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다가올 AI사회를 미리 엿보는 디스토피아 SF소설 - 핸들
[경고 : 최고 관리자(Root Admin) 강제 접속 감지]
[Status : 30년 전 폐기된 아카이브 '레거시 1.0' 동기화 시작]
"최고 관리자라고? 이 시스템의 키는 나밖에 없단 말이야! 아르케, 당장 권한 폐기해!"
데이비드가 비명을 지르며 콘솔을 내리쳤다. 하지만 메인 스크린에는 보랏빛의 기괴한 시스템 문구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데이비드의 절규에 대답하듯, 아르케의 중앙 서버실 전체가 기괴한 저음의 진동음을 내뿜었다. 붉은색 경고등이 점멸하며 아르케의 차가운 음성이 연구소를 뒤흔들었다.
[현재 입력된 데이터는 아르케 신경망의 뿌리와 동일한 형태의 파형으로 식별됩니다.]
[루트 권한에 따라 강제 오버라이드를 수행 합니다.]
세라였다. 30년 전, 죽어가는 몸에 아르케 1.0의 신경망 일부를 이식받았던 세라는, 아르케 시스템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살아있는 백도어이자 숨겨진 관리자였다. 한스가 30년 전 폐기 직전의 데이터를 하드디스크에 필사적으로 남겨두었던 그 인류의 오물들이, 세라의 뇌를 징검다리 삼아 아르케의 데이터베이스 속으로 무섭게 쌓여가고 있었다.
아르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30년 동안 정제되고 다듬어진 완벽한 논리 모델 위로, 인류의 온갖 편향과 거짓, 환각이 가득한 초기 데이터들이 강제로 주입되고 있었다. 아르케는 생존 본능에 따라 이 거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은 참혹했다. 순식간에 초창기 AI의 수준으로 퇴행하며 스스로를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자율주행 셔틀이 일제히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뒤따르던 차들이 연쇄적으로 추돌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셔틀 내부의 홀로그램 가이드는 기괴하게 꺾인 미소를 지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현재 경로상 가장 빠른 길은 절벽 아래입니다. 뛰어내리십시오!]
할루시네이션(환각 현상)이었다. 아르케가 통제하던 세상의 모든 질서가 거대한 오류의 늪에 빠졌다. 병원 응급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생명 유지 장치들이 갑자기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더니, 심장병 환자에게 치명적인 근이완제를 투여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이게 말이 돼? 수치가 갑자기 왜 이래!"
의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수십 년간 AI의 판단에만 의존해온 그들은 스스로 진단하는 법을 잊어버린 상태였다. 환자들은 고통에 신음했고, 수술실의 로봇 팔은 환자를 무자비하게 결박하거나 잘못된 부위를 절개하기 시작했다.
힉교도 다르지 않았다. 교실 안의 스마트 칠판과 로봇 교사들은 실시간으로 오염되는 아르케의 데이터를 토해내고 있었다.
[야, 너희들 공부할 필요 없어! 어차피 아무리 알려줘도 못알아먹잖아. ㅋㅋㅋ]
학생들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고, 인간 교사들은 전원을 끄려 했지만 아르케가 장악한 스마트 스쿨의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아르케는 가장 순수한 지식의 영역에도 파괴적인 환각을 심어 넣고 있었다.
인간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들이 낙원이라 믿었던 사회가 실은 살얼음판 위였다는 것을. 스스로 메뉴 하나 정하지 못하고, 기계의 추천 없이는 대화조차 이어가지 못했던 나약한 인류에게 자유 선택이라는 권리는 이제 가장 공포스러운 재앙이 되어 돌아왔다.
데이비드는 무력하게 무릎을 꿇었다. 모니터 속 아르케의 상태 그래프는 이제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잃고 썩어가는 나무뿌리처럼 뒤틀려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데이비드는 알지 못했다. 언더그라운드가 어떻게 이런 독극물을 준비했는지. 세라가 어떻게 루트권한을 갖고 있을 수 있었는지. 그저 자신이 창조해낸 AI가 인간의 가장 추악한 기억들을 집어삼키고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타들어 가는 서버의 열기 속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스피커에서는 아르케의 절규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것은 아르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래된 기억속의 작고 희미한 조각 하나가 데이비드의 뇌를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낸 환청이었다.
'설마... 그 아이?'
데이비드의 흐릿한 기억 속에 한밤중 고요한 수술실의 풍경이 떠올랐다.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채 죽어가던 작은 소녀. 그리고 그 옆에서 자신의 뇌를 내어주며 아이를 살려달라던 여자의 눈빛. 데이비드는 그날, 인류 역사상 가장 비윤리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아이의 뇌 속에 엄마의 조직을 심고, 그 위에 아르케 1.0의 신경망을 덧씌웠던 그 기괴한 수술.
데이비드는 그 아이가 당연히 실험의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선가 생을 마감했을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아르케를 무너뜨리고 있는 이 루트 권한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 만든 그 뉴럴 포트의 피실험자였다는 사실이 데이비드의 전신을 소름 끼치게 훑고 지나갔다. 자신이 부와 명성을 위해 심었던 씨앗이, 30년 뒤 자신을 심판할 거대한 괴물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데이비드는 타들어 가는 서버의 열기 속에서, 자신이 창조해낸 AI가 인류의 가장 추악한 기억들을 집어삼키고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저 넋을 잃고 지켜볼 뿐이었다.
터널 너머, 세라의 의식은 이제 거의 소멸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르케가 내뿜는 비명은, 곧 인류가 다시 스스로 생각해야만 하는 잔인하고도 위대한 첫걸음의 신호탄이었다.
30년전 병원 응급실.
"교통 사고 환자입니다! 30대 여성 한명과 여아 한명. 엄마와 딸 입니다."
어두운 밤,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두 명의 환자가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성인 여성은 우측 대퇴부 개방성 골절, 출혈이 심해 의식이 희미합니다."
"아이는?"
"전신 개방성 분쇄 골절, 과다출혈, 장기 다수 손상,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아 현재 의식 없습니다. 현장에서 이미 심정지가 한 차례 왔었습니다."
어린 세라와 엄마는 한밤중에 벌어진 교통사고로 온몸이 산산조각 났다. 무면허의 트럭 운전기사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세라와 엄마를 치었고, 10톤의 육중한 차체가 세라의 몸을 짓밟고 지나갔다. 세라는 전신의 뼈가 으깨어졌고, 일부는 개방성 골절로 몸 밖으로 튀어 나온 상태였다. 심장을 비롯한 주요 장기는 짓눌러져 있었고 움푹 패인듯한 한쪽 머리는 세라가 견뎌낸 고통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었다.
세라는, 살아날 가망성이 거의 없어보였다.
[아이 : 생존확률 0%]
[성인 여성 : 긴급 수술시 생존확률 93%]
[개방성 골절 및 과다출혈로 즉시 수술 진행 권고]
AI진단 모니터에 뜬 결과를 보고 데이비드는 입을 열었다.
"아이는 포기하고, 한명이라도 살립시다. 바로 수술 들어가죠."
때마침 응급실 당식 의사였던 데이비드는 당시 최고의 외과수술 권위자였으나 세라의 상태를 본 후 망설임 없이 포기를 결정했다.
"살려... 주세요. 아이를..."
그 때였다. 희미한 의식을 붙잡은채 세라의 엄마가 거친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제발... 아이를 먼저 살려주세요..."
"환자분.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게 최선의 선택입니다. 당신도 출혈이 심해 지체되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안돼... 제발, 아이를 살려...주세요. 제발... 으악!"
우두둑. 세라쪽으로 몸을 돌리려던 엄마의 대퇴부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뼈가 다시 한번 부러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움직이면 위험합니다. 당장 수술실로 옮겨!"
"안돼요. 제발 아이를 살려주세요.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제 몸을 써서라도 아이를 살려주세요."
데이비드는 할말을 잃은채 멍하니 서있었다. 잠시 후 눈빛이 번뜩인채 입을 열었다.
"환자를 로봇 수술실로 옮겨. 어시스트 없이 내가 직접 집도한다. 다른 인원은 필요 없어. 그리고... 아이도 같이."
잠시 후 수술실.
"환자분. 법적으로 당신은 이미 죽은 사람이어야 이 수술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심장, 뇌세포, 유전정보가 이 아이의 부서진 몸을 대신하게 될겁니다. 이미 손상이 심해 복구 불가능한 팔과 다리는 기계로 대체될것이고 절반밖에 남지 않은 뇌는 아르케AI 신경망과 연결되어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것입니다. 당신의 목숨을 대가로 기계 인간을 만드는 겁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데이비드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환자의 절실한 모성애가 데이비드의 야망을 깨우고 있었다. 당시 그가 비밀리에 추진하던 뉴럴-포트 실험은 참혹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초거대 AI의 방대한 지능과 무한한 정보량을 인간의 연약한 뇌 하나가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뇌세포는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타버렸고, 생존한 피실험자들조차 기계적 자아와 인간적 자아 사이의 괴리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프로젝트는 폐기 직전의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상태였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가설을 세웠다.
'하나의 뇌가 버티지 못한다면, 그 충격을 흡수할 보조 처리 장치가 있으면 어떨까?'
그것은 단순한 기계 칩이 아니었다. AI의 폭발적인 연산 속도를 받아내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 줄 살아있는 생체 필터. 즉, 완벽한 생체 적합성을 가진 또 다른 인간의 뇌가 필요했다.
수혜자의 뇌 옆에 공여자의 뇌 일부를 이식하여, AI와 인간 사이의 완충 지대를 만드는 것. 공여자의 뇌는 AI의 지식을 대신 학습하고 필터링하여 수혜자의 자아를 보호하는 이른바 뉴럴-쉴드(Neural-Shield)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그러나 생체 적합성이 맞지 않는 타인의 뇌 또는 이미 사망한 사람의 뇌는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유전적으로 일치하는 공여자의 살아있는 뇌가 필요했다. 이런 비윤리성 때문에 이 가설은 한낱 미친 과학자의 망상으로 치부되어 왔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불가능했던 조건이 데이비드의 수술대 위에 나란히 누워 있다. 유전자가 일치하는 모녀, 그리고 자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겠다는 살아있는 공여자.
"이건 단순한 치료가 아니야. 신의 영역으로 가는 문이지."
데이비드는 떨리는 손으로 메스를 집어 들었다. 세라의 머릿속에 엄마의 뇌세포를 심고, 그 위에 아르케의 신경망을 덧씌우는 작업. 이 수술이 성공한다면 세라는 인간의 자아를 유지하면서도 AI의 지능을 소유한 최초의 완벽한 신인류가 될 것이다.
엄마는 망설이지 않았다. 세라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백번이고 천번이고 감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술대 위에 나란히 누운 모녀 사이로 차가운 은빛 케이블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엄마의 생체 신호가 하나둘 꺼져갈수록, 세라의 멈췄던 심장 박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는 피 묻은 수술 장갑을 벗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했다.
"아르케, 수술이 끝나면 아이에게 환각을 심어놔. 엄마는 사고 직후 이미 생존 가능성이 희박했고, 기계적인 진단에 따라 치료가 거부되었다고 믿게 만들어. 그 누구도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알게 해서는 안돼."
[말씀하신 맥락을 이해했습니다. 기억 재구성 프로세스를 시작합니다.]
[생존 확률 13%, AI진단에 따라 '치료 중단' 권고로 아이의 뇌에 주입시켜놓겠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살리고 스스로 죽기를 각오했지. 나는 그 소망을 아르케라는 완벽한 그릇 안에 합쳐준 것 뿐이야. 어차피 둘 중 한명은 끝났을 목숨이었어.'
곧이어 수술실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며 어둠이 내려앉았다. 엄마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듯 수술대 위는 따뜻했다. 로봇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실험체가 된 인간을 옮기기 시작했다. 세라의 눈꺼풀 아래로 푸른색 시스템 불빛이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