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1 X -1화-

당근

by 이인감

비가 내렸다. 날씨가 풀리면서 제법 서늘해진 날씨는 왜인지 모를 묘한 쾌감을 줬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나는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10초 정도 지났나. 경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내 옆에 쓰러진 남자가 말했다.


”살려주세요…“


”괜찮으세요? 지금 어디세요? “


깜짝 놀란 경찰이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가 대답하려는 순간, 나는 가져온 망치로 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이내 만족하며 여유로운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그날은 계속해서 비가 내렸고, 내가 저지른 6번째 살인이었다.


얼마 후, 뉴스에서는 내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범인은 30대 중반의 남자이며 쇠망치로 머리를 찍어 살인했습니다. 범행 동기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피해자들 역시 30대 중반의 남자들이며… 이번 살인사건 역시 최근 나타난 연쇄살인범의 소행이 확실해 보입니다.”


TV 속 뉴스 기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자연스레 하품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노와 공포로 가득 찰 내용이었으나, 나에게는 그저 내가 적어둔 따분한 일지를 보는 느낌이었기에, 당장에라도 눈을 감으면 두 시간은 잠들었다가 일어날 것 같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친 후에 나는 검은 정장을 입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마침 택시가 보였고, 다행히 장례식장에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조문을 하러 가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나이 든 여자가 보였다. 아마 내가 죽인 남자의 어머니인 듯했다. 조문을 마친 후, 밥을 먹는 중 남자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조문을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안아주었다. 그에게는 따뜻한 위로였으나, 그때 내가 한 행동은 조롱에 가까웠던 것 같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당근을 샀다. 이걸 사는 이유는 뭐랄까, 내가 저지른 살인을 기념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해도 웬 생뚱맞게 당근을 사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도 그럴 게 나는 당근이 들어간 음식을 절대 먹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당근을 싫어했으니까. 그런데 왜 당근을 사는가?


그건 내가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후였다. 살인을 기념하기 위한 나만의 이벤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고, 그때 떠오른 게 꽃이었다. 나는 그 후 인터넷에 꽃말을 검색하여 여러 꽃의 꽃말을 찾아봤다. 한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내리다가 시선이 멈췄다.


‘죽음도 아깝지 않으리.‘


그 꽃말을 본 순간,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나는 그 꽃말을 가진 꽃이 무엇인지 봤다. 당근 꽃이었다. 하지만 당근 꽃을 직접 본 적도 없고, 파는 것도 본 적이 없다(애초에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문에 대신 선택한 게 진짜 당근을 사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곧바로 당근을 사러 마트로 향했고, 그 이후에도 살인을 저지른 후에는 당근을 사서 나의 살인을 축하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