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흐르고 흐르는 정(情)
사람은 예술가로 태어날까, 예술가로 만들어질까?
딱 반으로 갈라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 아닐까?
노력 여하가 말해주는 건 기본값일 테고.
노력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결과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인간이 살아가려면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이 삼대 산맥 음식이 필수다.
하지만 사람이나 식물을 결정짓는 무기질과 같은 미량요소는 아주 적은 양이라도
꼭 필요하다. 결핍이 부르는 대가가 반드시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예술가에게도 유전적 요소가
미량요소 같은 거라고 본다. DNA에 아로새겨진 어떤 것, 막판에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손길 같은 것.
예술가에게 있어 어쩌면, 작은 차이를 부여하는 이 예술적 미량요소를 가진 친구가 있다.(내게 친구라 함은 소통이 된다면 나이에 상관없는 관계를 뜻함) 한 마디로 배고픈 예술가다. 예술만으로 밥벌이가 되면 그쪽으로 몰빵을 해도 모자랄 폭발력이 있는데 생계에 붙들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늘 안타까운 친구. 나는 그와 밥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가 둘째를 낳고 젖이 불어 띵띵할 때 서울에서 충청도 우리 동네 풀무학교까지 미술수업하러 온 그 친구에게 밥을 먹여 보내곤 했었다. (그리고 밥을 해 먹인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그미는 남미 정글로 선교를 떠나는 남편을 따라갔고 몇 년 지나 이혼을 앞두고 우리 집엘 왔었다. 그리고 십여 년 후 이혼하고 체코에 가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다가 몇 년 후 다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사람이 피폐해지는 건 순식간인데, 허름한 삶 속에서도 감춰지지 않는 예술가의 DNA가 그를 괴롭히고 있는 걸 보았다. 발현되어야 할 어떤 것이 따끈하게 자기를 덥히지 못할 때 오는 허기증에 휘청대고 있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집에 오면 따뜻하게 맞이하는 일과 몇 년 간 우리가 농사지어 보내는 꾸러미를 매달 두 번씩 보내주는 일뿐. 먹을거리를 대주는 일 외에 딱히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지만, 그미와의 연결은 계속되어 왔다.
제주에 내려와서 반년은 숙소에서 따뜻하고 정성 어린 밥을 맨으로 얻어먹었었고, 따로 나와 반년 살기로 한 7월부터는 나 혼자 밥을 지어먹고 있다. 나에게는 얻어먹은 밥도 좋았고 혼자 해 먹는 밥도 좋다. 엄밀히 말하면 혼자 조용히 해 먹는 밥이 더 좋다. 내 배꼽시간에 맞출 수 있고 내 취향대로 먹을 수 있고, 글을 쓰는데 몰두하거나 책을 읽다가 흐름이 깨지는 일은 없으니까. 게다가 누군가에게 잠깐의 도움을 받는 건 기껍게 받을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리 되었을 때 내가 느끼는 부담감은 생각보다 컸다. 도움은 일회적인 것으로, 이벤트처럼 주어지는 것으로 충분했는데, 내가 적절한 선에서 끊지 못했었구나 하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거저 주어지는 걸 편하게만 받을 수 없는 내 성격 탓이 컸다.
그런 나에게 지금 집으로 이사 온 후, 예술가 친구로부터 꾸러미를 받았다. 두 번이나.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미 어머니가 보내주신 거였다. 김치가 필요하다는 내 말을 들은 친구 덕에. 가끔 담가먹거나 집에서 보내온 김장김치로 연명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엔 반대의 경우가 되어버린 거였다.
친구 어머니랑 아버님이 누룽지나 김치, 말려 작게 자른 미역 또는 다른 가공품들을 꾸러미로 해서 보내시는가 보다. 그 일을 가끔 이 친구가 가서 도와드린단다.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가끔씩 끊지 못하는 인연 덕에 가서 그 일을 도와드리고 있으니까 언니는 그냥 받아도 된다며 보내준 거였다. 내가 있는 동안 제주에 두 번이나 다녀갔기에 내가 어찌 지내는지를 잘 알고 있으니까 김치를 보내주고 싶어 했다. 그 어머니도 여기저기 많이 나누시는 덕에 김치를 넘치게 많이 얻으시니까 부담 없이 받아도 된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손수 담지 않았어도 평소에 자주 나누신 그 손길과 마음 덕에 돌고 돌아온 거니 결국 그분이 보내주신 것과 다름없다.
내가 밥을 얻어먹으며 느꼈던 부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이 과한 꾸러미를 나도 그냥 꿀꺽 받기로 한다. 그 모녀에게 감사하며.
누룽지 세 봉지와 솎은 열무김치 한 통과 볶은 콩 두 통, 또 (사진엔 빠졌다만) 약식이며 두부 네 모, 잡곡밥을 막 지어 바로 소분해 덥혀먹기만 하면 되게 봉지봉지 해 보내주셨다. 찰보리가 섞인 밥은 하얗고 노란 밥, 보석 같은 콩 두어 가지를 섞어 지은 보랏빛 잡곡밥, 대추와 잣, 건포도를 넣어 막 만드셨다는 참기름 내 고소한 약식. 검은콩을 볶아 소금 설탕을 절묘하게 버무려 만들어 주신 콩 볶음.... 꾸러미는 산타선물이었다. (결국 많아서 여기저기 나눠먹고 있다.) 그것뿐이랴. 그미는 홍동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요리할 준비를 해 가지고 와 우리에게 듣보잡 서양요리를 해주곤 했었다. 예술가의 손은 역시 달랐다. 그미에게 소소하게 받은 것도 이미 충분하게 많았고 배부르게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그걸로 충분하다. 우리 사이에 정은 마음의 밀물 썰물로 숱하게 드나들었다.
전에 내가 한동안 식물 가꾸기에 진심인 꽃순이였을 때, 누가 먹을 거 주는 것보다 꽃 주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더랬는데, 먹을 걸 보내주는 것... 역시 무한 감동이다. 더군다나 약식과 밥을 지어 보내실 때 택배가 3일 걸려야 온다니까, 아이스팩 두 개에 얼린 물병까지 넣어 제주로 보내주신 그 꾸러미를 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며 감사하다 말씀드리니, 우리 **이한테 늘 잘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신다. 저는 그냥 제가 마음이 쓰여서 그런 거지요~ 했더니, 당신도 나에게 마음이 쓰여서 그런 거니까 괜찮다고 하신다.
가끔은 부모자식 간에 서로 사랑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마음은 어긋나고 어깃장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역시 자식의 일이라면 신경 쓰이고야 마는 건 똑같은 어미의 마음 아닐까? 그런 친구 어머니의 마음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 급랭해 보내주신 찬 음식 속 따끈한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친구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 친구가 집에 와서 만들어주곤 하던 음식 속엔 필수영양소뿐 아니라, 미량요소가 이미 들어찰 대로 소복한 데다 조물조물하는 정성과 만들어 먹이는 기쁨 MSG까지 담뿍 들어 있었다.
친구의 사랑스러운 목소리 안에 담긴 정이 여기까지 내게 파장으로 흐른다. 가끔 우울이 몸안을 휘돌고 마음과 몸을 착 가라앉힐 때 나를 불러일으켜 내는 이들의 밥심 덕에 사는가 보다. 우린 서로를 살리고 또 살리는 관계 사슬 속에 살고 있구나. 이젠 이 친구의 진짜 예술가 DNA가 창공을 날아오르길 기대해 본다.
연결을 꿈꾸는 친구의 설치 미술 작품
친구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사랑의 밀물썰물 #주거니 받거니 #주고받는 사랑 #예술가 DNA
#부담이란 거품 빼고 #정이라는 이름으로 #밥=사랑 #밥이라는 이름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