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설교노트를 만들었다

말씀을 더 오래 붙잡고 싶어서

by 응씨

설교노트 기능을 추가했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예배를 드릴 때 이런 기도를 해왔다. 오늘의 말씀이 나를 위해, 태초부터 준비된 말씀이라고 믿게 해달라고. 그래서 예배 시간에는 나름 집중해서 듣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만 지나도 설교 말씀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예배당 나가면 까먹을 때도 많다.)

분명 예배 시간에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에 남는 문장도 있었는데, 막상 다음 날이 되면 설교 제목조차 흐릿해졌다. “아, 오늘 말씀 좋았지”라는 느낌만 남고, 정작 뭐가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기억에 맡기지 말고, 기록으로 남겨보자.


설교노트를 만들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잘 정리된 노트가 아니었다. 신학적으로 정리된 글도, 깔끔한 요약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예배 시간에 들은 말씀이 내 삶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구성은 단순하게 잡았다. 설교 제목과 본문 성경 구절을 먼저 적고, 필요하면 연관 구절도 추가할 수 있게 했다. 설교자 이름과 예배 종류, 설교 일자도 함께 남길 수 있도록 했다. 나중에 다시 봤을 때, “언제, 어떤 자리에서 들은 말씀인지”가 떠오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엔 핵심 요약 칸을 넣었다. 설교의 핵심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적는 부분이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려다 보니, 설교를 다시 곱씹게 됐다. 그냥 흘려듣던 말씀이 아니라, 내가 이해한 말씀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됐다.


말씀 해설과 개인 묵상 칸도 따로 만들었다. 본문 흐름이나 인상 깊었던 구절, 설교 중 나왔던 예화를 적을 수 있게 했고, 그 말씀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지까지 적을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에는 기도 칸을 넣었다. 말씀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기도 제목을 흘려보내지 않고 남기고 싶었다.


이 설교노트는 혼자만 쓰는 용도로 끝내지 않았다. 그룹원들과도 나눌 수 있게 했다.

같은 설교를 듣고도, 각자가 붙잡은 말씀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설교노트를 보면서 “아, 이런 포인트로 들을 수도 있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말씀을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만들면서 새삼 느꼈다. 나는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었다는 걸. 기록하지 않으면 붙잡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설교노트 하나 만든다고 신앙이 갑자기 깊어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예배를 드리고 나면 기억이 흐릿해질 때도 많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다시 돌아가 볼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싶어서 만든 설교노트.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흘려보내지는 않겠다는 작은 장치 하나는 생겼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 다른 설교노트들을 보고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할 생각이다.


설교노트1.png
설교노트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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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https://www.togetherbibl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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