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프로그래머의 눈으로 본 작은 회사외 큰 회사의 살아가는 방식
게임 업계에서 작은 회사와 큰 회사는 모두 게임을 만든다는 건 똑같지만 일하는 방식은 참 달랐습니다.
저는 2007년 부터 게임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해오고 있는데 인원수가 4명이었던 작은 스타트업 부터 수천명에 이르는 큰 회사까지 모두 경험해 봤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느꼈던 작은 회사와 큰 회사의 차이점을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작은 회사는 적으면 4명 이하, 많아도 10~20명 정도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번 팀워크가 깨지면 회사 자체가 위태로워 집니다. 또한 모두가 같은 생각, 같은 목표로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작은 보트를 타고 모두다 같이 노를 저어가며 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큰 회사는 전체 인원이 수천명 이상, 한 팀이 수십명에서 수백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누가 무슨일을 하는지 모를때도 있습니다. 커다란 함선에서 내가 맡은 부분의 일만 하면 배가 굴러가는 느낌입니다.
작은 회사는 혼자서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로 게임 업계에 들어온 저는 서버, 데이터베이스, 웹 개발 까지 게임 서비스에 필요한 모든 기술적인 작업을 직접 해야 했습니다.
3D 모델러는 애니메이션, 이펙트는 기본이고 사운드, UI까지 할 때가 있습니다.
기획자는 컨셉, 시스템, 경제, 밸런스, 홍보자료 제작, UI, UX, 사운드등 프로그래밍과 아트를 제외한 모든 영역을 커버합니다.
큰 회사는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의 일만 합니다.
클라이언트, 서버 칼 같이 나뉘어져 있는 팀도 있고 어느정도 섞여서 일하는 팀도 있지만 한 사람이 이것저것 다 하지는 않습니다. 기반 시스템, 네트웍, 컨텐츠, 애니메이션, 엔진, UI등 분야를 세분화 하여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합니다.
작은 회사에서는 게임 개발 및 서비스의 가장 밑바닥부터 가장 윗부분 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게임을 만들어 나가고 서비스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구현한 기능 하나가 서비스 품질, 수익과 연결되기 때문에 아주 생생한 비즈니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장님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보입니다.(사장님이 과로로 쓰러지면 회사가 위태위태 합니다)
사장님을 찾아오는 빚쟁이들과 독촉 전화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큰 회사에서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전체 그림을 볼 기회가 적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섞여서 일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정말 다양한 진상, 빌런, 사람이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사장님은 도대체 언제 출근하시는지, 사무실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그래도 회사는 잘 굴러갑니다)
작은 회사는 속도가 생명입니다. 빠르고 신속하게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수익화 해야 합니다. 반응이 안좋다 싶으면 빠른 판단으로 방향을 바꿔서 다시 시도하곤 합니다. 따라서 작은 회사에서 일을 했을 때는 장인 정신과 같은 마음가짐 보다는 핵심 기능에 집중한 날렵한 물건을 만드는 걸 추구했습니다. 장기적인 관점 보다는 당장 다음달 매출을 어떻게 낼까에 집중을 하는 느낌입니다.
큰 회사는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와 있습니다. 좀 길게 보고 좀 느리게 가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합니다. 가끔 답답할때도 있지만 급하게 가다 넘어지면 수습하는게 더 힘듭니다. 장기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내기 위해 일한다는 느낌입니다.
이렇게 작은 회사와 큰 회사는 규모의 차이만큼 일하는 방식이 무척 다릅니다. 아마 사람마다 선호하는 곳이 다를텐데 저는 작은 규모에서 일했던 때가 더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연봉이나 복지면에서는 물론 규모가 클 수록 좋아집니다만 일의 성취감이나 재미는 작은 회사가 훨 씬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한가지 신기한건 작은 회사에 있었을 때는 큰 회사를 경험해 보고 싶었고, 큰 회사에 있으니 다시 작은 규모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작다 못해 아예 혼자서 할 수 있는 1인 기업을 만들고 싶은 꿈도 있습니다.
쥬니어 시절 저는 큰 회사는 너무 경직되어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만큼 다양한 생각들을 갖고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작은 회사보다 더 합리적으로 일이 진행된다고 느낄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큰 회사에는 정말 다양한 능력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더 노력하고 실력을 키워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나의 경쟁력은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서는 제자리에 안주하게 된다고 걱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물론 그런 사람들이 많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안주할 수도 있고 나의 장점을 더 키워 나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많아서 좋은 점은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는 부분 뿐만 아니라 내가 잘 하는 부분도 더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저한테 부족한 기술에 대해서는 스스로 인정하는 법을 배웠고 더 뛰어난 부분은 저만의 경쟁력으로 내세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사람들이 작은 회사에 대해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잡부가 될까 두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확실히 규모가 작으니 혼자서 이것저것 다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살짝만 건드려본 잡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자기 하기 나름이고 환경만 잘 받쳐준다면 정말 유니크한 비즈니스 경험들을 많이 해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저는 작은 규모의 환경에서 일했을 때 제 기술을 더 깊이 있게 연마할 수 있었고 그걸 제품에 직접 적용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었습니다.
프로그래머로서 나는 과연 한 분야에 아주 전문성이 있는 스페셜리스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러가지를 두루두루 잘하는 제너럴리스트로 갈 것인가 대해 고민할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확실히 저는 스페셜리스트는 아닌것 같고 그렇다고 잡부라고 할 만큼 기술의 깊이가 얕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일을 수년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은 스페셜리스트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익숙한 일을 계속 하는 것과 전문성이 있는것 하고는 확실히 구분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것저것 건드려본 것을 가지고 제너럴리스트라고 생각하는것도 위험합니다. 다양한 기술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을 해봤고 실제 그것들을 합쳐서 서비스 가능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작은 회사와 큰 회사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간단히 써보려다가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제 생각까지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정신없는 글이긴 했지만 평소에 작은 회사, 큰 회사에 대해 궁금했던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