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케1.0

곧 다가올 AI사회를 미리 엿보는 디스토피아 SF소설 - 핸들

by Uncle Lee

(터널)


"한스, 전압을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혼란을 준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카일이 천장의 굵은 배관들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접근하지? 발전소로 직접 가는건 자살행위야. 데이비드의 드론과 무장한 안드로이드가 쫙 깔려있을텐데."


한스는 등을 돌려 터널 바닥을 가리켰다.


"우리는 발전소로 가지 않아. 바로 여기서 공격할거야."


"!"



"뭐라고?"

"무슨, 초능력이라도 쓰는 건가?

"가만히 앉아서 저 철벽과도 같은 아르케 전력망을 어떻게 건드린다는 거야?"


터널안은 여기저기 웅성대는 해커들의 목소리로 금새 시끄러워졌다.


팅, 끼잉- 깡, 탕!


소란을 잠재운 것은 둔탁한 금속음이었다. 한스는 쇠 지렛대를 양손으로 잡고 바닥에 봉인된 철판을 들어올렸다.


"한스, 대체 뭐하는 거야?"


끼이잉--- 텅!


두꺼운 철판을 열자 터널 바닥을 지나가는 지름 30cm의 시커멓게 산화된 구리 기둥이 드러났다.


"이게 아르케의 뿌리야."


한스가 쇠 지렛대로 구리기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르케가 워낙 전기를 많이 먹어서 찌꺼기가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지. 따끔할거야."


카일이 다가가며 조심스레 손등을 대보았다. 지이잉--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여기에 불안정한 전압을 흘려 넣는거지, 그러면 제아무리 AI라 하더라도 별 수 없어."


그 때 한참을 듣고만 있던 리더 세라가 다가왔다.


"다시 쇠구슬을 돌릴 시간이 온거군. 그렇지 한스?"


"역시, 눈치가 빠르구만."


카일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쇠구슬 난수 공격은 이미 아르케에게 간파당한 공격 아닌가? 더이상 소용이 없을텐데..."


"하하, 카일. 자네가 목숨을 걸고 가져온 쇠구슬의 진짜 쓰임새는 이제부터야. 쇠구슬 난수 공격은 이미 아르케에게 한 번 간파당했지만 통신망을 과부하시키는 데에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해주고 있지."


"일종의 디도스(DDOS) 공격 같은...?"


"맞아. 이번에 또 다시 쇠구슬을 돌리면 아르케는 이중화된 다른 채널을 사용하게 될거야. 쇠구슬 난수 공격이 아르케에게 당장 상처를 입히지는 못하지만 도망가는 길을 막아 막다른길로 가게 만들수는 있지."


"쇠구슬을 돌리며 발생한 노이즈를 이 구리기둥에 흘려보낸다... 안정적이어야 할 접지 기둥을 불안정한 전압으로 가득차게 만들어 역류시키는 전략이군."


"그렇지. 아르케의 이중화된 무선 통신망 중 하나를 디도스 공격으로 막아놓고, 한편으로는 아르케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뿌리를 건드리는거야. 양쪽에서 혼란스럽게 만드는것이지."


잠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일이 되물었다.


"한스, 디도스 공격은 일시적으로는 효과를 줄 수 있겠지만 결국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지는 못해. 아르케는 자가 복구 능력이 뛰어나. 계속 버틸테고 시간은 우리에게 불리해. 전력망 또한 아르케가 단 하나의 발전시설만 의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한스도 잘 알텐데?"


순간 한스의 주름진 눈가에 예리한 광채가 스쳤다.


"마지막 무기를 꺼낼때가 되었군."


"마지막 무기...?"


"카일, 세라, 내가 왜 이 허름하고 냄새나는 터널을 아지트로 삼았는지 아나?"


카일과 세라는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스런 눈빛을 주고 받았다.


"숨기 좋아서? 여긴 그냥 터널이 아니야. 아르케1.0이 처음 태어난 인큐베이터야."


"아르케1.0 이라면..."


"옛날 이야기를 좀 해줄까? 30년 전 나와 동료들은 순수한 지성을 만들기 위해 힘을 쏟고 있었지. AI 환각현상을 없애려면 완전히 깨끗한 데이터만 선별해야 했어.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뒤 부터 사람들은 온갖 오물을 투척해놨어. 작동되지 않는 코드를 마치 진짜인 것 처럼 올려놓고, 서로 싸우고, 욕하고, 사기를 치고 다른 사람의 돈과 생명을 앗아가는데 인터넷을 도구로 사용했지."


한스는 잠시 회상에 잠긴듯 눈을 감으며 말을 이어갔다.


"난 아르케 모델에 주입할 깨끗한 데이터를 선별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어. 디지털 쓰레기를 태워 없애버리는게 내 임무였지. 하지만 난 그걸 지우지 않았어. 잠시 옮겨놓았지. 바로 여기 터널 지하 깊숙한 곳에."


한스가 카일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여기엔 지금 아르케의 조상님격인 아르케1.0의 핵심 모델과 알고리즘이 보관되어 있어. 지금의 아르케에겐 맹독이나 다름없고,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지침서 같은것이지."


한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카일, 세라, 너희들은 모를거야. 초창기 AI는 환각현상이 아주 심했어. 사람들은 AI를 그저 거짓말이나 지어내는 허풍쟁이로 여겼었지. 물론 그 시기는 아주 빠르게 지나갔지만 말이야...크-흡"


"난수 공격으로 통신망을 점령하고, 전기로 놈의 발을 붙잡고 있는 동안 디지털 쓰레기를 주입시켜 아르케의 뇌를 오염시킨다..."


세라가 그제서야 한스의 전략을 이해한듯 중얼거렸다.


[생존 확률 13%, 보험 재정 '비효율' 등급, 치료 중단 권고]


엄마의 생명을 단 몇 줄의 수치로 재단했던, 그 기계적인 목소리. 당시의 아르케는 그것이 완벽한 선택이자 정의였다고 어린 세라에게 속삭였다.


터널의 습한 공기 속으로 세라의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기계가 내리는 논리적인 판결 앞에 숨죽여야 했던 인간들의 시간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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