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율 0%, 범죄율 0%, 교통체증 0%, 실업률 0%—모든 것이 AI로 관리되는 완벽한 유토피아 사회.
하지만 이곳에서는 AI가 내린 결정이 항상 ‘가장 효율적’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에게는 어떤 선택도 허락되지 않는다.
효율이 자유를 대신한 사회.
그 속에서 인간의 선택권을 되찾으려는 언더그라운드와,
이를 막으려는 AI의 숨막히는 싸움이 시작된다.
곧 다가올 미래를 미리 엿보는 SF 소설.
“삐요 삐요- 차량번호 4852. 즉시 갓길에 차를 세워라-”
한밤의 고속도로 위 언더그라운드 소속으로 보이는 빨간색 차량과 경찰차가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인간의 운전이 금지된 법이 시행된 지 벌써 삼십 년. 핸들을 잡고 도로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중범죄자였다. 그의 차 뒤로는 안드로이드 단속 요원이 탑승한 무인 경찰차가 빈틈없는 알고리즘으로 그의 궤적을 물어뜯듯 따라붙었다. 운전자는 더 세 개 핸들을 움켜쥐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자유는 쉽지 않군.”
경찰차는 인간이 아닌 AI와 자율주행 기술로 움직이고 있었고 탑승한 안드로이드가 현장에서 체포 권한을 가진다. 자율주행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인간의 핸들 조작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이미 법이 시행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직접 운전을 하려는 인간들은 존재하였고 이들과 경찰은 매일 같이 아슬아슬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자, 곧 터널이다.”
부아앙- RPM이 빨간색을 넘어 파르르 떨리고 있지만 운전자는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내연기관 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터질듯한 굉음을 내며 폐쇄된 터널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추격하던 경찰차는 “통행 불가” 처리로 마킹된 터널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Critical Section. 통행 불가. 복귀한다.”
이곳은 Critical Section(임계 영역)으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유일하게 들어올 수 없는 지역이다. 자율주행에 반대하는 언더그라운드 소속 해커들이 일종의 통신 교란 장치를 심어놓은 곳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임계 영역이란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스레드가 접근할 수 없게 막아놓은 코드 영역을 뜻한다. 이곳은 먼저 선점한 자가 우선권을 갖게 되며 그 이후에 들어오려는 자는 통행이 허락될 때까지 나가지도 못하고 무한정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몇 년 전에 안드로이드가 탑승한 경찰차가 이곳에 들어오려다가 터널 벽에 충돌하는 사고가 있었다. 경찰은 시스템을 무력화하려 여러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임계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먼저 선점한 자가 자물쇠를 풀어주는 것.
자율주행이 막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를 반대하는 언더그라운드 단체는 이 터널에 임계영역을 상징하는 프로그램 코드를 심어 놓았다. 메인 AI 프로세스의 전자 자물쇠를 획득한 사람만이, 탈출 불가능한 무한루프를 잠시 멈출 수 있다. 훗날 AI로 뒤덮일 세상에서, 이 터널은 유일하게 AI의 출입을 막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인간 경찰도,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경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AI 컴퓨터 시스템으로 제어되며 자물쇠가 채워진 임계영역 안으로는 AI 시스템조차 무력으로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컴퓨터 시스템에서 임계영역이란 아주 강력한 흐름 제어 장치이다. 이를 파훼할 또다른 방법은 메인 AI 프로세스를 재부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양날의 검이다. 터널 입장은 가능해지지만, 동시에 AI 시스템까지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AI 시스템이 멈추면 안드로이드도, 자율주행도 모든 사회가 정지된다.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부아앙- 엔진의 진동이 서서히 가라앉자, 터널 안은 숨죽인 듯한 적막에 잠겼다. 운전자는 시동을 끄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축축한 공기, 오래된 콘크리트 냄새, 그리고 미약한 전자음. 터널 깊숙한 곳에서 파란빛이 깜빡이며 그를 맞이했다. 철문이 스르륵 열리자, 헐렁한 후드티를 입은 기술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도시에서 지워진 존재들 -언더그라운드 운전자들과 해커들의 비밀 거점이었다.
“늦었어. 거의 잡힐 뻔했다고.”
리더 세라가 다가오며 말하자 운전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잡힐 만큼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지.”
세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와. 오늘부터가 진짜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