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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Sep 25. 2024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존 클라센 그림, 맥 바넷 글


샘과 데이브는 친구다. 어느 날 둘은 땅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둘이 함께 열심히 땅을 파는 이유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 땅을 파고 또 파 들어가는 이 열정적인 작업을 통해 결국 찾아낼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진 것이란 무엇일까.. 큰 꿈과 기대가 생긴다.


샘과 데이브는 초콜릿 우유와 과자 한 조각으로 허기를 채우면서 열심히 땅을 판다.

아래로 깊이 파내려 가다가

방향을 틀어 옆으로도 파 들어간다.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발견하지 못하자 각자 다른 방향을 파보기로 한다.

하루종일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히 땅을 파는 두 사람..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번번이 땅 속에 묻힌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살짝 비껴가기만 한다는 사실...

"에휴~ 조금만 더 파보지... 왜 방향을 틀어..."

보는 나는 답답하지만 샘과 데이브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묵묵하게 땅파기에 몰입해 있을 뿐이다.


결국 두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지 못한 채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판 구덩이에서 빈 손으로 나온 두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는 것에 실패하고 만 것일까?

부드러운 흙 위에 앉아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켜고 기운을 찾은 샘과 데이브는 동시에 말한다.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그리고는 초콜릿 우유와 과자를 먹으러 집으로 들어가는 샘과 데이브...

전혀 실패한 사람 같지 않다. 오히려 큰 만족과 뿌듯함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기쁨이 엿보인다.


그들이 찾아낸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른의 그림책>에서 황유진 작가는 샘과 데이브가 찾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란 "결과와 관계없이 '몰입의 경험'과 이를 통한 성장만으로도 기쁨을 누릴 줄 아는 것"이라고 썼다.


땅을 팠으면 다이아몬드를 캤어야지..

공부를 했으면 적어도 인서울은 해야지...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면 당연히 책을 한 권 써야지...

그림을 그리면 유명 갤러리에서 초대받는 작가가 되어야지...


오직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는 것 만이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이제까지의 모든 땀과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는 신념으로 수많은 낙오자들을 만들어내는 세상을 향해 샘과 데이브는 오히려 다이아몬드에 집착해 아슬아슬 빗나가고 마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순간들이 우리의 인생에 허다하게 있음을 일깨워준다.


결국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온 것이기도 하다. 뭔가를 늘 하고는 있으나 그저 그것뿐... 어느 한 영역에서도 프로페셔널함을 나타내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답답했었다. 이번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은 뭐라 말하든  무조건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왕에 하는 거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잘 해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이 많이 팔리는 것?

준비한 굿즈가 완판이 되는 것?

내가 좀 더 인정받는 계기가 되는 것?...

무엇이 되었던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어딘가 실력이 모자라서, 전시 경험이 없어서 호응을 얻지 못하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시장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날, 첫 손님으로 방문해 준 그림을 전공한 친구의 말 한마디로 인해 나는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좀 더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림을 전공하고 재능이 넘치는 네 앞에서 전시회를 한다니 쑥스럽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언니는 "하고 있잖아요", 저는 그게 부러워요. 저는 그림을 놓은 지 오래됐어요."


그리고는 어느 시점에 좌절을 경험하면서 그림을 손에서 놓았던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런 동일한 과정을 겪었지만 결국은 다시 펜을 들 수밖에 없었던 나의 이야기까지, 깊은 곳에 억눌러 놓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때, 친구는 감사하게도 "언니가 하고 있는 일이 전시회까지 이어져서 참 좋고, 나도 다시 그림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요."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

결과와 관계없이 몰입했던 그 일이 전시회와 이어지고, 그것이 친구로 하여금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다시 몰입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했다는 것은 내가 기대한 전시회의 그 어느 결과 보다 더 의미 있고 기쁜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어마어마하게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나의 전시회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4주간 열리는 전시회가 이제 마지막 주간을 맞이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그 모든 떨리고 두렵고, 영광스러웠던 시간을 접고 그림들을 내리러 가야 한다. 간간이 그림을 구입하겠다는 연락이 오기도 하고, 엽서를 구입한다는 알림이 울리기도 하지만 애초에 내가 기대한 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이 첫 전시의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을 주었고, 나의 수많은 숨은 감정들과 생각을 들여다보게도 해주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 친구의 새로운 출발을 격려하는 순간을 맞이하게도 했다. 그러니 그림을 철거하는 날, 나도 샘과 데이브처럼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웃으며 커피와 쿠키를 먹으러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몰입의 자리에 다시 앉아 일상을 보내게 될 것이다.


무의미함과 무료함을 견딜 수 없어 주섬주섬 무엇인가 해야했던 시간들...

뜬금없는 결과들을 기대하며 스스로 평가절하했던 지난 날들을 다시 대면하면서

그때의 경험들이 조용히 쌓아올린 성장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겠다.

그 마음이 나를 앞으로도 꾸준히 "무엇인가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


남은 전시회 기간 동안 그림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 나의 그림이 그들 역시 지금 어마어마하게 멋진 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들려주길,

그리고 전시회를 방문해주었던 그 친구도 다시 펜을 들고 그녀 만의 드로잉으로 자신과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어마어마하게 멋진 일을 하는 즐거움을 되찾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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