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조리원에서 나오던 날, 나는 아기를 안고 조리원 선생님께 울면서 말했다.
“제가 잘못해서 혹시 아이를 죽이면 어떡해요? 너무 무서워요.”
조리원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이를 잘못해서 죽일 정도면 우리가 여기서 내보내질 않아요. 걱정하지 마요. 이제는 엄마니까 울지 말고 엄마가 씩씩해야 돼요.”
내 품에 안겨 방긋 웃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울었다.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운전하던 남편이 물었다.
“왜 자꾸 울어, 그만 울어.”
“얘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웃고 있잖아. 우리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아무것도 모르고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따라오는 거잖아. 엉엉.”
“우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 자식인데 당연히 우리 집에 가야지... 그럼 어디가.”
백미러로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도 눈물범벅인 나도 빵 터졌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상황인데 무섭다고 울고 있는 나 자신이 나도 웃겼다. 내 배 아파 낳은 내 자식도 맞고 내가 낳았으니 내가 키워야 하는 것도 맞고 우리가 나쁜 사람도 아니다.
아는데 가족으로 함께 살아갈 앞날의 기대보다는 엄마 노릇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거 같다. 게다가 ‘엄마 노릇을 잘못해서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도 한몫했다. 이런 감정은 도망간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었고 책을 찾아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정답이 없는 일이라 더 어렵고 겁이 났다.
임신 때부터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실전에 들어서니 또 달랐다. 그런 상태로 엄마 노릇을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 노릇 6년 차, 아이가 커가면서 직면하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 불안은 모양만 달라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신생아 때는 밤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울어댈 때 어찌할 바를 몰라 나도 같이 소리 내서 엉엉 울면서 불안을 내보일 수 있었다면 이제는 ‘이왕이면 아이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 정도는 생각할 수 있는 엄마로 성장했다.
다행히 나는 잘못해서 아이를 죽이지(?) 않았고 엄마 노릇을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다. 그럭저럭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작년 생일에 아이에게 생일편지를 받았는데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엄마가 내 마음을 고맙게 해 줘서 고마워.’
편지글이 내 눈에 가득 찬 순간 저항 없이 눈물로 터져버렸다. 감동을 받아본지가 언제였던가! 정말 감동이었다. ‘생일 축하해요’라든가 ‘사랑해요’ 정도 적혀있을 줄 알았던 편지에 나에게 고맙다니... 아이의 말을 통해 내가 엄마 노릇을 나쁘지 않게 해나가고 있음을 확인한 안도의 눈물이었다.
또 이 아이가 내게 고마움을 느낄 만큼 했던 게 있었나? 부족한 것 투성일 텐데 내게 고맙다고 해주니 그저 감사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하루하루 엄마 노릇을 근근이 해나가고 있는 내게 아이의 이 말이 얼마나 큰 위로와 선물이 되었는지 모른다. 아이는 나를 두렵고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인 동시에 나의 두려움과 불안을 잠재우는 존재였다.
적고 보니 내가 한 엄마 노릇이라고는 불안해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감동해서 울고, 안도해서 울고, 감사해서 우는 고작 운 것밖에 없네. 이렇게 저렇게 울다 보니 아이가 7살이다. 내가 엄마 노릇을 하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엄마가 울어도 안 울어도 아이는 어차피 8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왕이면 울지 않으면서 애를 키우면 좋으련만 나는 여전히 운다. 어떻게 하면 조리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울지 않는 씩씩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지금의 남편과 혼인성사를 할 때도 신부님 앞에서 무슨 사연 있는 여자처럼 그렇게 울었다. 나 스스로도 나의 이런 눈물들이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데 조리원 선생님과 신부님은 얼마나 더 당황스러웠을까?
어려서부터 눈물이 많던 내게 엄마는 남들 앞에서 울지 말라고 하셨다. 남들 앞에서 울어봤자 좋을 게 없다고. 그 당시 나는 딱히 나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누군가 ‘네가 그렇게 울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한 뒤로 처음으로 내 눈물이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남들 앞에서는 우는 것을 조심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금의 남편을 만나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남편은 나의 (남이 봤을 때) 맥락 없는 눈물을 제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더욱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울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가 덜 우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덜 우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거다. 왜냐하면 두 사람(엄마, 내가 울어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던 사람)을 제외하고 우는 나를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눈물을 타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0년 어느 날 옆 집 이웃이 찾아와 이사 소식을 전했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거리 두기를 하던 시점이라 옆 집 이웃과는 활발하게 소통하지는 않았지만 먹거리를 나누는 정도의 친분이 있었고 둘째가 우리 아이와 나이가 같았다. 나 혼자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또래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가까이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사 간다는 소식을 갑자기 전해 들은 것이다. 좋은 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축하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함께 전했다.
“축하해요! 아이가 동갑이라 저는 함께 키울 이웃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떠나니 아쉬워요.”라고 말하는데 내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는 이미 촉촉해지고 내 머리가 ‘너 왜 이래? 좋은 일로 가시잖아! 그만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이미 온몸으로 아쉬움을 꺼내보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그녀도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이미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저도요. 근데 이렇게 남 앞에서 울어본 적이 어릴 때 이후 오랜만인 거 같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고 배웠거든요.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에 솔직하게 울 수 있다는 게 부러워요.”
나의 주책맞은 눈물을 그녀는 부럽다고 말해주었다. 그녀의 눈빛은 정말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부끄러울 뻔했는데 내 진심을 알아채주고 같이 글썽거려 준 그녀 덕에 상황이 어색해지지 않았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눈물에 너그럽게 반응해 준 이들이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나도 보고 듣는 것이 있어 때와 장소에 맞게 눈물 단속을 잘하자고 생각하곤 한다. 아무리 내 눈물을 지지해 주는(?) 이들이 많다고 해도 나잇값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우는 행위에 대해 너그러운 편임에도 우는 온건이를 보면 한 번씩 목까지 차오르는 말이 있다.
“너 이게 울 일이야? 네가 실수한 거잖아. 왜 울어!”
실수해서 우는 거고 속상하니 우는 건데 왜 우냐니... 울 수도 있는 거지.
나도 참으로 모순덩어리다. 앞으로 내 눈물에 타박을 해도 할 말은 없다. 어찌 됐건 우는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고민하기보다는 나의 주책맞은 눈물에 너그러이 반응해 주는 이들처럼 나도 누군가의 느닷없는 눈물에도 너그럽게 반응하는 사람이고 싶다. 특히 온건이의 눈물에 말이다. ‘남들 앞에서 울지 마’보다는 ‘괜찮아. 마음 풀릴 때까지 실컷 울어!’라고 말하고 안아주는 엄마, 그런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