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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걸 마음놓고 물어볼 수 있는 환경

by Uncle Lee

심리적 안정감 이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걸 추구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조직내에서 모르는걸 마음놓고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라면 심리적으로 안정된 환경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걸 모른다고 말해도 창피를 당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분위기는 개개인의 발전뿐 아니라 조직이 만들어내는 제품의 품질에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저는 조직문화를 논할때 제일 먼저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이게 있으면 팀웍도 자연스럽게 살아나고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반대로 이게 없으면 서로 말을 잘 안하게 되고 모르는게 있어도 감추려고 하죠.


제가 십몇년이상 게임 프로그래머로 일해오면서 쌓은 경험에 따르면 심리적 안정감은 누구 한 명이 만든다고 되는건 아닙니다. 회사 오너부터 이제 막 들어온 직원까지 모두가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구성원들 모두가 한 마음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리더급들은 공통된 생각을 갖고 지속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 조직과 없는 조직의 특징

제가 겪은 심리적 안정감이 없는 조직은 이런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 서로 이정도는 알겠지 하고 겉도는 대화만 하다가 회의가 끝납니다.

- 일을 하다가 모르는게 나오면 물어보기 망설여집니다.

- 대답이 시큰둥하거나 별로 달갑지 않게 느껴집니다.

- 나중에 결과물을 보고 내가 생각한건 이게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 너무 조심한 나머지 서로 상처받을까봐 필요한 말을 하기가 꺼려집니다.

- '저사람은 나보다 경력이 많은 사람이니 이건 말 안해도 다 알고 있겠지' 라고 생각합니다.

- 일하다가 짜증이나 큰 소리가 종종 들립니다.(특히 리더급들에서)

- 높으신분의 의중을 알아내느라 고민과 추측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냅니다.

- 대충 말해주고 못알아들으면 그것도 모르냐는 소리가 나옵니다.

- 윗사람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반면 심리적 안정감이 있는 조직은 이렇게 일합니다.

- 대화가 구체적입니다. 실제 팀에서 사용하는 기술, 데이터를 놓고 얘기합니다.

- 모르는것에 대해서 망설이지 않고 직접적으로 물어봅니다.

- 답변하는데 적극적이고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 중간에 애매한게 생기면 계속 물어봐서 초점을 맞춰 나갑니다.

- 경력이 많아도 모를 수 있다 라고 생각합니다.

- 나이나 경력으로 특혜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 서로 인간적으로 존중해 줍니다.

- 업무 지시가 명확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예의를 강조하면서 살아온 것도 있고, 학교에서 질문을 하는 것을 별로 안좋아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런지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물어보며 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라는 말처럼 다들 묻어 가려고 하는 분위기가 큽니다. 외국에서는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어떤지 모르겠으나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말을 외국 서적에서 처음 봤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서양쪽은 우리나라보다는 더 개인 의견을 잘 내겠지만 이런 말이 나온걸 보면 외국에서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리적 안정감이 없으면

병원처럼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곳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다루는 일이 아닌 이상 심리적 안정감이 없다고 큰일 나지는 않습니다. 게임 개발을 할 때도 조직 분위기가 안좋다고 게임이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경험해온 팀에 비추어 보면 상관관계는 크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험학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조직에서 만든 게임이 크게 성공한 경우도 종종 있죠.


하지만 심리적 안정감이 없으면 일의 만족감이 굉장히 떨어집니다. 구성원들이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안정감이 없으니 뭘 해도 불안합니다. 나중에 나한테 책임이 올까 두려워 합니다. 개선하고 싶은것도 말을 안하게 되고 업무 환경은 점점 악화됩니다. 바로 눈 앞에 폭탄이 떨어져도 다들 못 본체 합니다. 리더는 팀원들이 열정, 실력이 없다고 말하고 어느 누구도 솔직한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심리적 안정감이 없는 조직에서는 리더가 다혈질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당연히 잘 안풀리는 일도 생기고 항상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일이 술술 풀릴때는 다들 괜찮습니다. 팀은 평온하고 인간성이 안좋은 사람도 그걸 겉으로 드러낼 일이 없죠. 반면 자꾸만 암초에 부딪치고 연속으로 큰 이슈들이 터지면 본성이 나타납니다. 리더가 한번 폭발하면 팀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죠. 대화는 단절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가 지속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배짱 좋은 사람이라도 모르는걸 모른다고 말 할 용기는 사라집니다. 심리적 안정감은 0으로 떨어지고 프로젝트가 자꾸만 기울어져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리더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리더가 아무리 잘 이끌어가도 구성원이 협조를 안해주면 마찬가지죠. 하지만 무엇보다 리더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팀에 끼치는 영향이 가장 큽니다. 아무리 팀원들끼리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해도 리더의 한마디로 다 무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르는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제가 겪은 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걸 모른다고 말을 잘 안했습니다. 리더가 오픈 마인드여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개개인의 성격때문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제 생각은 일할때는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내향형이지만 일할때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저도 혼자 생각하는걸 좋아하는 편인데 일할때는 물어보는걸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느덧 경력이 20년 가까이 되가지만 주니어급 동료한테도 적극적으로 물어보며 일했습니다. 이렇게 경력이 많은 사람이 먼저 다가가면 상대방도 심리적으로 편안해지고 있다는걸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에 따르면 역시 리더급이나 시니어급들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심리적 안정감을 만드는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 때 단순히 팀원들을 회의실에 앉혀놓고 마음 편히 말해, 아무거나 다 물어봐 라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입을 다물어 버릴 뿐이죠. 그리고 나서 자신은 이렇게 열려 있는데 팀원들이 몰라준다고 하소연 합니다. 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혼자 떠드는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고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하는 작업입니다. 쉽지 않죠.


그리고 늘 한결 같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건, 잘 안 풀리건 여유를 갖고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주니어들은 자신이 만든 것에 큰 문제가 생기면 당황하고 겁을 먹습니다. 이 때 시니어들이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덩달아 큰일 났다고 안절부절 못한채로 짜증을 내면 심리적 안정감은 절대 생길 수 없습니다. 일을 다 해결하고 나서 아무리 좋은소리 해봤자 이미 닫힌 마음은 열리지 않기 때문이죠.



정말 심리적 안정감을 원하는가

결론은 커뮤니케이션 스킬, 특히 리더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제일 큰 영향을 차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정말로 자신의 조직이 심리적 안정감을 원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생각보다 이걸 원하지 않는 조직도 꽤 있습니다. 책만 보면 당장 이렇게 분위기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죠. 자신이 성장해온 방식이 심리적 안정감과 거리가 멀었다면 리더가 되어서도 필요성을 못 느낄 겁니다. 가치관에 따라서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겁니다.

저는 뭔가 답답한걸 잘 못견뎌 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심리적 안정감이 없으면 일할맛도 안나고 불안함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리더였을 때는 심리적 안정감을 만드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주니어들한테 많이 물어보고 같이 바닥도 쓸고 하면서 우리도 모르는거 많은 똑같은 프로그래머다 라고 보여줬습니다.

몇 년 전 큰 조직으로 옮긴 후에는 이런 부분이 참 아쉬웠습니다. 우리나라 게임 회사들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개발 문화에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있는 팀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리더들이 이런 것에 관심조차 없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번 글은 정말 두서없이 장황하게 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튼, 제가 늘 생각해오고 있던 주제인 심리적 안정감에 대한 저의 경험과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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