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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Sep 02. 2024

나는 커서 뭐가 될까?

전시회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난 주까지 작품을 최종 선택하고 액자 작업을 완료했고

지난주에는 그림에 붙일 캡션을 만들고, 굿즈로 판매할 엽서를 정리했고

최종적으로 그림 액자들이 전시장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충전재로 감싸고 단단히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을 먹은 뒤 내일 이동할 차에 가지런히 짐들을 실어두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이곳 부산에서 서울로 출발할 예정이다. 운전을 못하는 나를 위해, 그리고 나의 첫 전시회를 응원하기 위해 남편이 동행해 주기로 했다. 늘 그렇지만 언제나 고마운 남편이다.





모든 것이 준비가 되고 이제 코 앞인데... 아직도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설레기도 하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공허함도 느껴지고 약간 두렵기도 하다. 현장에서 그림이 걸리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반응들이 쌓이기 시작하면 그제야 실감이 나고 이 어지러운 감정들도 제자리를 찾아가게 될지 모르겠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그림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일상을 살았고 내 인생의 대부분은 아주 평범한 두 딸의 엄마로, 주부로 지냈을 뿐이다.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면서 한 주에 아이들 책은 10권도 넘게 읽지만 내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이 지낼 때, 이러다가 영영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은근 걱정될 때도 있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대학원으로 자격증 반으로 자기 계발을 위해 많은 것을 투자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아이들과 홈스쿨링을 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 회의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런 일상을 살다 보니 우아하게 그림을 그릴 시간은 기대조차 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과 함께 선교단체 사역에도 참여해야 하니 시간이 난다 한들 나를 위해 온전히 투자하기란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언제 나의 시대가 오나... 나는 이렇게 남들을 위해 소비되는 삶을 살다 아무도 모르게 소멸되는 것은 아닌가 간혹 가다 우울해질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의 내 삶 또한 내가 선택한 길이니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지금 내가 나의 경력이라고 말하며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불안하고 불명확했던 그 시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아이들과 책을 읽고 다양한 독후활동을 했던 것이 소그룹으로 책 나눔 모임을 할 수 있게 준비시켜 주었고, 아이들과 성경과 역사를 공부했던 것이 지금 내가 일하는 단체 안에서 훈련생들을 대상으로 성경과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딸들과 매일 같이 그리고 붙이는 활동을 한 것, 사람들을 위해 예쁜 카드와 엽서를 만들어 기념일을 축하해 준 것과 같은 일들이 나로 하여금 손에서 펜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때는 내가 원하는 만큼 시원스럽게 뭔가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을 뿐, 나의 시간은 미래를 향해 가고 있었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 아주 자연스럽게 지금의 나라는 존재로 빚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돌아보면 내가 뭔가 자랑할만한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살아온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아 감사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들썩이게 하는 수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딸들과 가족, 그리고 그때그때 사랑하고 섬기라고 허락하신 사람들 곁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지내온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지금... 내가 옮기는 이 새로운 걸음이 또 나를 어디로 이끌어갈지 알 수 없어서 더욱 기대가 된다.


오래전에 여행작가이자 구호활동가인 한비야 씨가 60이 다 된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커서 뭐가 될지 궁금해요!"라며 들뜬 아이처럼 해맑게 웃던 모습이 나에게는 아주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비전공자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뭣도 모르고 덤빈 이 첫 전시회가,

바리바리 짐을 싸서 새벽을 달려 남편과 서울로 향하는 내일의 여정이 결국은 나를 그 어디에 도달하게 해줄지... 나도 내가 커서 뭐가 될지 무지무지하게 궁금해하는 아이처럼 설레는 걸음을 내디뎌 보려고 한다.





50이 넘었고 이제 60을 바라보지만 아직 가장 좋은 것은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좋은 것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충분히 좋았지만 동시에 다가오는 것들은 더 더 좋은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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