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살아 있는 것들 2
에피소드 1
금평리 밭에서 고구마를 캘 때였다. 때마침 풀무학교에 근무할 때 내가 한국어를 잠깐 가르친 적 있던 스위스 청년 노엘이 우리 밭에서 함께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
뭔가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뭐야? 눈앞을 스치는 작은 것들의 무리가 보였다. 생쥐 일가족. 그중 제법 통통해 보이는 아빠 쥐는 저 혼자 튀어 달아나버렸고, 어미 쥐로 보이는 조금 더 작은 체구의 쥐 꼬랑지에는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문 생쥐들이 기차간처럼 이어져 이리저리 짤짤거리고 있잖은가? 우리가 골마다 차례로 고구마를 캐 나가는 중에 아마 저희 집을 건드렸는가 보다. 아, 이런. 본의 아니게 우리는 가정파괴범이 되어버리지 않았던가.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쥐 일가족은 급하게 튀어달아나는 중인데 어미는 새끼를 조륵조륵 달고 있으니 빨리 달아날 수가 있겠는가. 새끼 쥐들은 이제 막 털이 조금 나서 달리기가 가능한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기가 막힌 그 과정을 보고 웃음도 나오고 놀랍기도 했는데, 우리에겐 웃을 일이었어도 그들에겐 긴급상황 그 자체였다. 당시만 해도 휴대폰이 없던 때라 눈에만 찍어 기억 한 편에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다. 노엘도 우리도 모두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놀라워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을 한참 바라볼 수밖에.
어미의 어미 됨이 뭔가, 집을 잠시만 비워도 식구들 밥걱정은 대개 엄마라는 이름의 몫이고, 둘 다 직장 생활하는 부모면서도 아이들 돌보는 역할은 아직도 여성에게 부가서비스처럼 몫이 돌아오기 십상 아니던가. 저 생쥐 가족들에게서 마저 그 역할을 보아야 하다니... 그땐 웃었지만 두고두고 떠올릴 때마다 가슴 저릿해지는 풍경이었다. 어미 쥐와 나는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에피소드 2
우리와 땅콩은 참 궁합 안 맞는 농사였다. 땅콩을 좋아하는 나는 좋아하는 걸 우선적으로 심고 싶었고 양은 많지 않아도 겨우내 입 궁금할 때 우리 식구 간식거리가 충분히 될 만큼은 심었었다. 한 해 잘 심어 토실토실 여물었겠다 싶으면 까치가 기가 막히게 실한 놈만 부리로 까처먹기(아, 표준어 쓰고 싶다만... 불가하다.) 일쑤였다. 고구마를 캘 때쯤 해서 고구마순을 베어 서리서리 감쳐놓듯 올려두어도 소용없었다. 용케 통통한 알배기만 골라 껍질을 내동댕이쳐 놓은 채 소르륵 알맹이를 잡숫곤 했다. 얼금얼금한 망을 덮어도 그 망을 벌리고 그 사이로 헤집어 까먹으니 당최 당해낼 수가 없었다. 쫓아도 그때뿐, 멀리 가지 않고 잠시 나무 위에서 대기, 내가 들어가기만을 기다리는 진득한 녀석들.
내가 하도 어이없어, 까치 때문에 못 살겠다고 했더니 일곱 살 배기였던 우리 큰아들 왈, ‘엄마, 까치도 같이 나눠 먹어야지...’ 하는 게 아닌가. 아, 우리 아들 도인일세, 엄만 그냥 속인이구먼. ‘아니, 나눠 먹는 건 좋은데 먹어도 너무 많이 먹잖아~’ 하고 어린 아들에게 푸념을 했다. 땅콩이나 고구마나 일 년 농사 아니던가. 밭에서 봄부터 서리 내리기 전 늦은 가을까지 밭에 두고 키워야 하는 작물들인데 녀석들이 홀딱 다 먹어치우면 어쩌라고...
우리가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바로 옆밭이었는데도 그 모양이어서 결국 세 해째는 금평리 언덕배기 산밭에다 심은 적이 있었다. 그해 가을 땅콩잎도 좋았고 런너(땅콩은 기존 뿌리에서도 달리지만 실뿌리가 밖으로 드러나게 땅으로 내려와 꽂히며 열매가 달리기도 하는데 그게 더 굵기도 하다)도 충분히 내려와, 올해는 좀 기대해도 되겠는 걸 하고 하루 날을 잡아 미리 배부를 준비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밭을 향했다. 그리 길지 않은 다섯 골 땅콩을 캐면 적어도 컨테이너박스로 하나는 충분히 건질 수 있으리라 싶었다.
골 아래 앉아 호미질을 시작했다. 이파리 뉘엿뉘엿 갈색을 띠고 있는데 캐면 허당, 캐면 또 허당이었다. 뭐야? 하고 자세히 보니 아예 땅콩 골은 아래서 위까지 터널이 뻥뻥 뚫려 있더라는. 이건 분명 고 귀여운 납작 눈 두더지들 소행이렸다. 그런 줄 철석같이 믿었는데 두더지가 아니고 두더지가 파놓은 굴에 드나들며 먹는 건 들쥐라고 잘 아는 농부님이 알려주셨다. 그 터널은 일정하고 깔끔하게 뻥 뚫려 있었다. 한 골도 남김없이. 뭐 고속 터널을 여기 뚫었어? 캐는 족족 내 손에 잡히는 이파리 아래로는 피라미만 한 덜 여문 애기 땅콩들뿐. 대롱대롱 희디흰 가는 실뿌리 아래 매달려 약오르지롱 하는 게 아닌가. 죽은 자식 고추 만지기라더니, 몰캉한 그 머리에 피딱지도 안 마른 새끼 땅콩을 바라보며 화딱지가 나야 하는데 너무 타격이 컸다. 다른 골도 다 그 모양이니 탈싹 주저앉을 만큼 허탈해졌다. 김이 머리 위로 오를 새도 없이 뿌쉬식 빠져나가 버렸으니.
우쒸, 이 녀석들 밤새 안주만 다 처먹은 겨? 알았으면 맥주라도 사다 안길걸...
그날 내가 캐 온 건 겨우 작은 바가지로 하나도 채 안 되었다는... 오호, 통재라, 일 년 농사 씨앗도 못 건졌다네. 그 후로 땅콩은 무조건 사 먹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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