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휘게

“엄마 발가락이 아파.”


늦은 저녁 아프다고 하는 아이의 두 번째 발가락을 보니 검은색 점을 중심으로 노랗게 곪아있었다. 처음에는 곪은 지도 알아챌 수 없었고 뭐가 난 건가? 싶었는데 만지니 아프다고 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곪은 것 같았다. 검은색 점 같은 것이 박혀있는 것이 가시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아이가 맨발로 운동화를 신고 하원을 했었다. 내일 병원에 가보자고 하니 아프다고 울어서 하는 수 없이 소독한 바늘로 가시를 제거하기로 했다.

가시가 박혀 아파서 빼달라고 했지만 막상 가시를 빼려고 바늘을 갖다 대니 아이는 기겁을 하고 울어댔다. 그러면 병원을 가자고 했더니 병원은 가기 싫단다. 그럼 엄마가 최대한 아프지 않게 가시를 빼주겠다고 하니 울면서 발가락을 내민다. 바늘을 갖다 대니 뭘 해보기도 전에 발을 빼고 운다. 나 또한 이게 가시 같은 거지 가시라는 확신도 없고 아이가 우니까 괜히 내가 건드려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 아닐까 싶어 겁도 났다. 그러나 이내 아프다고 울고 바늘을 갖다 대면 또 발을 빼고...


‘하... 어떡하면 좋지?’


바늘로 발을 찌른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서 여러 번을 하겠다 못하겠다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아이의 마음이 백번 이해는 갔다. 하지만 나 또한 아이는 아프다고 울지 그런데 건드리지는 못하게 하지 정말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이었다. 기다리다 결국 가시를 뺄 건지 말 건지 결정하라고 언성을 높이니 아프지 않게 살살해달라고 한다. 영상을 보여주며 최대한 아프지 않게 해 주겠다고 엄마를 믿으라고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발가락을 계속 꼼지락거리니 살펴보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빼낸 발가락에 박힌 가시는 정말 0.1mm나 될까 말까 한 가시라고 명명하기도 뭣한 티끌이었다.

정말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티끌...

그 티끌 하나에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혼이 쏙 빠졌다.

이날 이후 아이는 절대 맨발로 신발을 신지 않는다.


종종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질문에 요즘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하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고.

무탈한 일상을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생선구이 하나를 먹을 때도 행여나 생선 가시가 아이 목에 걸릴까 봐 긴장하며 살피고 또 살펴서 생선 가시를 발라낸다. 그럼에도 미쳐보지 못한 가시가 기어이 나온다. 십년감수를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른다.


티끌 하나에도 생선 가시 하나에도 벌벌 떠는 일상을 살고 있기에, 그저 무탈한 하루를 살게 해달라고 매일 아침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무사함에 매일 밤 감사 기도를 한다.

지루한 걸 싫어하는 내가 아이 덕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일상을 고대하게 되었다. 주일마다 성당을 나가지도 않으면서 아이 덕분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양 나는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예측불허의 연속이다. 이 글들은 예측불허 속에서 피어난 꽃과 같다. 꽃을 피워내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그렇게 하나 둘 피운 꽃들이 모여 꽃다발이 되었다. 이 꽃다발을 함께 육아하는 동지들에게 선사한다.


나의 첫 번째 보석 전시회에 와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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