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외수의 '존버' 실천법 뚝,>
책장을 열면 말한다.
'이외수와 하창수는 첫 번째 대담집 <마음에서 마음으로>에서 깨어있는 삶을 위한 마음과 마음의 소통법을 전했다. 이후 두 작가는 다시 만났다. 이번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는 주제로 하창수가 묻고 이외수가 답했다.(...)
연이은 고통 속에서도 마음을 단련시키고 삶의 가장 깊숙한 진실을 직시한 영혼의 연금술사 이외수, 그가 지혜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라고.
이 둘이 묻고 답하는데 새삼 '뚝'은 뜬금없이 뭘까?
징징거리며 묻지 말고 명쾌하게 톡 잘라 답변해 준다는 뜻일까?
세 장을 더 넘기면 파란 종이 위에 흰 글씨가 쓰여 있다.
'문제 되는 모든 것 다 허망한 것이니,
모든 문제가 문제 아닌 줄 알면, 문제가 없다.
뚝,
그리고 다시 시작'이라고.
아무래도 아가리 닥치고 다시 살라는 뜻인 모양이다.
그래, 다시 살게 하는 힘도 자기 안에 있으니 일단 생각을 뚝! 멈추고 하던 일 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아무 데나 펼쳐 들고 읽어보자.
25번째 질문이다.
'태어나는 것과 태어나지 않는 것을 택할 수 있다면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이외수: 태어나지 않는 것은 무극(無極)의 상태를 말합니다. 양(陽)도 아니고 음(陰)도 아닌 상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입니다.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 본성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본성에 비했을 때 현상은 천변만화(千變萬化)합니다. 무엇이 재미있는가를 놓고 보면, 변하는 쪽이 훨씬 흥미롭지요.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나는 쪽을 택할 겁니다.
하창수: 혹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가 있습니까?
이외수: 민주주의가 활짝 꽃핀 나라.
하창수: 한 곳을 꼬집어 말한다면 어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외수: 코스타리카. 복지가 잘 갖추어져 있고, 중립국 선언을 한 뒤로는 군대도 없앴지요. 굳이 특정한 나라가 아니더라도, 세 가지만 없다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첫째는 군대, 둘째는 학교, 셋째는 종교.
뚝!'
나는 태어나고 싶을까? 답은 예스. 경험해 보았으니 경험이 주는 희노애락을 조금은 안다. 기쁨과 즐거움은 짧고 고통과 외로움은 길었지만 외로움과 고요함 조차 좋았으니까. 죽음도 기꺼이겠지만, 어디서든 기꺼이 초원의 풀꽃으로라도 다시 태어나고 싶다. 아마 그러하리라.
나는 어디를 가고 싶을까? 코스타리카는 이름 밖에 아는 바가 없어 흥미가 떠오르지 않고 몽골을 가고 싶다.
광활한 초원을 말로 달리고 느리게 살고 조금만 먹는다. 자연을 벗 삼아 심심하게 지내고 이웃들과 다정히 많이 웃고 피부를 새카맣게 태우고 야생화를 실컷 보며 지내리라.
네이버에 찾아보니 군대가 없는 나라는 실제로 존재하며, 대표적으로 코스타리카, 파나마,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바티칸, 안도라, 팔라우, 나우루, 모리셔스, 산마리노,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솔로몬 제도, 키리바시, 투발루 등이다.
종교가 없는 나라는 북한, 중국(일부), 쿠바(과거)로 나온다. 하지만 북한에 종교가 없으리라 믿어지지 않는다. 어둠이 짙을수록 종교는 깊어지니까.
학교가 없는 나라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없다. 네이버에 숙제하기 싫어 찾아본 학생들이 물었었다.
학교와 군대, 종교 셋 다 탄탄하고 고정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틈새가 다들 없는 건 아니지만 틈새를 규칙으로 메우고 흔들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얼핏 질문이 가능한 세계인 것도 같지만 흔들림에 대한 어질머리가 있어 질문을 쉽게 허용하지 않으며 대체로 질문보다는 따름을 강조하고 강요한다. 송혜교가 나오는 '더 글로리' 드라마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드라마와 '말죽거리 잔혹사'를 비롯한 영화에도 학교 폭력은 이미 만연해 있다. 사람이 자연에 드문드문 살아갈 때와 달리 집단으로 모아놓으면 동물이나 인간이나 숨었던 난폭성이 발현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그리고 먹을거리, 학교와 군데에선 단체급식이 이루어진다. 특히 우리나라에선 더 하다. 짜게 먹지 말라고 어찌나 의료계와 매스컴에서 세뇌를 시켜왔는지 이들 단체급식소는 물론 병원밥, 도통 싱겁기 그지없고 물은 또 왜 그리 많이 먹이는지.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를 아는가? 염도 3.5% 정도로 알맞게 절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몸무게 대비 약 7~8% 정도다. 그 혈액이 적정 염도에 맞게 절여져 있을 때라야 우리 몸은 썩지 않는다. 의료계에서 피하라고 말하는 짠맛은 정제염을 말하는 거쯤 대체로 알고 있을 것이다. 미네랄이 포함된 소금을 섭취하지 않은 채 물을 더 많이 마시라고 해대면 우리 몸의 혈액은 더욱 묽어져 버린다. 그때부터 온갖 염증이 시작된다. 염증의 말기증세가 암이고 몸이 염도를 잃으면 당도를 원한다. 뭐라도 절여져야 살 수 있으니까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다. 이 아주 기초적이고 간단한 원리를 무시한 채 단체급식을 해 온 조리사나 영양사들이 아프고 나서 차례로 눈뜬 경우를 나는 동네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의식의 전환은 아파야만 뒤늦게 허겁지겁 찾아온다. 그렇게라도 오면 다행이다.
이외수가 학교와 군대, 종교가 없었으면 하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이런 곳에서도 찾아본다. 또 학교와 군대, 종교는 집단 성향을 띠고 있고 집단은 단체의 바퀴를 굴려야만 유지되므로 유지를 위해 억압시켜야 할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내고 프레스기로 누르듯 수시로 찍어 누른다.
올 초봄에 우리나라에 상영되었던 콘클라베를 보셨는가? 화려한 스케일 아니던가? 그것에만 반했다고 말하면 아쉽다. 나는 보고 나서 심한 토각질이 느껴졌다.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인간의 권력욕은 하늘을 뚫는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슬쩍 덮고 벌어지는 치정과도 같은 권력과의 야합은 마피아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은밀한 기생과 공생이 이루어지는 곳이 그곳이다. 내가 수녀원을 나오면서, 그리고 근본적으로 질문하며 종교의 시스템에서 공식적으로 발을 빼며 느낀 건 환희로움이었다. 인간을 자유케 하기 위함이 종교이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끊임없이 구속하고 매일 매주 매 순간 복종하고 돈을 갖다 바치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힘쓰는 모습은 가증스럽다. 그래서 종교의 탈을 쓴다는 표현을 쓰는 게 아닐까. 일상을 좀 더 따뜻하고 안정되게 살아가고 싶은 우리 인간의 마음을 담보로 갈취하는 시스템에 대해 질문해 본 적 있는가? 종교가 주는 위안과 힘으로 살아가는 힘없고 아픈 이들의 소박한 매달림까지 뭐라 하고 싶진 않다. 가진 걸 나누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행위를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그걸로 자랑삼지 않기를 바라고 바란다. 콘클라베에서 살짝 보여준 수녀들의 수고와 그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추기경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느 시스템에서나 있을 법한 얇은 희망을 만난다. 우리가 살아가며 서로에게 전달할 수 있는 건 그런 따뜻함과 감사 아닐까?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종교나 학교교육이 소수를 위해 제공하는 발판으로 기여하지 않기를 바란다. 저항정신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그 체제는 화석화되기 마련이고 애꿎은 소시민들이 다치게 된다. 제발, 멈추어 질문하기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인도영화 중, 좋아하는 배우 아미르 칸이 나오는 P.K 영화는 꼭 찾아서 보시길... 얼마나 종교라는 허울이 허울인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나는 어디에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가? 내 행동은 어디에서 기원하고 어디에 기여하고 있을까?
#군대 #학교 # 종교 #마피아조직과 같은 시스템
*참고로 이외수가 자신의 sns에서 2012년 예전에 밝힌 적 있는데 '존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직도 존버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군요. 어린이가 물으시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존경받는 그날까지 버티자는 뜻이라고 대답해 드리고, 어른이 물으시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존나게 버티라는 뜻이라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라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