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진상이 여기저기
제주서 감귤농사하는 친구, 제주 살러 와서 아픔이 치유된 친구, 그리고 나.
모처럼 셋이 모여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진상 이야기가 나왔다. 마치 진상 배틀.
감귤 농사짓는 친구가 먼저 입을 뗐다.
이상하게 귤만 받았다 하면 한참 있다 반쯤 썩었다 하며 반품을 요구하던 이가 있었단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는 미안하다며 한 상자를 더 보내줬단다. 근데 두 번, 세 번 같은 일이 이어지다 보니 화딱지가 나서 받자마자 미리나 말을 해 주던지, 일단 받으면 눌릴 수도 있으니 한 번 다 쏟아 확인해 보라고 하는데도 나중에서야 반쯤 썩었다는 말을 듣다 보니 참을 수가 없더란다. 안 그래도 성격 칼칼한 그 친구, 다음부터는 전화가 와도 당신한테는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단다. 그리고는 그 사람 전화는 칼차단을 해 버렸단다. 우리 모두 '아이고 잘했다' 입을 모았다.
또 한 친구는 부산에서 오랫동안 옷가게를 했었다. 처음 시작해서 노하우를 몰라 고생하다가 나중에는 고가의 브랜드 옷을 취급해 십여 년 넘게 가게를 운영했던 친구다. 진심을 담아 일했고 사람 보는 눈이 예리하다. 찡찡이 진상이 있었단다. 배짝 마른 그 여자는 부산 시내 친구가 하던 같은 브랜드 매장 대 여섯 곳에서도 따돌림당하는, 소문 자자한 진상이어서 서로 자기 매장에서 다른 매장으로 토스하는 이였다. 매장에 한 번 찾아오면 수십 벌의 옷을 갈아입고 사지 않고 가는 건 일쑤고, 보통 한 번 왔다 하면 그런 식으로 몇 시간 진을 쪽 빼고 가곤 했단다. 한 사람이 열 몫 이상 진을 빼는 그런 초능력자 진상!
어쩌다 몇십만 원짜리 옷을 사가지고 가서는 니트가 늘어났는지 잘못 만들어졌다며 왼팔과 오른팔 치수가 1센티 차이가 난다며 항의를 하더란다. 니트야 신축성이 있으니 재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잖은가. 이이는 자기 치수 옷을 꺼내주라며 매장에서 일일이 자기가 치수를 재보고 사마고 버티기에 그건 어렵다. 니트 소재상 만지작거리면 늘어날 수도 있고 다 다시 접어 개어놓는 일은 또 얼마나 만만찮은 일인가. 여기는 손님께 맞는 게 더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단다. 기어코 안 가고 반품을 요구하고 찡찡거리며 버티던 그이는 다음날엔 웬 조폭 같은 사내를 대동하고 나타났단다. '사장 누구야? 사장 나오라 그래!' 하며 직원들에게 소리치기에 친구가 '전데요'하고 나섰는데, 덩치로 코앞에 밀어붙이며 옷을 내동댕이치고 '가게 문 닫고 싶지?' 하며 상스런 말로 협박하더란다. '콩밥 먹고 싶어?' 하는 말은 물론, 본사에 전화 걸어 문 닫게 하겠다는 등 난동을 부리기에 안 되겠다 싶어 처음엔 사과를 해도 안 되기에 강하게 밀어붙였단다. '그렇게 하시지요'. 행패를 있는 대로 부리더니 물러간 다음날, 이 친구는 고객카드를 들고 그 여자가 근무하는 학교로 찾아갔단다.(참 나, 학교 선생이었어?! 우린 또 놀라고^^) 고가의 브랜드 옷을 팔기 때문에 고객카드를 다 정리해 두어 신상명세표가 다 있었으니까, 학교로 찾아가 그 교사인 여자를 만나 말했단다. 당신이 어제 와서 행패 부린 거 cc카메라에 다 찍혀 있는데 이거 학교 홈피에 올리고 개망신시켜 줄까요? 나 가게 문 닫을 테니까 당신 인생도 종 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하루 시간 주겠다 하고 돌아왔단다. 다음날 그 여자가 찾아와 무릎 꿇고 싹싹 빌면서 제발 홈피에 올리지만 말아달라 하더란다. 하아... 들으며 허무해졌다. 왜 인생 그따위로 사는지 싸대기라도 갈기고 싶어졌다.
옷장사를 하면서 겪은 스토리는 그뿐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비싼 옷을 사간 뒤 예식장 한 번 갔다 와서 바꿔 달라는 식으로 다섯 번이나 바꿔줬는데 또 바꾸러 왔더란다. 한 번 입은 옷은 아무래도 작은 표시라도 나게 마련이어서 드라이를 해야 팔 수 있는데도 막무가내였던 그 진상. 마지막 여섯 번째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본사에 미리 요청을 해 아예 다음부터는 세 번 이상 반품은 안 해 주는 걸로 규정을 바꾸어 버린 적도 있었단다. 그리고 그 손님도 블랙리스트에 올려 더 이상 매장에 발 들이지 못하게 했단다. 별의별 인간말종을 다 겪고 사는구나 싶었다. 한동안 나철여 작가님 글에도 나온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도 나 작가님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공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농사 지으면서는 없으랴. 한 보따리 있었지.
꾸러미를 매달 두 번씩 보내는데, 지인 소개로 알게 된 이였다. 매달 꼬박꼬박 받기는 하는데 입금이 드문드문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을 믿거라 하고 통장관리에 게으른 사람이다. 설마 먹었는데 안 내겠어? 하며. 하지만 믿음과 달리 몇 달 뒤 어쩌다 확인해 보면 빠져 있곤 했다. 다른 이들은 뒤늦게 알려주고 나도 착오할 수 있으니 확인해 보시라면 대체로 미안하다며 입금을 서둘러해 주곤 거듭 미안해했다. 하지만 그분은 남달랐다. 변명이 우선이었다. 자기네 가게에서 은행에 가려면 멀고 가게를 비우기 어렵고 등등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또 반복했으니. 아니, 지금 세상에 콕 뱅크도 있는데 그렇게 하시면 좋을 텐데 하며 방법을 일러줘도 무조건 오프라인을 고수했다. 잠깐 가게문 닫고 몰빵으로 은행일 보고 와도 되련만... 이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직접 농사짓지 않는 지역의 유기농산물 중 자신이 수시로 이거 구할 수 있냐 저거 구할 수 있냐며 부탁을 서슴지 않았다. 이래저래 손 많이 갈 수밖에 없지만 되도록 원하는 유기농산물을 구해 택배로 보내곤 했다. 택배비를 아끼려고 무리하게 꾸러미에 함께 넣어달라기도 하고 이거는 빼고 저거로 달라는 등 요구가 수시로 많아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예측불허 탱탱볼 진상. 이렇게 3년을 진 빠지게 하다 내가 너무 힘들다고 남편한테 말하니 끊어버리란다. 그때는 손절도 거절도 잘 못하는 나였기에 참, 전전긍긍하던 시절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놓치는 게 아쉬운 농부 아낙네의 마음이었지. 3년째 되던 어느 날, 딱 작심을 해 버렸다. 그 사람이 톡을 보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답답했고 가슴에 묵직한 바윗돌 얹힌 기분이었는데 작심까지가 어려웠을 뿐이었다. 카톡을 짧게 보냈다. '앞으로 **님께는 꾸러미를 보내지 않겠습니다.'하고. 깜짝 놀랐는지, 자기한테만 그러냐고 해서 네, 그렇습니다. 그랬더니 왜 자기한테만 그러느냐고 항의하듯 물었다. 이미 아시다시피 제가 3년 간 꾸러미 보내드리면서 구해달라는 농산물 보내드리느라 충분히 애썼다고 생각한다. 입금을 몰아서 하게 되면 내는 분도 부담이 되니 그때그때 부탁한다고 해도 단 한 번도(사실이었다!!!) 제때 하지 않으셔서 밀리다 보니 매번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하다 보니 진이 빠져 버렸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하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 뒤에 주절이주절이 달린 변명을 뒤로하고 잘 드는 칼로 싹둑 잘라버리고 난 뒤 홀가분함이라니. 그분 연락처도 바로 지워버렸다. 내 맘 속에서도 필름 자르듯 잘랐고. 제발 나의 오기를 시험하지 마시오! 하는 마음이었다. 나도 밟으면 꿈틀 한다오.
허먼 멜빌의 단편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라 했던 단호함이 우리 안에 꿈틀댔던 순간들 아니었나. 비슷한 경우가 또 한 번 있었는데 그걸 거절하기는 한결 수월했고 훨씬 유연할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거절해 보고 나면 그게 내 인생에 그리 중요했나 싶고 그 올가미 같은 목죄임에서 풀리는 자유의 맛은 쾌청하고 시원한 겨울바람 맛이었다.
'그렇게 하겠다'라고 하는 게 쉬울까? '그렇게 하지 않겠다'라고 하기가 더 쉬울까? 물론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하겠다는 건 내 의지와 다를 때 기꺼움보다 감수함에 가깝다. 감수한다는 건 두려움을 꿀꺽 삼키고 마지못해 하는 피로감이 뒤따르고 늦장 부리고픈 마음을 뭉게뭉게 피워 올린다. 게다가 자신이 치사해지고 초라해진다.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그것 역시 상대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절연한 마음이지만 부정적인 말이라 목구멍 위로 끌어올리기 훨씬 더 쉽지 않은 후폭풍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거절이 관계의 단절과 이어질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에. 생각만 해도 발목을 잡는 두려움이 커서 하는 것보다 하지 못한다고 할 때 나의 경우는 더 어렵, 아니 어려웠다. 하지만 해 냈다. 야호다. 나는 이제 거절이 두렵지 않고 그건 관계를 정리하는 것과 이어진다. 관계를 거절하는 게 아닌, 상황의 피로감을 알리고 정리하는 거였기에, 내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시원한 쾌거였던가. 나는 농사에서도 관계에서도 그 후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정중하지만 정리를 선택하기로 한다.
*사족: 오늘도 나는 20여 개의 연락처를 지웠다. 하하.
*참고로 오둠지란 말이 있다. 오둠지 : 깃고대는 옷깃의 뒷부분이다. 깃을 달 때 목 뒤로 돌아가는 부분을 말하는데, 윗옷을 바닥에 펼쳐놓았을 때 맨 위쪽 어름이다. 그 깃고대가 붙은 부분을 ‘오둠지’라고 하는데, 그릇의 윗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깃고대가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 붙은 것을 ‘오둠지진상’이라 한다. ‘진상’은 지지리도 좋지 않은 물건이나 손님을 뜻하는, 장사꾼들의 속어다. 또한 상투나 멱살 따위를 잡고 번쩍 들어서 올리는 것을 ‘오둠지진상하다’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둠지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초판 1쇄 2004., 10쇄 2011., 박남일)
----- 오둠지 진상하기 위해선 힘이 세야겠다. 내면 팔뚝 힘을 길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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