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꽃으로 낚인 날
제주시로 이사한 이튿날, 뜬금없이 남편이 톡 방에 보라색 무스카리꽃이 핀 사진을 보내왔다.
뭐지? 지금 피었다고? 깜짝 놀라 잘 안 하던 전화를 했다. 아니, 제주도 아니고 거긴 영하 7,8도도 내려갔을 텐데, 4월에 피어야 할 꽃이 지금 핀 거야? 했더니, 으응, 여긴 맨 기야, 흐드러졌어 한다. 뭐? 아니 그럴 리가... 하다가 퍼뜩 낚였구나 싶었다. 비로소 그의 유머 문법을 알아차리고 깔깔대고 웃었다. 아이, 이 남자, 가끔 나를 너무 잘 알아. 그저 꽃만 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사람이란 걸 말이지.
결혼하고 이듬해 이른 봄이었다. 나는 풀무학교서, 그는 풀무신협서 점심 먹으러 집으로 달려왔는데, 그가 뒤로 하고 있던 손을 앞으로 짠하고 내밀며 건넨 꽃, 내키는 대로 막 꺾어온 개나리 꽃 묶음이었다. 막 봄을 알리는 노란 전령을 내미는 순간, 내 마음은 몰랑몰랑해지고 몸이 배배 꼬였다. 아, 뭐야? 했더니 ‘벌써 개나리가 피었더라구. 우리 각시 주려구 꺾어왔지~’ 하는 게 아닌가. 하늘에 뜬 별도 달도 아닌 것이, 금반지도 다이아몬드도 아닌 것이 나를 감동시키고야 말았다. 아니, 각시가 좋아할 걸 알고 꺾어온 그 마음에 내 마음이 지레 꺾여 그이 가슴에 안겼던 거겠지. 그 뒤로 그에게서 꽃다발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남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생명을 무심히 꺾어 시들어 버리게 하는 뿌리 없는 식물을 안쓰러워하는 걸 알고부터는 화분 째거나 꽃씨 아니면 내게 가져오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러더니 며칠 전, 제주시로 이사한 날 아침에 무스카리 꽃을 보내다니.
내 평생 이사는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다. 시골서 붙박이로 살았으니까. 홍성 내려가 결혼 후 신혼 살림하던 첫 집에서 4년 살다 차로 5분이면 가는 초등학교 앞으로 이사한 뒤 내내 살고 있으니 결혼하고도 딱 한 번 뿐이었다. 그러다 제주로 일 년 살이 혼자 오는 바람에 차로 짐 가득 싣고 왔었지. 서귀포 남원에서 6개월을 살다 제주시 조천읍에서 6개월, 그리고 내가 애초에 약속했던 1년이 며칠 전이었다. 제주에 살고 싶은 나는 어떻게든 좀 더 있어 보고 싶어 아등바등하다 운 좋게 친구가 비워둔 집을 몇 달간 그냥 살라고 내주는 통에 이것은 신의 선물인가? 하며 기꺼이 선물을 받아 안고 이사를 온 것이다. 제주시 폭설이 내린다 예고된 전날, 점심 전부터 시작한 짐 싸기가 다 저녁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청소까지 싹 마무리하느라. 마지막엔 주인댁 선생님 부부가 조금 도와주셔서 옮길 수 있었다. 제주로 내려오기부터 치면 지금껏 제주살이 동안 벌써 3번째 이사였다.
와서 보니 늦은 저녁 그 시간에 주차공간이 없었다. 집 옆으로 다 일렬주차가 되어 있었고 딱 한 대씩 지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주인 댁 차에 실렸던 대여섯 개의 짐을 막 내리기 시작했는데 벌써 뒤에 차가 눈에 불을 켜고 나타났다. 여긴 주택가 밀집지역이고 일방통행로라 뒤에서 차가 오면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 아흑, 도시로구나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일단 뒤차에 양해를 구하고 얼른 그 차에 실린 짐만 집 입구에 부리고 그분들을 보냈다. 그분들은 내 차에 가득한 짐을 다 못 내려주고 가서 어쩌냐고 걱정하셨지만, 그걸 다 내리기엔 불안한 일방통행로가 내 마음을 일방통행시키고 있었다. 보내고 미리 귀띔받은 대로 진상 집이 분명한 유일한 공간 앞에 잠시 주차시켜 놓고 가벼운 짐부터 나르기 시작했다. 10여 미터 떨어져 있으니 왔다 갔다가 쉽지 않았다. 한가한 틈을 타 차를 다시 후진해 집 앞에 세우고 부리나케 짐을 입구에 날라두었다. 다시 진상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내렸는데 마침 차 한 대가 가까이 오는데 뭔가 싸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다가온 차가 그 진상이라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창문을 열고 내미는 첫마디부터가 싸늘하다. “아니, 왜 남의 집 앞에 주차를 하신 거죠?” 일단 시빗조로구나. 나는 "저... 오늘 이사 첫날이라 사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 두 차 댈 만한 공간인데 여기 같이 대면 안 될까요?" 최대한 공손했다. 씨알이 먹히지 않는 딱딱함으로 대꾸가 건너오고 말이 길어지려는 찰나, 또 뒤에서 차가 오는 게 아닌가. 자기가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대로 있으란다. 마치 선생님이 잘못한 아이 나무라듯 한 포즈. 뭐, 내가 얼음 땡은 아니지만 진상을 좀 녹여볼 마음이 없진 않기도 했고 어느 만큼의 진상인지도 궁금했기에 기다렸다. 두 번째로 돌아왔을 때 내가 더 공손한 말로 저도 주차할 곳을 찾다 보니 없어서 여기가 좀 빠듯하긴 해도 두 대 댈 수는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 후진해서 들어와 보심 안 될까요? 했더니 자기 집 앞에서 왜 자기가 불편하게 주차를 해야 하냐며 아, 짜증 날라 하네 했다. 이미 목소리 톤으론 짜증을 내고 있었건만. 아, 여기가 사유진가요? 그렇단다. 그리고 전기차 주차구역이라고 쓰여 있지 않느냐며 목소릴 더 높였다. 아, 저도 아는데 여긴 다 일렬주차 서로서로 한다고 들어서요...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침 그 타이밍에 그 여자의 남편과 아들이 걸어 들어오며 벌써 어깨에 뽕 들어가고 목소리 시작부터가 달랐다. 제주 토박이의 투박함(사실 나는 이 투박함과 정겨움을 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남자의 말투를 듣는 순간, ‘아, 부부가 다 똑같구나’ 빠른 사태 파악이 되면서 아, 네 제가 방금 이사 와서 몰라서 여기 댔는데 바로 뺄게요 하고 꼬리를 내렸다. 그들은 집 안쪽으로 차 한 대를 더 세울 공간이 있고 사선으로 세워도 얼마든지 빼기 좋게 댈만한 공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 그들은 1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이럴 땐 이불 압축팩이 있듯 차도 착 접어 담 한 옆에 세워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술 같은 상상을 잠시 해 보았다만, 현실에선 그래, 일단 빼자 였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난 사실 별로 그들이 무섭지도 더럽지도 않았지만 기분은 좀 더럽혀졌다.
시골쥐가 도시쥐로 변신해 사는 게 이거 이거 참, 보통일 아니구먼. 주차 시작부터 그날 저녁 차가운 바람처럼 세차게 시골쥐 뺨을 갈겨주는구나. 혹독한 환영식일세, 헛웃음이 나왔다. 그날 차를 이리저리 끌고 몇 차례 근방을 돌고 돌아 그래도 운 좋게 한 300여 미터 떨어진 꽃집 모퉁이에 세울 수 있었다. 방금 손님이 들어간 문 열린 꽃집에 가서 여기 주차해도 되겠느냐고 물은 뒤였다. 새로 이사 온 어리바리 실정을 말하고 나니 여기 살기 좋아요 한다. 근데 주차는 너무 무섭네요 했더니, 함께 난감해하며 그쵸~ 하고 공감해 준다. 그 어색하고 불편한 공감의 웃음만으로 충분히 따뜻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돌아왔다. 그날 밤 보일러는 틀어도 틀어도 12도. 나는 핫팩을 소중히 끌어안고 잤다.
남편은 내 이삿날을 알았을까 몰랐을까? 내 절친과 아침에 이사한 걸 이야기하다, 친구 왈, 남편이 알지 않았을까? 하고 묻기에, 글쎄... 아마 충분히 모를 수 있지. 보통은 무심한 사람이라. 전에도 내가 이사했는데 왜 이사했는지를 묻지도 않더라구. 한 이십 일도 넘게 지났는데도. 그런 사람이야 하고 남편 귀 간지럽게 흉을 봤더랬는데, 이번에도 틀림없이 잊어버렸을 거야 했다.
아니었다. 그 무스카리 꽃을 낚싯밥 드리우듯 먼저 툭하고 아무 설명 없이 던져놓고 기다렸는가 보다. 내가 꽃에 낚여서 전화를 하자 그제야 ‘이사는 잘했어?’ 하는 거였다. ‘알고는 있었네’. ‘아니 미리 와서 이삿짐도 좀 날라주고 그럼 얼마나 좋아? 애정이 식었구먼, 식었어.’ 그러자 ‘그날 못 온다고 미리 말했었잖아’ 한다. 날짜를 정해서 말은 안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이 충청도식 불명확함^^). 여하튼 그랬다 치고 이사는 여차저차 다 했고 온 삭신이 모처럼 다 아프네 했다. ‘아이구 고생했네. 오늘일랑 가서 맛있는 거 사 먹고 푹 쉬어’ 한다. 이런 말은 제법 달콤한 걸!
보일러 놓기도 고치기도 잘하는 남편인지라 보일러 고장신고를 그에게 먼저 했다. 밤새 보일러 틀었는데도 기름은 하나 안 줄고 실내 온도 12도 그대로라 핫팩 끌어안고 잤다니까 집 나가면 개고생인 거야 하면서도 안 되는 보일러 덕에 한두 달치 통화를 한꺼번에 중계방송하듯 했다. 결국 친구가 보일러 사장님께 연락해 바로 오셔서 고쳐주셨다. 한동안 안 썼던 상태라 고장이 난 거였다. 고쳐주신 사장님은 군더더기와 과장 하나 없이 친절하신 전문가셨다. 감사의 마음을 작은 먹을거리와 따끈한 커피로 대접했다. 한 달 반을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해서 일요일 그날은 모처럼 쉬려고 작정했던 날이었다던 그분. 얼마나 쉬고 싶으셨을까마는 쉼보다 춥게 잘 한 사람을 위한 출장 아니었는가.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에 몸이 연신 굽혀졌다.
맘이 더 덥혀지고 방바닥 온기가 느껴지자 내 안의 피돌이도 활발해졌다. 양말 바람으로 방바닥을 문지르며 트위스트 춤이 저절로 나왔다. 와, 살았다!
말 한마디가 군불 때준 방처럼 따수워지기도 하고 쌔하니 냉골이 되기도 했던 이사 전후 풍경. 꽃으로 낚인 날이었다. 우리 집 뜨락에 피었던, 작년인지 재작년이지 모를 무스카리 꽃 사진 한 장으로 날아온 관심은 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동맥 같은 맥박이 느껴지는 통로였나 보다. 도시에서도 간신히 살 수 있게 하는.