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밀고 내가 밀고 그러면 끝이 안 나잖아

by 휘게


“친구를 먼저 밀치는 건 안 되지만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계속 밀칠 때는 참지 않아도 돼.”

친구가 밀고 내가 밀고 또 친구가 밀고 또 내가 밀고 그러면 끝이 안 나잖아.

“온건이 말이 맞아. 사실은 친구를 밀치면 안 돼. 그게 옳아. 온건이가 잘 알고 있네...”

친구와 잘 놀다가 별안간 온건이가 왼쪽으로 피하면 친구가 따라가서 밀고 온건이가 오른쪽으로 피하면 친구가 따라가서 밀치는 행동을 반복하니 온건이가 몇 번을 하지 마라고 친구를 향해 말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는 아이들끼리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넘어갔는데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상황에도 지켜만 보고 있는 그 친구 엄마의 태도가 그날만큼은 속이 많이 상했다. 나였다면 ‘아무리 장난이라 할지라도 친구가 싫어하고 불편해하면 멈춰야 한다. 혼자만 즐겁다면 그건 장난이 아니라 괴롭히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그 자리에서 가르쳤을 것이다. 하지만 밀친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었고 내 아이는 ‘내가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도 하고 자리를 피했는데도 계속 따라와서 밀었다’며 울고 있었다. 밀치는 친구라면 밀치지 말라고 가르쳐주면 되는데 온건이에게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바보같이 우는 게 화가 났다. 온건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걸 확인한 순간 우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게 1순위겠지만 그날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만이 최선이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또한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면 바로잡는 방법에만 관심 있었지 아이가 스스로를 지키도록 돕는 방법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온건이가 갈등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해 여쭈었더니 갈등상황이 거의 없기도 하고 온건이가 친구들에게 친절해서 친구들이 온건이에게 모두 호의적이라고 하셨다. 3년간 합을 맞춘(?) 친구들이라 온건이가 갈등상황에 처해질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오히려 그런 상황에 노출되어 대응방법을 배워나가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견도 주셨다. 초등학교 가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텐데 온건이가 착해서 걱정이라고 말씀을 덧붙여 나의 염려는 더욱 커져갔다.

그렇게 아이가 스스로를 지키도록 도울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이 깊어 시작했다. 이번 일이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비단 이번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건이는 친구 장난감을 빼앗는 게 이상하지 않은 3세 때도 자기가 막 집은 장난감을 친구가 달라고 하면 다 내어주던 아이였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온건이에게 친구가 달라고 한다고 바로 주지 말고 놀고 싶은 만큼 다 놀고 친구한테 주라고 교육했을 정도였다. 이때까지도 양보를 배워야 하는 시기에 뺏지 않고 양보를 잘하니 그저 잘 가르쳤다고 생각했지 이런 지점이 고민이 될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가 선한 게 고민인 게 좀 웃기기도 하고 어디 가서 털어놓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서점에 가서 여러 책을 살펴보니 무례한 친구들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소개한 그림책도 더러 보이고 유튜브 알고리즘 소개로(?) 김지훤선생님의 영상 등등도 보게 되면서 학교 들어가기 전에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눠 볼 만한 주제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초등교사를 하고 있는 온건이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지인에게도 도움을 구했다(온건이가 갓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지인의 아이에게 떡뻥을 나눠줬다는 이유로 온건이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분이다ㅋ). 지인은 무례한 친구를 피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의견을 주셔서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 같다고 하니 피하는 게 현명하다고 하셨다. 워낙 많은 상황들을 마주하셔서 그런지 자기 아이라면 피하라고 가르칠 것 같다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지인의 조언 모두 각 각 일리가 있었지만 나 스스로 정돈이 되질 않았다. 더구나 친구에게 하지 말라고도 하고 피하기도 했는데도 반복해서 민다면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된다는 나의 말에 서로 계속 밀면 끝이 나지 않는다는 이 아이에게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디지털 드로잉 수업에서 중학생 아들을 키운다는 선배엄마와 마주 앉게 되었다. 눈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였지만 무슨 용기였는지 수업을 마치고 잠시 이야기 나눠도 되냐고 묻고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분은 자기 아들이 딱 그런 아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친구의 잘못으로 안경이 부서졌지만 그 조차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이야기부터 조별 과제를 함께 하는데 중요한 수행평가임에도 참여하지 않은 친구들 이름까지 다 적어준 이야기 등등…그 선배엄마도 처음에는 속상했지만 그런 상황들이 엄마가 보기에 속이 상하는 거지 아이가 괜찮다고 한다면 진짜 괜찮은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그런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는 아이의 말을 믿고 타고난 성품이니 아이를 바꾸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다. 감사하게도 아이의 선한 본성이 오히려 큰 무기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듣고 보니 대학교 때 배운 루소의 본성을 존중하라는 말이 떠올랐다. 배운 거였는데 까마득히 잊고 속상한 나머지 자신을 밀치는 친구에게 강단 있게 대처하지 못하고 우는 내 아이를 바보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참 모자란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동시에 가르치려고만 들었지 아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있는 그 자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루소를 배울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온건이라면 친구가 밀쳐서 속상해서 울기까지 했는데 바로 그 친구와 놀지 않을 것 같은데 온건이는 진정되더니 다시 그 친구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놀았다(그 장면을 보고 더욱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쯤은 내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듯이.

당연히 친구를 먼저 밀치거나 때리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도 인간인지라 속상한 마음에 밀쳐도 된다는 워딩은 양심상 쓰지 못했지만 ‘참지 않아도 된다=밀쳐도 된다.’는 뉘앙스의 말을 건네버렸다. 그러나 온건이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온건이는 이미 사리분별을 할 줄 알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지혜롭고 강한 아이였다. 나약하다고 판단했던 지점이 오히려 아이의 장점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되는 마음이 감사한 마음으로 번졌다. 한 끗 차이인데 하마터면 엄마의 기준으로 아이의 장점을 단점으로만 치부해 버릴 뻔했다.

‘아이가 스스로를 지키도록 도울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일까?’로 시작된 고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엄마로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의 물음의 답을 구하고 싶었던 거 같다. 그래서 정돈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는 그 상황 속에서 이미 잘 대처하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 속의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 고민되는 지점이 있어 우왕좌왕 방법을 찾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자라 나보다 앞서 가 있는 경험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온건이에게는 잘 놀다가 일어난 해프닝일 뿐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속 좁은 엄마에게만 심각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내가 온건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건이가 나를 엄마로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나의 육아가 끝이 없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온건이의 육모(育母)가 끝이 없을 것 같다.


온건아! 어제보다 더 나은 엄마로 무럭무럭 자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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