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글 쓰다 망했다.
중독의 길에 들어서다
올해 선선한 바람이 불고 옷깃을 여미기 시작할 즈음에 나의 글 쓰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글 쓰는 인생은 읽는 인생의 연장선이다.
몇 년 전부터 난 책의 마력에 빠져서 정신이 딴 데 가 있곤 했다. 괴로움 때문에 시작된 책 읽기였다. 그땐 딴 세상에 가 있는 것이 사는 길이었다.
때로 우리 삶의 방향은 각도기의 1도만큼씩 살짝 바뀐다. 하지만 각도기에 연장성을 그으면 그 선이 길어지면서 방향은 어마어마하게 커지곤 한다. 치료용으로 시작한 책 읽기가 책욕심으로 번졌다. 살 날이 산 날보다 더 짧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젊은 날 맛보지 못한 온갖 책을 마구 먹어버렸다. 어떤 책은 달콤하고 어떤 책은 시었다. 또 어떤 책은 무지개 맛이 나기도 하고 에스프레소 맛이 나는 것도 있었다. 떫은맛도 홍어맛도 심지어 매콤해서 정신이 얼얼해지는 것까지 다 좋았다. 책을 좋아하니 자연히 글쓰기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올 가을 브런치스토리와 조우하게 되었다.
이제 책만 사랑하던 나는 글쓰기도 사랑한다.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는 요즈음 글쓰기를 점점 더 편애하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사랑을 독차지했던 책은 갓 태어난 글쓰기 동생에게 사랑을 야금야금 뺏기고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역시 애 둘(첫째인 책과 둘째인 글쓰기)을 키우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다. 더구나 워킹맘에게는. 책도 읽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돈도 벌어야 하니 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그러다 오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어제 밤일(?)을 마치고 - 퇴근시간이 10시 반이다 - 귀가하니 뜨끈한 국물이 나를 불렀다. 동쪽으로 가라면 일부러 서쪽으로 가는 청개구리 중학생들과 씨름하고 나니 체력은 땅 밑으로 꺼지고 스트레스 레벨은 지붕 뚫고 하이킥.
쏘울푸드가 간절한 시간이다. 라면, 나의 오래된 애인. 사실 요즘 주변의 만류로 만남이 뜸했었는데 어제는 내가 먼저 섹쉬한 목소리로 라면님께 연락했다. 그는 거절하는 법이 없지. 라면님과의 야밤 데이트는 짭조름했다.
그런데 바로 잘 수 없었다. 요즘 가뜩이나 예민해진 나의 사랑하는 첫째 책이 잠이 깨버렸고 엄마랑 놀고 싶어 했다. 놀아줬다.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가지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밌었다.
어느새 시곗바늘은 세 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돼! 절제해야 돼!' 더 놀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참고참고 또 참아 책도 재우고 나도 침대로 몸을 던졌다.
곧 뭔가 잘못되었단 공포스러운 느낌에 눈을 떴다. 아뿔싸! 아침이다. 이미 평소보다 45분이나 늦은 상태.
망했다!
아침잠이 많은 난 알람을 7개씩 세팅해 놓는다. 5분 간격으로. 그런데 어젯밤 라면 애인하고 격하게 뒹군 게 무리였는지 아님 사랑하는 책과 너무 늦게까지 놀아준 게 문제였는지 그 많은 알람소리를 하나도 못 들었다.
망했다!
나, 중독인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무엇에 깊이 빠져있는 난 확실히 중독의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