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오늘은 어떤 하루?
먼데 사는 절친이 제주로 날아오기로 한
하루 전날부터 나는 이불을 털고
방바닥을 닦고 먼지를 털어낸다
깨끗함을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요
부지런함을 보여주고 싶어서도 아니다
사람을 맞이한다는 건 어쩌면 청소부터일지도
그에 대한 설렘을 보여주는 얼굴인 것을
그저 친구를 온 마음으로 맞이할 준비를
정성껏 하고 있는 것뿐이다
꽃바람 명지바람 불 때는
하는 일에 전념하라 비껴주더니
매운 고추바람 불 때 온다네
걸레를 빨아 묵은 먼지 털어내고
걸레에 붙었던 탑세기를 벗겨낸다
각질처럼 붙어 있는 내 안의 먼지는
어찌 털어내누 걱정하지 말자
친구의 말간 눈 바라보며
분명 해들해들 웃어댈 테니
청소를 하다 변기에 앉아 똥을 눈다
똥을 누면서 타일에 붙은 아슬한 먼지를 본다
안나푸르나 빙벽을 오르는 사람처럼 아찔하다
일상은 아찔하지 않으나 돌이켜 보니
절벽 앞에 선 날이 적지 않았네
한 발 떼기 어찌 그리 어려웠던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 점심, 오후
친구가 준 레몬을 짜 물을 한 컵 아침으로 마시고
다른 친구가 보내준 황금향 하나를 먹고
친구 어머니가 보내주신 냉동밥을 해동해 덥히고
또 다른 친구가 따다 나눠준 당조고추 하나를 씻고
함께 나눠준 꽈리고추로 만든 잔멸치 볶음 한 젓가락 얹는다
접시가 친구들 마음 얹혀 푸짐하게 봉긋하다
식구들과 함께 조물조물 만든 일 년 먹을 김장김치
아주 작은 포기를 큼직하게 썰어 올려
밥
을
먹
는
다
한 알 한 알에 오보록히 담긴 햇살
실하게 열매 맺도록 흔들어준
바람과 뿌리를 박게 한 빗물을
함께 느리게 잘근잘근 먹는다
아삭아삭 질깃질깃 달곰달곰
빙벽 타듯 아슬아슬하던 하루치 째깍임이
보이지 않는 이웃으로 그들먹한 밥상 위에
두리두리 모인다
반찬으로 밥으로
생명수가 된 관심으로
먹음직해진 한 상 앞에
수저를 들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본다
감사가 가득한 상 앞에 벙글어지는 입
공양의 시간이다
나를 공양하고 나니
동네 친구 육지 다녀오는 시간
마음으로 마중해 음식을 준비한다
고구마와 밤을 찌고 누룽지를 끓이고
집에서 보내준 배추와 감자, 양파를 넣고
슴슴히 끓여 낸 된장국을 따끈히 덥힌 그릇에 담아
화려할 것 하나 없는 소박한 음식 앞에 놓고
육지 다녀온 이야기 듣는 저녁은 푸근하다
오래 묵은 답답함도 성글어진 마음도
된장국처럼 풀어놓고 쉬어가는 저녁 밥상
오늘 하루도 하루치만큼 사랑스러웠어라
밥상 앞에 머무른 따순 시간들이여
내일 만날 친구의 말긋말긋한
눈빛을 떠올리는 이 밤
치불던 차운 바람이 잦아드는지
흔들리던 문이 도손도손해진다
누군가 문고리를 잡아주는가
모처럼의 친구와
다사로운 정을 나누라고
슬몃 자리 비켜주는가
미리 그려보는 다정함에
쉬이 잠들지 못한 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