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모금

56. 무에 그리 급했나

by 조유상

먼저 간 친구 박신자를 기리며





죽음은 갑작스레 날아들었다

부고를 차마 못 열어보고

눈물부터 툭 터진 아침


농민운동부터 시작해 땀 흘리며 한뉘*

의미에 발 담고 농사에 뛰어들더니

무에 그리 서둘러 갔는가


특수반 선생님으로 오랜 시간

참을성 있게 도린곁* 그늘을 비추던

햇살 같은 친구야


너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너의 아픔 어찌 견뎌냈을까

알 수 없는 고통 앞에 무너지는 이 마음


판단하는 말 먼지처럼 난무해도

조용히 머물고 지켜보

관찰한 대로 표현하던 친구야


너의 깊은 속을 누가 알

너의 깊은 속을 누가 모르

네 안에 꺼지지 않는 촛불 아직 타는데


축복과 지지, 격려의 말에 익숙한

그런 너의 마음 누가 모르랴

맑음과 고요 속에 섞인 유머 한 자락


너의 마음에 물들지 않은 이 있을까

굳게 땅을 디디고 서서

하늘 향해 부끄럼 없이 살던 너여


한줄기 바람되어 이승에서 몸을 군 너

삶이 발목 잡았던 지난한 일상

이제는 훌훌 털고 잘 가시게나


친구가 남긴 발자국다 따뜻한 온기

동백으로 피어난 눈빛과 손길 붉고

우리 맘 골짜기마다 돋을별* 되어 빛나리라





*한뉘 : 한평생

*도린곁 : 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

*돋을별 : 아침에 해가 솟아오를 때의 햇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