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실수로 계정을 삭제했다

실수 하나로 알게 된 중요한 사실

by 응씨

이 일은 개발하다가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여자친구랑 같이 쓰는 그룹 공간에서, 그냥 스크롤을 내리다가 생긴 일이었다. 손가락이 하필이면, 정말 하필이면 계정 삭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바로 삭제가 됐다. 확인도 없었고, 되돌릴 방법도 없었다.


그 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 멈칫했고, 화면이 바뀌었고, 다시 로그인하려고 했는데 계정이 없다고 나왔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아, 진짜로 삭제됐구나.


백업 시스템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내 계정과 관련된 모든 게 한 번에 날아갔다. 여자친구와 함께 읽었던 성경 통독 기록, 말씀 나눔, 기도 나눔.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기록이 전부였다.


멘붕이었다. 그냥 당황한 정도가 아니라, 꽤 우울했다. 이 웹앱을 만든 이유가 여자친구랑 말씀을 나누기 편하자고 시작한 건데, 정작 그 기록들이 통째로 사라져버렸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더 힘들었던 건 이게 ‘사고’라기보다는 ‘내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좀 덤벙대는 편이다. 급하게 넘기고, 대충 보고, 괜찮겠지 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그런 덤벙댐 하나로, 내가 가장 아끼던 걸 전부 날려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누굴 탓하기도 애매했다. 시스템을 만든 사람도 나였고, 버튼을 누른 사람도 나였다. 결국 내가 만든 걸, 내가 망가뜨린 셈이었다.


그런데 우울함이 조금 가라앉고 나서, 다른 생각이 하나 더 들었다. 지금은 이 앱을 나랑 여자친구만 쓰고 있지만, 만약 다른 사람들이 쓰게 된다면 어떨까. 나 말고 다른 누군가의 기록이, 나와 비슷한 실수 하나로 한 번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록이 나한테 의미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 소중한 시간일 텐데.


그제야 깨달았다. 계정 삭제는 이렇게 쉬우면 안 되는 거였구나. 실수로 눌릴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안 됐고, 한 번의 터치로 끝나서도 안 됐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게 깃허브였다. 예전에 저장소를 삭제하려다가, 삭제가 바로 안 돼서 귀찮았던 기억이 났다. 깃허브에서는 저장소를 정말로 삭제하려면, 저장소 이름을 직접 입력해야 한다. “이걸 진짜 지우겠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하는 절차다. 그땐 귀찮았지만 그게 맞았다. 귀찮아야한다. 기록을 삭제하는 일은.


그래서 계정 삭제 방식도 그렇게 바꾸기로 했다. 삭제 버튼을 누른다고 바로 지워지지 않게. 대신 “삭제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직접 입력해야만 삭제가 되도록 수정했다. 덤벙대는 사람도, 한 번은 멈추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다.


여자친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다시 그룹을 만들었다. 지금은 다시 기록을 쌓고 있다. 새로운 기록들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긴 한데, 그래도 날아간 기록들은 여전히 많이 아쉽다.


이 일을 겪고 나서야 알게 됐다. 이 앱은 단순한 기능 묶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과 마음이 쌓이는 공간이라는 걸.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아마 이 일이 없었다면, 계정 삭제 버튼은 여전히 너무 쉽게 남아 있었을 거다. 덤벙대는 나를 기준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생각도, 다른 사람의 실수를 대신 막아줘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고.

지금은 다시 쓰고 있다.


예전보다 조금 느리게, 조금 더 귀찮게.

그리고 그 정도의 불편함은, 기록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1.png 그렇게 "삭제하겠습니다."를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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