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출발하기 직전, 직원은 내 팔에다 몸무게와 키, 신발 사이즈를 매직으로 표시했다. 팔에 숫자를 적으니 뭔가 번지의 순간이 더 가까워져 온 것 같았다. 심장 터질 것 같음.
아침 8시에 조식을 먹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래프팅 하다가 입은 손가락의 상처가 점점 심각해지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점점 더 부어오르고 고름도 차올라 피부가 이상한(?) 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체크아웃까지는 시간이 좀 남길래 시내 나들이 겸 약국을 다녀오기로 결정.
다행히 상점가에서 쉽게 약국을 발견했다. 처방전 없이도 항생제를 파는 곳이었다. 항생제, 소독약, 탈지면을 구매하고는 물을 사기 위해 바로 옆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마트 안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 갑자기 마트의 노랫소리가 꺼졌다. 읭? 의아해할 새도 없이 갑자기 마트 전체의 조명도 꺼졌다. 삽시간에 온 주변이 암흑에 둘러싸였다. 정전이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 떨어져서 각자 구경 중이었는데....!! (친구는 정전 직후 뒤에 있던 현지인이 갑자기 괜찮다고 위로하는 소리에 더 놀라서 펄쩍 뛰었다고 한다. ㅠㅠ) 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켰고 친구에게 다가갔다. 놀라서 어리둥절했던 것도 잠시. 곧 불이 다시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정전이 흔한 일이라고 하는데, 처음 겪었을 때는 많이 당황했지만 생각해보니 이 또한 추억인 듯했다.
자자, 이제 번지 하러 갑시다.
마트에서 정전. 두세 번 반복 ㅋㅋ
잠비아 국경을 건너면 번지점프를 할 수 있는 빅폴 다리가 나온다. 드디어 운명의 순간이 다가온 것... 빅폴 다리 옆에 있는 액티비티 사무실에서 체크인을 했다. 동의서 항목 중에 ‘죽게 될 경우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에는 체크하기가 꺼려지기도 했다. (책임을 묻고 싶어질 듯) 2012년에 호주 여자가 이곳에서 번지점프를 하다가 로프가 끊어져서 추락했지만 생존했다고 하던데... 이쯤 되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현타. 여기서,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
번지점프 오피스 내부
번지점프 플랫폼이 보이는 곳에서 고민만 1시간...
개인정보 등록을 마치고 이제 번지를 하러 가면 되는데..... 뛰러 가지 못하고 1시간 가까이 사무실에서 고민한 듯. 사무실에서 출발하기 직전, 직원은 내 팔에다 몸무게와 키, 신발 사이즈를 매직으로 표시했다. 팔에 숫자를 적으니 뭔가 번지의 순간이 더 가까워져 온 것 같았다. 심장 터질 것 같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사무실 계단을 내려와 플랫폼으로 가려는데 길가에 있는 사람들이 격려의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애써 환하게 웃어 보였지만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서 힘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정말 뛰기 싫었다. ㅠㅠ 집에 가고 싶었다. 속도 안 좋아짐. 그러나 친구와 나는 이럴 줄 알고 살벌한 약속을 해버렸지. 번지를 안 뛰는 사람이 번지 뛰는 사람에게 남아공에서 다이아몬드를 사주는 것. 번지도 무섭지만 다이아몬드 선물은 훨씬 더 무서웠다.
플랫폼에 가니 직원들은 안전 장비를 하나씩 입히더니 안전 수칙을 다시 설명해주셨다. 그러나 저의 멘탈은 이미 지구에 없습니다. 안 들려요. 직원은 플랫폼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크게 점프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땅에서 연습도 시켰다. 대략..... 3m 정도는 멀리 뛰어야 좋다며^^ (뭐라고요?^^)
스텝은 혼자 ‘오케이!’를 외치고는(저는 아직 ok 아닙니다.)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스텝들은 나를 의자에 앉히더니 청바지를 위로 걷어 올리고는 양쪽 발목에 수건을 각각 감쌌다. 그러고는 줄을 한 바퀴 슥~ 돌리고 그 줄을 다리 사이로 빼더니 끝~ 이러면서 일어나라고 했다. 이게 끝?! 당황한 나는 조금 더 세게 묶어달라고 요청했다. 사실, 점프하고 나서는 내 체중에 의해 결국 줄이 조여지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지만, 괜히 불안했던 것.
스텝은 불안해하는 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줄을 조금 더 조여주며, 이제는 이 플랫폼 위에서 가장 안전한 사람은 너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면서 살짝 긴장도 풀렸다. 이제는 진짜 뛰러 가야 할 순간이 왔다. 머리가 새하얘졌다. 어떻게 하면 번지의 순간을 조금 더 뒤로 늦출 수 있을까 머리를 엄청 굴렸다. 그러다 슬쩍 옆을 봤더니 다리 위에서 내 사진을 찍고 있던 친구를 발견했다. 친구의 카메라를 향해 (그리고 나 스스로를 향해) "나는 할 수 있다! I can do it!"하고 외쳤다.
스텝들은 발이 묶인 나를 양쪽에서 부축해줬고 나는 점프대를 향해 총총 뛰어갔다. 스텝은 발바닥 절반이 플랫폼 밖으로 튀어 나가게 하여 서라고 했다. 문득 아래를 보니 이곳이 까마득하게 높이 느껴져서, 즉시 고개를 들고는 전방 먼 곳을 보려고 노력했다.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직 하나. 멋지게 한 번에 뛰든, 버티다가 어설프게 뛰든, 어차피 뛰게 될 거라면.... 한 번에 멋있게 뛰자^^ (라고 하지만 사실은 멋진 인생 영상 남기고 싶은 욕심)
스텝들은 나를 향해 ‘THREE, TWO, ONE 번지!’를 외쳤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플랫폼 밑으로 뛰어내렸다. 점프하는 순간에는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섭다는 생각도,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재미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아, 내가 떨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 자유낙하의 시간을 길지 않았다. 곧바로 줄이 내 발을 당기는 느낌이 들었고 위로 붕~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간 위로 솟구치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ㅎ_ㅎ 이때부터는 정말 재미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면서 아드레날린 수치가 폭발하는 듯했다. 평생에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번지점프가 처음이니 당연)
위아래로 몇 번 솟구치다 보니 한 스텝이 줄을 타고 내려와서 나를 붙잡았다. 본인의 안전 장비에 나를 묶었고, 플랫폼에 연결된 체인이 감기면서 스텝과 나는 함께 위로 올라갔다. 번지점프 이후에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그것도 한방에 멋있게 뛰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그 순간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고 감사했다ㅎ_ㅎ
곧바로 이어진 친구의 번지. 친구가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니 멋있기도 하고 저걸 내가 해냈구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감격스러웠다. 성공적으로 번지를 마친 우리는 플랫폼 위에서 감격의 셀카를 찍었다. 번지점프 영상 CD를 받고 시계를 보니 2시 30분. 이제는 정말 서둘러 4시 3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짐바브웨 공항으로 가야 했다. 비행기 놓치는 거 아니야??
오후 2시 56분. 걱정했지만 다행히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4시 반 비행기였고 탑승은 3시 50분이라서 매우 여유가 있었다. 체크인하고 나서 공항 면세점을 구경하다가 게이트로 향했다.
스카이뷰 탑승 게이트
우리가 이번에 탈 비행기로 말하자면 예약을 정말 저렴하게 했다. 다구간으로 예약한 비행기였는데 1월 9일 짐바브웨에서 나미비아(빈트후크)로 가는 여정과 1월 18일 나미비아(빈트후크)에서 남아공(케이프타운)으로 가는 일정을 토탈 27만 원대에 예약한 것이다. 국제선 2번을 타는데도 가격이 너무 싼 게 이상할 정도였다.
나미비아로 향하는 국제 비행선 탑승 게이트 앞으로 갔는데 우리 말고는 탑승객이 아무도 없어서 비행기가 취소된 것이 아닌가 걱정을 했다. (손익분기점 걱정) 분명 탑승은 3시 50분인데 4시 15분이 다 되어서도 안내가 딱히 없었다. (불안, 초조) 그러나 안내 모니터에는 여전히 우리 비행기 편 안내가 떠 있어서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4시 30분. 드디어 탑승 안내가 울렸고 우리는 무사히 비행기에 올랐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구름
9와 4분의 3승강장 느낌 아니까 (말투 옛날 사람)
이건 또 머선 일? 비행기표의 내 자리는 분명 14D 좌석인데, 이 비행기에는 14C까지만 있어요. 날개에 얹혀 가야 하나요?ㅎ_ㅎ 직원에게 내 좌석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그냥 아무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하하^^ This is Africa.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빈 좌석밖에 없어서 정말 아무 자리에 앉았다. 작은 비행기 안에는 빈자리가 넘쳐났는데 아까부터 손익분기점이 걱정된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탑승객은 10명 정도였으며 2시간이 채 안 되는 비행에 기내식까지 나오니 혼란은 가중되었다. 에어 나미비아. 가난한 여행자를 위해 자선사업하시는지 ㅎ_ㅎ (여하튼 감사합니다)
오후 6시 22분. 비행을 마치고 나미비아 빈트후크에 도착했다. 미리 받아온 비자 덕분에 입국심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사전 신청 필요 없이 나미비아에서 도착비자 받을 수 있습니다) 탑승객이 10명밖에 안 돼서 그런지 짐 찾는 곳 가니 컨베이어 벨트 위에 우리 짐이 떡하니 올려진 채 멈춰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나미비아까지 무사히 왔네요.
저녁 7시 50분 카멜레온 백패커스 도착. 배가 고팠던 우리는 대충 옷을 갈아입고는 밖에 나가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해가 진 직후라 그런지 그리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내까지 걸어 나가는 건 겁이 났다. 그래서 숙소 바로 옆에 있는 KFC에서 치킨을 포장해 와 캔맥주와 함께 먹으며 하루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