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연습하다 보니까 잘 타게 됐잖아!

by 휘게

온건이가 밸런스 바이크를 처음 탔던 날을 기억한다.

페달이 없다 해도 중심을 잡아가며 타기는 4살 온건이에게는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처음 시도를 해보았는데 한 발자국 떼면 자전거가 기울어지고 또 한 발자국 떼면 자전거가 기울어졌다. 앞으로 나가는 것이 뜻대로 안 되니 답답해서인지 안 탄다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나 또한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전거를 들고 같이 걸어가려는데 온건이가 다시 말했다.

“다시 도전해 볼래.”

그렇게 밸런스 바이크를 어기적 어기적 타고 어린이집에까지 간 것이 온건이가 밸런스 바이크를 처음 탔던 날이다. 사실 걷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느리게 탔다. 땀을 뻘뻘 흘리며 기울어지는 자전거를 잡아가며 어기적 어기적 (타는 게 아니라) 걷기에 그냥 걸어가자고 다음에 타자고 제안을 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어린이집까지 자전거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던 것을 잊지 못한다. 자전거 안장에 앉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어기적어기적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 과연 밸러스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어쩌면 못 탈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 틈날 때마다 자전거 타기 연습을 했고 거의 아이의 등하원 교통수단이 되었다. 이윽고 균형을 잡고 타다가 이내 속도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5살 때는 두 발을 들고 자전거와 혼연일체가 되는 경지에(폭싹 속았수다의 학씨 아저씨의 자전거 실력과 비등한 수준) 올라 한강 밸런스 바이크 대회에도 나갔다.

아이도 그 경험이 생생했는지 무언가를 처음 하게 될 때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들면

처음에는 자전거를 못 탔는데 매일 연습하다 보니까 잘 타게 됐잖아!

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면서 자기 최면을 거는 거 같았다.

‘괜찮아! 처음에는 자전거를 못 탔는데 지금은 잘 타잖아. 지금은 어렵지만 매일 연습하면 나는 할 수 있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법의 주문처럼.

가끔 무언가를 아이가 망설일 때 내가 아이의 마법의 주문을 빌려 용기를 주곤 했다.

“자전거도 처음에는 못 탔는데 지금은 정말 잘 타지? 처음은 원래 그래. 매일 노력하면 할 수 있어.”

‘처음은 원래 그래.’라는 말을 온건이를 향해 뱉었는데 그 말이 날아와 내 귓가에 박혔다.

내가 어렸을 때 들었으면 좋았을, 어른이 되고서라도 듣게 되어 다행인 그 말

‘처음에는 누구나 다 서툴고 완벽하지 않아. 원래 그래. 시간이 필요한 일이야.’

아이에게 건넨 말이었지만 정작 나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그리고 온건이를 보며 과연 나는 매일 무언가를 저렇게 지속해 본 적이 있었나? 자문했다.

아이가 어릴 때 코로나 시기라 기관보다는 엄마표 영어가 성행하기도 했고 영어교육을 사교육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반신반의하며 거의 매일 10분씩 영어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그냥 했다. 그런데 몇 년 뒤 거짓말처럼 아이가 알파벳과 파닉스를 익히고 영어단어를 읽기 시작했다. 매일 10분 엄마랑 영어 그림책으로 놀기 시작했는데 그 하루하루가 쌓여 지금은 리더스북을 읽는다. 이를 목격한 나는 매일 10분, 루틴의 중요성을 진하게 깨달았다. 온건이를 통해 ‘매일 조금씩 하다 보면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자기 계발서의 단골 소재 “루틴의 중요성”은 익히 들어와서 잘 알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내 삶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매일 연습하면 할 수 있게 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4살에 깨닫고 지금껏 실천하고 성장해 나가는 온건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나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인 나에게 비롯된 문제의 적절한 처방은 거대한 목표가 아니라 매일 10분의 루틴이었다. 이 처방을 내 삶과 연결 지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온건이 덕분이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브런치 작가가 되어 매주 한편 글 써보자고 마음먹게 된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매일 생각과 계획만 하다 흐지부지되어 글을 써야 하는 장치(=글쓰기 수업)를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 수업에서 또다시 나의 고질적인 문제와 마주했다. 매주 글쓰기 과제를 피드백받는 과정에서 글쓰기 강사님께서는 단점이나 보완할 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과 개성을 극대화해서 피드백 주시겠다고 했다. 수강생들의 피드백 상처를 염려하셔서 장점만을 말씀해 주시나 싶어서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이니 공개적으로 지적받아도 괜찮다며, 내 글에 단점이나 보완할 점이 있으면 가감 없이 말씀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강사님은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은 철저하게 장점만을 말씀하셨다.

몇 주가 지나고 수정 피드백을 받지 못해 아쉬워하는(?) 나 자신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혹독한 트레이닝만이 성장하는데 더 효과적일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하찮은 나에게서 무언가가 나오려면 더욱 나를 채찍질하여 밀어붙여야만 하는 것이라고 잘못 배워, 그것을 벗으려고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나는 벗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의 단점은 찾기가 쉽지만 장점을 찾는 것을 어려운 일이다. 글쓰기 강사님은 내 글의 장점만을 찾으려 노력하셨으리라. 다정한 글쓰기 선생님을 만나 내가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의 나를 돌이켜보면 시험 기간에 잘하는 과목보다는 못하는 과목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못하는 과목이니 공부하기 싫고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하니 괴롭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렇다고 성적이 드라마틱하게 오른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장점에 집중하기보다는 단점을 찾고 부족한 나를 탓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남에게 나의 부족한 점을 찾아달라고 하다니... 적고 보니 기괴하기까지 하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 완벽해진다고 단단히 오해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이 어디 있다고.

완벽이라는 단어는 인생을 경직되고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 같다. 온건이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인생을 사뿐사뿐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은 나눌 수 없기에 나부터 몸과 마음을 가볍게 살아가려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바로는 때로 나를 밀어붙여야 하는 중요한 순간도 분명 있겠지만 인생에 있어서 나를 극한으로 몰아세워야 하는 일은 대체로 없는 듯하다. 지금의 나는 자의든 타의든 나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멈춰 서서 상황을 낯설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마터면 아이의 장점보다는 단점만 보고 나무라면서 ‘이게 부족해, 이것만 하면 넌 더 성장할 수 있다’며 다그치고도 남을 고약한 어미가 될 뻔했다(내가 좌절했던 시절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이걸 깨달으려고 그렇게도 괴로웠나 보다ㅋ)

아이의 장점만을 봐주고 너는 너 자신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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