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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ne ryu Nov 22. 2022

프리다

  코찔찔이 독문학도 시절 서평들을 올려봐요. 대단한 통찰력은 없고 순수함은 있어요.


처음 화면에 등장한 프리다의 모습은 상당히 강렬하다. 사람을 침대 째로 옮기는 것도 독특하지만  눈에 들어온 것은 하나로 이어져 있는 그녀의 짙은 눈썹이다.  범상치 않은 눈썹은 평탄치 않은 그녀의 인생을 꾹꾹 눌러 담아놓은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의 DVD 케이스에는 세기의 로맨스라고 큰 글씨로 써져 있는 것처럼 왜 프리다 칼로를 로맨스물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녀의 인생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을 텐데 디에고를 사랑하는 한 여인에만 머무르게 했다는 점이 아쉽다. 영화 속 프리다의 인생은 디에고를 만난 이후엔 그로 인해 즐거워하고 화내고 우는 것이 전부다. 물론 프리다 칼로의 인생에서 디에고는 큰 부분을 차지했고 그녀의 많은 작품 역시 그와의 결혼 생활 중에 겪은 행복과 불행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녀만의 인생에 주목해서 예술가로서의 인생과 신체적 고통으로 겪는 좌절을 더 섬세하게 다뤄줬다면 로맨스 영화를 넘어선 더욱 풍부한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내용적 아쉬움은 있지만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화면, 음악은 굉장히 좋다. 멕시코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잘 드러나게 해주는 강한 색감의 원색의 풍경, 원숭이, 공작새 등은 매혹적이었으며 남미에 한번 가보고 싶게 했다. 또한 감각적인 영상미는 버스 사고 장면에서 더욱 빛났다. 하반신을 철골이 뚫고 지나가고 피범벅이 되는 끔찍한 사고 장면에서 버스 안의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 하나 자세하고 천천히 보여주어 사실적이게 보여주는 동시에 시간 진행을 느릿느릿 늦추고 금가루를 흩뿌려서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보통의 영화에서는 있는 그대로 끔찍하게 묘사하고 지나갔을 법한 이 ‘아름다울 수 없는’ 장면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해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업시간에 영화가 어땠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화면이 예뻤어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이 장면을 떠올리며 나온 대답이었다.

  미술 작품과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오버랩 시켜서 연결시킨 점도 흥미로웠다. 액자 틀 안에 갇혀서 벽에 걸려 있었다면 ‘독특하군.’하고 지나갔을 그림들에 ‘이야기’를 불어넣어 주어 그 그림이 더욱 살아있게 만들어주었다. 한 예술가의 인생을 다룬 영화들은 많지만 이렇게 오버랩 효과로 작품과 인생을 잇는 직접적은 연결고리를 제시한 것은 《프리다》가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뿐만 아니라 멈춰있는 회화와 움직이는 영상의 연결의 차원을 넘어 정지해있던 회화도 움직이게 만든 부분도 좋았다. 예를 들어 머리를 자르고 남자 같이 정장을 입은 그림은 고개를 아래로 푸욱 떨어뜨린다. 해골이 얹어져있는 침대에 누워있는 프리다 그림은 불에 활활 타오른다. 정적인 그림에 상상력을 더해서 생명력을 배가시킨 것이다.

  또한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음악에 대해 얘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걸맞게 멕시코 전통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냥 화면에 입힌 노래가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주인공의 옆에 서서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그 덕에 음악에 더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원래 배경음악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보는 편인데 가수가 옆에 서있으니 노래와 내용이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봤던 플라멩코 공연에서 들었던 노래나 포르투갈에서 들었던 전통음악 Fado를 연상시키는 한이 담긴 노래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깊게 해주었다.

  이렇게 영화 《프리다》는 영화적 기술을 이용해 감각적으로 그녀의 인생을 어루만지며 그려냈다. 시련은 예술가에게 축복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많은 예술가들은 고통 속에서 영감을 얻어서 뛰어난 작품을 창조해낸다. 프리다 역시 그 불행의 축복을 받은 사람 중 하나다. 그녀에게는 유감이지만 사고로 인한 부상 덕분에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고 디에고와의 불안한 결혼 생활, 유산과 같은 일들이 밑거름이 되어 이렇게 보는 이의 가슴까지 콕콕 찌르는 진실하고도 가슴 아픈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프리다는 디에고와 행복한 시간도 가졌고 마지막에도 다시 재혼해서 행복하게 끝나는데 왜 내 머릿 속에 남은 것은 술병을 부여잡고 울분에 차서 소리 지르는 프리다 뿐인지 모르겠다. 그만큼 그녀의 인생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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