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irie in NewZealand" 부산전시회
요즘 내가 푹 빠져있는 작가 프레리(Prairie)의 전시회가 부산에서 있었다.
지난 8월, 거제도에서 "Prairie in NewZealand"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있었고, 그때 거제도까지 달려갈까 고민하다가 끝내 포기하면서 부산에서 작가의 전시회가 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워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 듯 곧이어 부산에서 프레리의 전시회가 열린다니...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 소녀처럼 부푼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프레리는 "일상을 동화로 만드는 작가"라고 불린다.
그 별명처럼 그녀의 그림들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하나같이 밝고 사랑스럽다. 그래서 프레리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림 속 인물들처럼 나도 행복에 젖는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작가이지만 프레리의 시작은 의외로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고 그림과는 무관한 일을 하던 작가에게 인생의 어려운 시기가 찾아왔고, 그때 시작했던 그림이 자신을 치유하는 경험을 하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림의 치유하는 힘을 믿는 작가는 그 이후 일상의 한 순간, 행복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포착하여 캔버스에 담으면서 자신과 같이 보는 모든 이들이 치유와 행복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나는 간혹 프레리의 영상을 틀어 놓고 작업을 한다. 유튜브에는 40분에서 한 시간 분량의 작가의 영상들이 있는데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캔버스 앞에서 그림을 그린다. 어떨 때는 멍하니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영상을 틀어 놓고 할 일을 하다가 한 번씩 고개를 돌려 보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나와 그녀가 한 공간에서 각자의 작업에 열중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재미있기도 하다.
영상을 볼 때마다 작품에 구현되는 색 하나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붓질을 해야 하는지, 작고 사소해 보이는 부분마저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작가가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이는지가 생생하게 전해져서 감탄하게 된다.
특히 위의 세 작품 <현악 4중주>, <와카나 라벤더 팜>, <오클랜드 페리 터미널>은 영상에서 작가의 붓을 따라가며 나뭇잎 하나, 벽돌 하나, 옷의 주름 하나까지 그 경이로운 탄생의 순간을 목격했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전시장 공간 안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사람이라면 달려가 아는 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다. 영상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과 행복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실재가 되어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프레리의 그림은 주로 웅장하고 광활한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이 주는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바로 프레리와 그녀의 남편이며 실제로 그들이 뉴질랜드에서 겪은 경이로운 순간이 그림의 시공간을 이룬다. 그림 속 인물들은 아주 작게 그려져 있지만 그 배경을 차지하는 수많은 나무들과 꽃, 새, 돌 하나하나, 오솔길, 바다와 강의 치밀한 묘사는 그림 속 프레리와 인물들의 행복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리고 또 프레리의 그림에서 자주 목격되는 또 다른 장면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요리를 하거나, 티타임을 갖고 있는 모습이다. 배경은 부엌 또는 거실로 그녀가 살아가는 일상의 장소들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의 재미있고 익살맞은 모습뿐만이 아니라, 굳이 그려 넣지 않아도 되는 소품 하나하나 -올리브 오일 병, 스푼, 냅킨, 파스타 포장지... 등-무엇 하나 무시하는 일이 없이 자신의 캔버스 안으로 가져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위한 하모니를 이루게 한다. 프레리의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 준다.
작가의 그림을 보면 결국 치유는 "관계"와 "연결"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꽃과 나무, 강과 산과 바다라는 자연과의 연결, 함께 시간과 마음을 나눌 사람들과의 연결, 소속감과 관계의 풍성함이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것들이며, 그것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힘들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주변에 존재하는 자연과 사람들을 향하기 시작할 때, 치유가 일어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달해 줄 건강한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 프레리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알려준다.
50여점이 되는 작가의 그림을 보다 막바지에 이르러 만난 <여름날의 너>라는 작품은 처음 만나는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한 남성이 정면을 보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 속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면서 곧 눈물이 날 것만 같았는데, 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 또는 과도한 감정이입일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통해 어두운 터널을 지나 이제 타인과 스스로를 당당하게 대면할 수 있게 된 작가의 자유를 확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치유의 긴 과정을 잘 통과하면서 자신과의 화해를 이룬 사람들만이 누군가의 정면을 애정을 가지고 응시할수 있지 않을까... <블러프와 노란 표지판>이라는 그림이 이 그림과 짝을 이루며 주는 이 메시지는 프레리가 그림을 통해 이르기를 원한 곳이었을 것이라는 이해와 함께,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녀의 전시회가 나에게 준 소중한 의미로 남았다.
전시장을 나서면서 아쉬운 마음을 작가의 그림 엽서 두 장을 사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가 사는 이곳 부산에서 프레리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없이 감사한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나는 그녀의 작품을 고대하며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프레리 작가가 더욱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그 행복이 그녀의 그림을 타고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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