 없다. 다만 어릴 적 사진을 통해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어 놀이동산에 갔던 것을 떠올리자면 명절이라 할머니댁에서 여자들은 음식 준비를 해야 하니 아빠와 작은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갔던 거 같다. 사진을 통해 기억을 더듬어야 할 정도니 그렇게 인상 깊지는 않았나 보다. 온건이도 어쩌면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매년 하루 종일 깔깔거리며 무아지경으로 논다면 기억이 하지 않을까 싶었다. 온건이가 커서 거부하기 전까지는 매년 놀이동산 데이를 선사하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온건이가 행여 오늘을 잊을까 행복한 기억만 간직하라고 특별한 날이 아니면 생전 사주지 않던 장난감도 사주었다. 뮤지컬 중간에 사용한 용기의 검이었는데 기프트샵에서 팔고 있었다.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감동받은 듯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엄마가 사주지 않는 걸 알아서인지 좀처럼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는데 감동받은 온건이의 표정을 보니 내가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에 너무 인색했나 싶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빛이 나는 용기의 검은 더욱 빛을 발하여 온건이는 용사가 된 마냥 검을 휘두르며 다녔다. 뒤에서 지켜보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아이를 위해 용기의 검을 사주었는데 내가 잊지 못할 장면이 되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를 보고 놀이동산 데이가 막을 내리고 나오는 길에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하루가 이틀이 지난 것만 같아. 정말 재밌었어.

하루가 이틀 같았다는 건 꿈만 같았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꿈같은 하루를 선사하고 싶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온건아! 엄마 아빠도 하루가 이틀 같았...’

아이에게 잊지 못할 하루를 선사하려 개장시간부터 폐장시간까지 하얗게 불태운 하루였지만 나에게도 온건이와 함께 한 추억의 페이지 한 장이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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