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어(1)

by 휘게

오늘 하루 너무 행복했어.

서울랜드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놀이동산에서 산 용기의 검을 만지작 거렸다.

파김치가 된 남편과 나는 백미러로 서로를 보며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 너 행복했으면 됐다.”

아이가 5세 때 미국 여행에서 키 커트라인을 겨우 넘겨서 레이싱 놀이기구를 탄 경험이 있는데 딴에는 신났던 경험이었는지 이때부터 온건이는 키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130cm이 되면 놀이동산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아이는 내 예상대로 130cm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가리지 않고 밥을 잘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스스로 다다르게 되었다.


그 덕에 우리 집 식탁 풍경은 대체로 평온했다. 다만 온건이는 7세가 되도록 놀이동산에 갈 수가 없었다. 아이는 키가 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묻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키를 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자신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턱대고 130cm을 던진 것이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130cm 되려면 한참이 걸릴 것 같아 120cm가 가까워지길래 격려 차원에서 놀이동산 데이를 선사하자고 남편과 이야기했다. 이 정도면 좌절감을 맛보지 않으면서도 적당하게 놀이기구를 즐길만한 시기라고 판단했다.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서울랜드를 두고 고민하다 점점 흥미 단계를 높여가자며 서울랜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이에게 ‘꿈같은 하루’를 선사하고자 신랑과 나는 틈틈이 계획을 짰다. 놀이동산의 첫인상이 좋아야 하니 짜증 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오래 기다리는 일은 피하도록 일단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6월 중에, 사람 많은 주말은 피해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일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치고 들어오는 일정에 아이 컨디션 문제, 가장 중요한 날씨 문제까지 일정이 미뤄지고 미뤄지다 7월에 가기로 결정이 났다.

7월이라 더워서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했지만 다행히 물놀이장도 개장한 상태여서 간 김에 물놀이도 실컷 하면 되겠다고 하고 이 날을 위해 우리 둘의 컨디션 관리도 함께 들어갔다. 미리 동선도 알아보고 시간대별로 진행되는 공연들 시간도 체크하며 실패 없는 ‘꿈같은 하루’를 온건이에게 선사하기 위해 우리 둘은 진심이었다.

나야 원래 계획하고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이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준비를 했다. 점심, 저녁을 모두 밖에서 사 먹어야 하는데 아침은 든든하게 먹이는 게 좋겠다는 둥 차라리 점심 도시락은 미리 준비해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부터해서 온건이가 중간에 피곤해하면 잘 수 있는 큰 웨건 하나도 구입하는 게 어떠냐는 둥, 오픈런해야 하니 전날은 모두 일찍 자야 한다는 말을 몇 번을 하는지 매일 아이와 함께 갈 놀이동산 데이를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온건이에게 ‘꿈같은 하루’를 선사함에 있어서는 나도 동의한다마는 당신답지 않게 놀이동산 한번 가는 거 가지고 도대체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고 물었다.

“실은 내가 더 설레. 온건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좋아할 모습을 볼 생각을 하니까 지금부터 너무 기대되고 설레.”

부모가 되어간다는 게 이런 걸까?

아이가 행복해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애쓰고 있는 영락없는 아빠의 모습이라니 그가 조금은 낯설기까지 했다.

연애 때 우리는 사람들이 덜 붐빈다는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9월에 놀이동산 데이트를 했다. 두 손 두 발 가볍게 가서 놀이기구를 오래 기다리는 일이 그리 지겹지 않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만해도 우리가 결혼을 해서 아이와 함께 놀이동산에 오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때는 날씨조차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둘이서 하나의 우산을 쓰고 손 붙잡고 놀면 그만이었고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낭만적이라고 단순하게 긍정 회로만 돌리면 되었다. 그랬던 우리가 아이에게 ‘꿈같은 하루’를 선사하기 위해 자신의 하루하루를 기꺼이 내어주는 게 아깝지 않고 아이가 좋아한다면 그걸로 족하게 된 게 한결 자연스러워진 우리를 보았다. 아이도 놀이동산이 처음이겠지만 우리 부부 또한 우리 셋이서 가는 놀이동산이 처음이라 아이만큼이나 긴장되고 설레었다.

남편은 온건이가 행복할 모습을 볼 생각에 들떠있었다면 나는 온건이가 기억하게 될 하루를 상상하니 설레었다. 부모가 기억할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아이가 기억할 우리 가족의 모습이 그날만큼은 웃음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흔이 다 된 나도 어떤 음악을 듣거나 어떤 장소에 가거나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어릴 때의 의미 있는 기억들이 연속적이지는 않더라도 한 컷씩 문득 떠오르곤 한다.



어릴 때 기억은 내 머릿속에 동영상처럼 남은 게 아니라 사진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남아있다. 내가 7살 때 기억 속 장면이다. 어린이집 뒤쪽 공간에 실내와 실외가 연결되는 마루 위에 내가 서 있고 아빠는 나를 마주하고 서서 우리 둘의 눈높이는 비슷하다. 아빠의 표정은 화나 있지 않고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고 내 발 옆에 아빠가 친구들과 함께 먹으라고 사 오신 간식이 든 검은색 봉지가 놓여있다. 이 날은 내가 쉬 실수를 해서 아빠가 내 옷가지와 친구들과 함께 먹을 간식을 가지고 오신 거였다. 아마 그때의 나는 굉장히 부끄럽고 창피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장면을 떠올리면 쉬 실수를 한 당혹스러운 느낌이 아니라 뭔지 모를 평온한 느낌이다. 그 외에도 내 안에는 슬펐던 순간, 무서웠던 순간, 즐거웠던 순간 등의 오랜 장면들이 있다.


온건이도 7살 정도 되었으니 평생 가지고 갈 장면들이 지금부터 쌓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7살부터는 기억이 점점 더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부모만 아이를 지켜보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도 부모를 지켜보고 기억한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아이에게 무심코하는 실수를 좀 덜 하지 않을까 싶어서.

남편에게도 온건이가 기억하게 될 하루에 대해 말하며 그날만큼은 온건이에게 무조건 ‘YES’를 외치는 날이라고 ‘NO’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온건이가 마흔이 되었을 때 이 날을 어떤 하루로 간직하게 될까? 셋이서 함께 놀이기구를 타며 엄마, 아빠, 온건이가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온건이의 기억 속에 사진처럼 찰칵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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